[인천시론]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골목’

이태원 거리엔 골목이 넘친다. 경리단길, 퀴논길, 엔틱가구의 거리, 우사단길, 회나무길, 해방촌길까지 이태원 골목 곳곳에는 청춘이 가득하다. 특히 세계 각국의 외국인이 모여드는 이태원만의 특징은, 이태원을 대한민국 안에서 가장 이국적인 장소로 만들어줬다. 그래서인가, 2000년대 초반 외국 유학생과 외국인 강사 등을 통해 전파된 핼러윈 문화가 가장 찬란하게 정착한 곳도 바로 이태원이었다. 핼러윈은 10월의 마지막 날 유령이 찾아온다고 믿는 고대 유럽의 켈트족 풍습에서 비롯된 서양 명절이다. 나쁜 유령들이 해를 끼칠까 두려워한 사람들이 자신을 같은 유령으로 착각하게끔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면서, 이는 곧 핼러윈 축제의 상징이 됐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괴물 분장을 하고 집집마다 다니며 사탕을 얻는 모습이 핼러윈의 가장 흔한 풍경이지만, 우리의 경우 20대 젊은층이 독특한 코스프레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뽐내는 대표적인 청년문화로 자리잡았다. 그래서인지 매년 10월 말이 되면, 이태원 골목은 각양각색의 모습을 한 청년들로 가득 찬다. 핼러윈 축제가 청년층의 자유와 저항을 상징하는 하나의 문화가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대형참사가 남긴 상처는, 골목 곳곳에 남아 쉽게 아물지 않을 듯하다. 좁은 골목에 가득한 그들은 아무 죄가 없다. 그저 축제를 즐기기 위해 그곳에 왔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의 그 골목을 지나가려 했을 뿐이다. 오히려 청년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게끔 ‘안전’을 제공하지 못한 기성세대들의 책임인 것이다. 주최 측이 없어 통제할 방법이 없었다거나, 갑자기 사람이 몰려드는 돌발 상황에서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식의 변명은 구차하다. 오히려 사고현장에서 한 명이라도 더 구하고자 애쓴 경찰과 의료진, 그리고 직접 심폐소생에 나선 시민들의 진심 어린 용기에서 희망을 본다. 하지만 인간은 선과 악의 이중성이 있고, 이는 위기 상황에서 나온다했던가?. 시신 바로 옆에서 음주가무를 즐기고, 사진을 찍어 이를 자랑하듯 SNS에 올린 빌런들이 있었다. 인간의 존엄성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순간이다. 영웅과 빌런이 혼재했던 아비규환의 골목에서, 우린 154명의 소중한 청년들을 잃었다. 그래서인지 핼러윈이 주는 어감에 서글픔을 느끼는 건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태원의 골목은 언제나 똑같이 그 자리에 있다. 하지만 골목을 스치는 바람마저 울음소리인 듯, 골목 속 풍경은 세상에서 가장 슬프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인천시론] 환절기 건강관리

가을이라는 날씨가 무색할 만큼 기온이 뚝 떨어졌다. 이렇게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는 건강관리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의학적으로 환절기의 큰 일교차는 신체의 자율신경계에 부담을 주고 불균형을 일으킨다. 이 시기에는 심뇌혈관질환·호흡기질환 등의 발병률이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혈압·당뇨·천식 등의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노인의 경우 면역력이 쉽게 떨어지고 만성질환자일 확률이 높아 조심해야 한다. 실제로도 한 연구결과를 보면 일교차가 1도 증가할 때 노인 사망률이 0.5%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 이런 날씨에는 무엇보다 체온조절이 중요하다. 따라서 일교차가 커질수록 외출할 때 얇은 옷을 여러 벌 입는 것이 좋다. 또한 골고루 잘 먹어야 한다. 우리는 면역력 강화를 위해 특정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물론 그런 음식이 좋을 수는 있지만 채소, 과일, 고기, 생선 등을 골고루 먹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 운동이다. 면역력이나 근력 증진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기온이 낮은 아침에는 운동을 삼가는 것이 좋고, 기저질환(심뇌혈관계·관절질환·당뇨 등)이 있을 경우 너무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운동을 할 때는 낮은 강도에서 시행하고, 평소보다 스트레칭을 길게 해야 한다. 또한 이제는 ‘단풍놀이’로 등산객도 많아지는 시기다. 등산은 건강관리에 좋은 방법이지만 실족, 조난, 추락 등 사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어 매사 안전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인플루엔자(독감) 예방접종’이다. 독감은 바이러스에 의한 급성 호흡기질환으로 고열, 두통, 근육통 등의 전반적인 증상을 동반한다. 특히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의 우려가 있어 반드시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후 6개월부터 만 13세 이하 어린이, 임신부, 65세 이상 어르신은 국가예방접종 대상으로 무료로 접종할 수 있으므로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올해의 환절기는 팬데믹(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거리두기와 실외 마스크 착용이 없는 시기라고 한다. 트윈데믹의 우려가 높은 만큼, 적극적인 건강관리로 다가오는 겨울을 맞이하길 바란다. 안상준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신경과 교수

[인천시론] 뮤지엄 마일 못지 않은 인천뮤지엄파크 꿈꾸며

가벼운 퀴즈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한다. 충북 청주에도 있고, 강원도 강릉에도 있는데 대도시 인천엔 없는 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공립 미술관이다. 물론 송암미술관이 있지만 그에 ‘공립’을 붙이기엔 다소 민망하다. 지역 예술인들은 그걸 부끄러이 여기며 줄기차게 공립 미술관 설립을 요구해 왔다. 그동안 여러 이유로 번번이 좌절돼 왔지만 최근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2017년 민선 6기 시절부터 추진해 온 인천뮤지엄파크 조성사업이 국제설계공모를 실시하는 등 본궤도에 올랐다는 것이다. 학익동 옛 동양화학 부지 내에 조성되는 뮤지엄파크에는 총 4만1천170㎡ 규모에 2천14억 원을 들여 미술관, 박물관 등을 들일 것이라 한다. 바야흐로 인천시립미술관의 탄생이 임박한 것이니, 만시지탄이지만 정말 반갑고 고맙기가 한량없다. 박물관, 미술관 등은 인간 내면의 예술적 창의력과 감수성을 일깨워주는 감성발전소와 같다. 최근에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집단정체성을 형성하는 교량적(bridging) 사회자본으로 인식되기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지만 ‘돈(이윤)’이 되지는 않는다. 민간보다 공공 부문의 책임과 역할이 강조되는 대목이다. 여느 지자체처럼 진작 시정부가 나서야 했다. 인천뮤지엄파크는 적잖은 예산이 투입된다. 게다가 전액 시 예산이다. 하지만 기왕 시작했으니 하려면 제대로 했으면 한다. 우선 조직과 예산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학예사를 중심으로 한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전시품 구입 예산을 늘려 양질의 작품 확보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민간 예술계와의 협력 체제를 공고히 구축해 그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반영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그들의 역할과 책임을 나누는 민관합동조직(TFT)도 검토해보자.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행정안전부는 2021년 지방재정투융자 심사를 하면서 사업규모 축소라는 조건부 승인을 내렸다. 더 키워도 부족한데 덩치를 줄이라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지역 정치권의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미술관의 정체성을 ‘디아스포라(離散)’로 한다는 방침도 재검토했으면 한다. 관련 연구용역 결과나 몇 차례 공청회 결과 등을 감안했다지만 처음 문을 여는 미술관에 다소 처연한 감성을 이입하는 건 논란의 소지가 있다. 정책 추진엔 속도가 중요하지만 섣불리 결정내리는 것은 더 위험하다. 다시 머리를 맞대 보자. 서로의 힘을 보태자. 그런 모두의 노력으로 우리 인천에도 뉴욕의 뮤지엄 마일(Musium Mile) 못지않은 문화예술의 명소가 탄생하기를 희망해 본다. 정말 간절히. 이상구 인천대 도시행정학과 겸임교수

[인천시론] 여전히 학벌사회

지난 2019년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 뜻밖의 물건을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서울대의 한 창업동아리가 올린 판매글에는 “서울대생이 수험생을 위해 직접 쓴 손편지와 공부할 때 썼던 볼펜, 그리고 서울대 마크가 새겨진 사인펜을 7천원에 판다”는 상세설명이 포함돼 있었다. 심지어 이들은 “빨리 구매할수록, 의대·경영대 등 입시컷이 높은 학과 학생의 손편지를 받을 수 있다”며 구매 경쟁을 부추기기도 했다. 이 게시글이 알려지자, 당장 학벌주의를 조장한다는 여론의 뭇매가 이어졌고, 결국 해당 동아리는 판매중단과 함께 사과문을 올리는 것으로 사태수습을 했다. 개인의 능력이나 인성과 무관하게 오직 ‘학벌’ 그 자체가 상품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을 깨닫게 한, 씁쓸한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이런 학벌 지상주의가 해프닝이 아닌 ‘사건’이 된다면 어떨까? 그땐 판이 달라진다. 누군가 선의의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는 심각한 사회 문제인 것이다. 대표적으로 2016년 벌어진 하나은행 채용비리 ‘사건’이 있다. 당시 하나은행 인사부장 등은 임직원의 청탁을 받아 추천 리스트를 만들고, 특정 대학 출신 지원자를 우대해 지원자들의 점수를 조작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2022년이 된 지금에 와서, 이 사건을 소환한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 서류심사 및 인·적성검사, 합숙·임원면접을 거쳐 합격자 명단에 포함됐지만, 채용비리로 인해 최종탈락된 한 응시생이 은행 측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1심 판결이 최근 선고됐기 때문이다. 법원은 채용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황에서, 응시자의 기대를 저버리는 비리행위는 그 자체로 위법하다며, 은행 측에 5천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채용비리는 위법하다는 ‘상식’이 확인된 순간이다. 그럼에도 아직 남아있는 이 찜찜함은 뭘까? “최종 합격자를 결정할 당시, 특정 대학 출신 지원자들이 부족해 대학별 균형을 고려해 이를 임의 조정했다”며 끝까지 잘못을 부인하던 은행 측의 변론에 그 답이 있다. 우린 잠시 잊고 있었다. ‘실력으로 학벌의 벽을 넘었다’며 어떤 이의 성공신화를 흔한 일상인 것처럼 전파해온 언론보도 속에서, 현실 역시 마찬가지라 착각해온 것이다. 2016년과 2022년 사이에 6년의 간극이 있었지만, ‘특정 대학 우대’가 ‘대학별 균형’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그들에게 학벌은 중요하다. 학벌이 곧 능력이고, 공정으로 간주되는 현실이 서글프다. 치열한 취업경쟁에서 자신을 담금질하는 청년들에게 괜히 미안해질 뿐이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인천시론] 디지털과 건강

얼마 전 미국에서 ‘하늘을 나는 오토바이’가 내년부터 판매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상상의 현실화’는 비단 어느 한 산업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모든 것을 가깝게 만들었고, 이는 필자와 관련 있는 건강 분야에서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디지털헬스케어다. 디지털헬스케어는 의료기술에 정보통신기술을 결합해 개인 맞춤형 질병 예방 의료서비스 또는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을 말한다. 코로나19 이후 많이 언급되고 있으며, 현재 그 발전속도도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러한 개념은 2000년대 초반부터 이어져 왔다. 당시만 해도 ‘U-헬스케어(유비쿼터스 헬스케어, Ubiquitious Health Care)’라는 이름으로, 시공간의 제한 없이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됐다. 디지털헬스케어는 조금 더 확장된 개념으로 건강관리뿐 아니라 원격진료, 치료제, 의학교육, 가상병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거나 상용화를 기대하고 있다. 원격진료는 이미 코로나19 팬데믹 때 제한적으로 시행됐다. 해당 분야 종사자로서 우려되는 부분도 많으나, 원격진료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음으로 디지털치료제다. 디지털치료제는 디지털 환경을 이용해 질병을 관리 또는 치료하는 개념으로 이미 국내에서도 많은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가령 가상현실(VR)을 이용해 트라우마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ADHD)을 극복하거나, 재활운동이 필요한 사람이 디지털 환경을 통해 스스로 관리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의학교육이나 질병 예방 등 디지털 환경은 건강을 위해 무궁무진하게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의 급속한 발달로 야기되는 문제점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보격차다. 사실 의료서비스의 주된 소비층은 고령의 어르신들이다. 어르신들의 디지털에 대한 접근성은 떨어질 것이고, 급속한 디지털로의 변화는 이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디지털로 발생되는 건강 문제다. 예를 들면 최근 2년간 팬데믹으로 인한 배달앱 사용의 증가는 많은 아이들을 비만으로 이끌었다. 이 밖에도 민감한 의료정보(개인정보)의 보안도 풀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디지털은 우리의 삶의 질을 윤택하게 바꿔 놓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다만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적절한 중용을 지킨다면, 디지털 환경은 우리의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안상준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신경과 교수

[인천시론] 행안부 장관 균형발전 구상과 인천예술중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6일 한 인터뷰를 통해 기업과 대학, 특목고 등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수도권 집중화 해소와 균형발전을 위한 개인적 구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지만 논란이 컸다. 특히 개인적 견해를 공론화했다는 질타가 많았다. 하지만 그가 그런 구상을 하게 된 배경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도시재생의 여러 방편 중 ‘앵커(Anchor)’론이 있다. 197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제기된 이론으로 선박의 닻처럼 특정 장소에 위치한 시설이 주변 지역의 동반 발전을 이끈다고 주장한다. 특히 대학이나 병원 등의 비영리 공공기관에 주목한다.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의 실증 연구와 사례 분석을 통해 그 효과가 검증된 바 있다. 경북 경산이나 충남 천안 등이 중견도시로 성장한 데에는 그 지역 대학들의 역할이 컸다. 특목고가 주변 지역 집값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있다. 인천대 이종열 교수는 교육환경이 집값에 영향을 주며, 특히 특목고의 비중도 크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2017년). 민간기업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야 말할 것도 없다. LG의 파주, 삼성의 평택, 제조업의 성지 당진 등 그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이상민 장관은 이런 앵커시설의 긍정적 측면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앵커론도 한계는 있다. 부족한 도시 인프라는 어쩔 것이냐는 문제다. 전통적인 사회간접자본(SOC)은 물론 보육, 문화시설과 같은 생활SOC도 함께 확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장관을 비판하는 측에서는 이 점을 문제 삼은 경우가 많았다. 일리는 있지만 앵커시설이 사회 인프라를 확충하는 계기가 된다는 주장에는 여전히 힘이 실린다. 이 장관의 구상이 알려질 즈음 인천교육청은 예술중학교 신설 계획을 발표했다. 참 반갑고 고마운 소식이다. 그런데 학교의 소재지를 신도시로 결정한 배경이 혹 앵커효과를 간과한 것은 아닌지 아쉬움은 남는다. 물론 그래서 잘 못 되었다거나, 바꿔야 한다는 건 아니다. 무조건 원도심 우선이라는 것도 아니다. 7년 전에 입안되었으니 그럴 수 있었다. 다만 앞으로 그 같은 계획을 세울 땐 공공시설의 앵커효과를 고려해 달라는 제언 차원에서의 소견이다. 유정복 시정부의 핵심가치는 균형, 소통, 창조다. 지역 간, 세대 간 불균형 해소가 시정운영의 으뜸 목표다. 특히 제물포 르네상스, 뉴홍콩시티 등의 개발사업은 지역균형발전에 방점을 둔다. 앵커이론은 그의 효과적인 대안 중 하나다.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물론 전제는 소통이다.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이 장관의 구상은 선의에서 출발했지만 그 대전제를 소홀히 해 논란을 자초한 것은 아닌가 안타깝다. 이래저래 소통이 문제다. 이상구 인천대 도시행정학과 겸임교수

[인천시론] ‘송도람사르습지’ 가치 알고 존중돼야

‘풍전등화(風前燈火)’란 말이 딱 맞는 표현이겠다. 손바닥만큼 남겨둔 인천 송도갯벌의 처지다. 최근 다시 송도갯벌의 운명을 가를 논란이 불붙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는 국토교통부가 인천~안산 2구간(19.8km) 건설사업 지연을 이유로 송도갯벌의 습지보호지역 지정 해제를 인천시에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인천시가 습지보전법상 행위제한 예외 조항을 적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깊은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지역 환경시민단체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만일 도로가 가로지른다면 람사르습지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송도갯벌의 훼손이 불가피한 데다 세계적 희귀조류들의 활동지인 습지를 파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천시의 주관으로 그간 국토부·해수부·환경부·인천항만공사와 환경·시민단체, 지역주민들과 민관협의체를 운영한 바 있다. 그 결과로 만들어낸 대안을 국토부에 제출했다. 해당 구간 도로를 지하화하거나 습지보호지역 밖으로 우회하는 노선이 제시됐지만 영 마땅치 않았던 모양이다. 원안을 고수, 강행하겠다는 정부 관계부처와 인천시의 행태에 정당성이 얼마나 실릴지 미지수다. 현재로서는 협의의 대상인 환경부와 해수부의 협조가 관건이다. 여전히 환경부는 람사르습지를 통과하는 노선은 불가하다는 입장이고 해수부 또한 대체 습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요구하고 있다. 민선 8기를 이끌고 있는 유정복 인천시장이 인천 갯벌의 유네스코(UNESCO) 세계자연유산 등재와 소래갯벌 일대의 국가도시정원 조성을 천명한 마당에 송도갯벌을 두고 보이는 갈지자 행보에 대한 부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송도 습지보호지역은 안상수 전 시장 당시인 지난 2009년에 지정되었다. 람사르습지 지정은 지난 2014년 7월경 유정복 시장 재직 시 이뤄진 사항이다. 국내법에 따른 행위제한 예외를 따지고 있지만 람사르협약이라는 국제적 신뢰를 저버리는 동시에 유정복 시장의 업적을 이제와 스스로 뒤집어야 하는 인천시의 상황이다. 우리는 엄중히 지켜야 할 것과 지켜져야 할 것에 대해 말한다.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변함없는 선택이어야 한다. 대체 가능하지 않은 갯벌이라면, 인간의 생존에 중요한 수단이 될 갯벌이라면 지켜져야 할 존재임이 마땅하다. 그리고 인정해야 한다. 당연히, 허망한 몇 마디 말로 생태환경 보호와 지속가능한 미래가 되지는 않는다. 또 국토부와 인천시는 송도 습지보호지역 해제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어렵게 이뤄낸 민관 협의를 존중하며 습지 훼손을 피할 도로 건설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을. 세계적으로 각종 개발과 도시화로 동식물 서식지가 대규모로 파괴되는 현실에서 인천시의 최종 선택을 지켜본다. 지영일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인천시론] 그래서 악은 늘 가면을 쓴다

“악(惡)은 자신이 보기 흉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악은 늘 가면을 쓴다.” - 벤저민 프랭클린 악을 행하는 자는 스스로의 추함을 너무도 잘 알기에, 익명성이라는 가면 속에 자신을 가둔다. 거침없이 악행을 자행하지만 조금의 죄의식도 없는 그들에게 과연 피해자는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가면 속 숨겨진 그들의 민낯은 과연 어떨까? 2년 전,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N번방 사건에 그 해답이 있다.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하고, 이를 돈을 받고 팔기까지 했던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은 경찰에 체포된 직후 “멈출 수 없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피해자에 대한 사죄가 아닌 자신의 범행을 끝내줘 고맙다며 굳이 수사기관에 감사 인사를 하는 예의범절(?)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가면이 벗겨진 그곳에는 박사방 속 그토록 당당했던 모습이 아닌 그저 어떻게든 죄를 피하고자 몸부림치던 초라한 한 인간(?)이 있었다. 조주빈은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며 자해를 시도했고, 재판 과정에서는 수차례 반성문을 내기도 했다. 물론 징역 42년이 확정된 후에는, 자신은 여론재판의 희생양이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며 원래의 당당함을 찾아가는 듯하지만, 이미 그의 파렴치한 민낯을 보고 난 이후인지 별 감흥이 없다. 그런데 이번엔 그보다 더 흉한 소위 ‘엘’이라는 악이 나타났다. SNS를 통해 피해자에 대한 개인정보를 확보한 후 이를 사방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성착취물을 촬영케 하고, 이렇게 받은 성착취물을 무기로 협박을 해 또다시 성착취물을 촬영케 하는 마치 ‘개미지옥’처럼 피해자를 옥죄는 형태는 N번방과 똑같다. 하지만 ‘엘’은 N번방 사태를 파헤쳤던 추적단 불꽃을 사칭해 피해자를 유인하는 등 더욱 치밀한 행태로 범죄를 진화시켰다. 여기에 텔레그램 내 대화방을 수시로 만들었다 없애기를 반복하고, 닉네임도 수시로 바꾸는 등 혼선을 줬고, 급기야 언론 보도 후에는 텔레그램 계정을 탈퇴해 종적을 감춰버렸다. “FBI가 와도 못 잡을거다”라는 호언장담은 그 덤이다. 하지만 완전범죄는 없다. 이제 ‘엘’을 찾기 위한 모든 수단이 동원될 것이다. 전 국민에게 공개수배된 것과 같다. 그렇기에 현실 속 ‘엘’은 평생 음지에 숨어 혹시나 잡힐까 두려움에 떨며 살 것이다. 가면을 손에 쥔 채 ‘엘’의 민낯이 만천하에 공개될 날이 곧 올 것이다. 그것이 악의 결말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승기 대표변호사(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인천시론] 친족상도례, 범죄라도 가족이니까 괜찮아?

최근 인기연예인 박수홍씨가 소속사 대표였던 친형과 법적 분쟁을 벌이며 여론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30년 가까이 매니지먼트를 맡아온 친형이 수익정산을 제대로 해주지 않거나, 법인카드를 개인생활비로 무단사용하고 각종 세금 및 비용을 박수홍씨에게 부담시키는 등 약 100억원 상당의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분쟁의 큰 줄기이다. 당장은 양측의 진실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라, 섣불리 결과를 단정해선 안 되겠지만, 여론은 “가족이라도 그냥 넘어가선 안 된다”는 식의 응원글이 대세로, “형제끼리 형사고소까지 하는 건 너무하다”는 식의 클리셰같은 반응은 그리 많지 많다. 그런데, 이번 법적 분쟁을 다루는 언론보도마다 ‘친족상도례’라는 낯선 법률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형법 제328조 등이 규정하고 있는 친족상도례는 직계혈족이나 배우자, 동거가족, 동거친족 또는 그 배우자 간에 발생한 절도와 사기, 횡령, 배임 등 재산범죄에 대해서는 형을 필요적으로 면제하도록 하는 한편, 이외의 친족 간에 벌어진 이 같은 재산범죄에 대해서는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해 친고죄로 하고 있다. ‘범죄를 저질러도 가족이면 처벌할 수 없다’ 한줄로 요약가능한 친족상도례는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로마법이 그 근원으로, 대가족 형태로 가부장제를 근간으로 삼았던 우리 전통사회에서 가족 내 문제는 가족의 자율적으로 해결하라는 일종의 치외법권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핵가족 사회가 보편화되고, 가족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해선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보편화된 지금, 1953년 형법 제정 당시부터 도입된 친족상도례가 아직도 유효한지는 의문이다. 특히 돈 앞에서는 혈육간 정조차 무력해지는 현실은 너무 아프다. 노부모의 재산을 제 것처럼 탕진하는 자녀들, 정신적 장애가 있는 가족을 돌보며 뒤로는 돈 빼돌리기에 여념이 있는 친척들, 심지어 이혼소송이 제기되자 상대방의 패물을 몰래 가져가버리는 배우자까지는 생각보다 나쁜 혈육이 많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노인에 대한 경제적 학대 가해자의 77.5%(2021 노인학대 현황보고서), 장애인에 대한 경제적 착취의 19%(2019 장애인학대 현황보고서)가 피해자의 친족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법은 한 시대의 ‘상식’을 반영하는 교본이다. 70년 전 농경사회에서나 통했을법한 ‘친족상도례’가 21세기인 지금, 누구가의 면죄부로 악용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제 ‘친족상도례’를 수술대에 올려야 할 때가 왔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인천시론] 골치 아픈 분들께

‘골치 아프네.’ 얼마 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가 푸념 아닌 푸념을 한 적이 있다. 실제로 아픈 것은 아니었으나, 일이 성가시거나 어렵다는 의미로 쓴 것이었다. 골치는 머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골치가 아프다는 것은 성가신 일이 실제로 두통을 일으킬 정도로 난해하거나, 두통처럼 죽을 만큼의 통증은 아니지만 신경쓰인다는 의미의 관용구일 것이다. 실제 두통도 이와 비슷하다. 두통은 우리가 살면서 한번쯤은 무조건 겪었을 만큼 흔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두통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은 10명 중 1명꼴이다. 또 10명 중 4명은 두통이 있을 때 자가진단을 하고 진통제를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두통과 관련된 연구와 통계는 재미있는 결과가 많다. 예를 들면 편두통으로 결근이나 결석을 하는 비율이 과거에 비해 2.5배 증가했다. 체질량지수(BMI)가 높을수록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 밖에 두통을 느끼는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9.2%가 ‘월요일’에 가장 많은 두통을 느낀다고 답하기도 했다. 두통은 크게 ‘일차성 두통’과 ‘이차성 두통’으로 구분한다. 일차성 두통은 우리가 생각하는 두통으로 두통 자체(원발성)가 질환인 경우이며 이차성 두통은 뇌경색, 뇌출혈 등의 질환이 원인이 돼 발병하는 경우를 말한다. 두통의 90%가 일차성 두통인만큼 이번 칼럼에서는 일차성 두통 위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일차성 두통은 ‘긴장성 두통’과 ‘편두통’이 많다. 긴장성 두통은 근육이 긴장해 나타나는 두통이다. 우리의 몸은 어깨, 등, 머리를 감싸고 있는 근육이 연결돼 있다. 잘못된 자세, 과도한 신체 활동 등으로 근육이 긴장하면 머리를 감싸고 있는 근육이 같이 긴장해 조이는 듯한 통증이 나타난다. 이에 반해 ‘편두통’은 한쪽 머리가 아픈 증상을 말한다. 4시간에서 72시간 지속되는 경우가 5회 이상이거나 욱신거리는 느낌이 있을 때, 한쪽이 아플 때,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아플 때 중 2가지 이상에 해당될 때 편두통으로 진단한다. 또 구토가 유발되거나 밝거나 시끄러운 장소에서 발현되는 특징이 있다. 두통 치료는 사실 근본 원인을 제거해야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정확한 진단을 통해 두통을 관리한다고 생각하면 좋다. 긴장성과 편두통 모두 생활습관 개선으로 충분히 호전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효과가 없다면 약물치료를 하게 된다. 두통을 즉시 낫게 하는 약은 없다.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두통 예방을 위해서는 △6시간 간격으로 세 끼 챙겨 먹기 △7시간의 충분한 수면 △8초간 목 근육을 풀어주는 스트레칭, 6·7·8 규칙을 기억하면 좋다. 골치 아픈 많은 사람들이 두통으로부터 해방되길 바란다. 안상준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신경과 교수

[인천시론] 사라진 ‘지속가능발전교육 거점도시’ 복원하라

유엔(UN)이 지속가능 지구 공동체 실현을 위해 전 세계에 ‘지속가능발전교육 거점도시(RCE)’를 인증하고 있다. ‘RCE(Regional Centres of Expertise)’란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의 구현에 필요한 지속가능발전교육(ESD) 확산을 위한 거점을 의미한다. 유엔대학(UNU)에서 세계 각지에 조직한 지역전문교육센터이자 지역 전문기관들의 네트워크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180여개 세계 도시들이 RCE로 지정됐다. 우리나라는 2005년 통영이 세계 8번째이자 국내 최초로, 인천은 2007년 국내 두 번째로 RCE인증을 받았다. 광역지자체로는 매우 드문 경우다. 당시 안상수 인천시장이 UN대학이 소재한 일본 동경으로 날아가 인증을 호소하는 프리젠테이션을 직접 진행했다고 한다. 그 이후 지역에서 유엔지정 지역전문교육센터의 이름으로 지속가능발전교육을 진행할 수 있었다. 허나 15년이 흐른 지금, 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뿐더러 존재의 흔적을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인천RCE는 별도의 전담조직을 두지 않고 인천시가 교육사업비 명목의 예산만을 수립, 대행하는 구조였다. 5천만원으로 시작한 교육예산이 깎이고 깎여 결국 중단되자 RCE도시 인천의 맥이 이미 수년 전에 끊기고 말았다. 인천RCE사업 주무부서도 인천시 국제협력과, 인천시국제교류센터로 이어지다 국제교류센터 해체 후 그 업무가 인천관광공사로 이관되면서 주소를 잃게 됐다. 이유가 무엇이든 어느 순간 사라진 ‘지속가능발전교육 거점도시(RCE)’를 복원해야 한다. 인천시가 탄소중립과 환경교육에 힘을 기울이려 하는 마당이다. 환경·경제·사회의 조화와 공존을 염두에 두고 있다. 지속가능발전목표와 더불어 공공영역에서의 ESG를 고민하고도 있다. 이는 시가 도시개발과 지속가능도시로서의 조화와 공존을 모색하기 때문이리라. 이를 위해서는 유용한 지역자원을 파악하고 조직해야 한다. 이들과의 협업과 연대는 필수다. 효율적인 역할분담과 동시에 저변확대, 시민참여도 따라야 한다. 통영시는 통영RCE를 통해 이미 범접하기 어려운 RCE의 국내 성지가 됐다. 지역의 미래를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가려는 노력, 즉 시민참여의 정도, 지역사회 주체 간 공동협력, 도시계획과 운영에서의 차별성에서 그렇다. 올해 초 광명시는 1년이 넘는 준비기간을 거쳐 어렵게 RCE 도시인증을 획득했다. 도시발전 기조를 새롭게 구축하고 시대에 맞는 도시정체성을 강하게 추구하려는 의지의 발로다. 부산시의 경우 지난 5월 부산연구원을 통해 ‘부산RCE 국제인증 필요성과 획득 전략’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지역의 지속가능발전 역량 결집과 체계화는 물론 도시브랜드 제고가 목적이었다. 우리와 ‘RCE사용법’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지영일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인천시론] 황색언론, ‘비극’을 ‘가십’으로 소비하다

거장 올리버 스톤의 1994년작 영화 ‘킬러’의 영문타이틀은 ‘Natural Born Killers’다. ‘타고난 살인자’라는 뜻의 이 영화는, 미 대륙을 횡단하며 무차별 살인을 일삼는 연쇄살인마 커플의 소소한(?) 일상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잔인한 슬래셔 무비로 오해하진 말자. 올리버 스톤이 누구인가. 내놓는 영화마다 평단의 극찬을 받는 할리우드 최고의 트러블 메이커이다. 그에게 두차례 아카데미 감독상을 선사했던 영화 ‘플래툰’과 ‘7월 4일생’은 각 ‘미국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과 ‘PTSD로 고통받는 전쟁영웅의 서사’를 정면으로 다루며 레전드로 남게 됐다. 미국이 세계를 구원한다는 영웅적 플롯이 일반적인 시대, 유독 그만은 비주류를 택한 것이다. 그런 그가 영화 ‘킬러’를 통해 비판하고자 한 성역은 무엇일까. 바로 언론이다. 연쇄살인마 커플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사화하며, 그들을 연예인마냥 친근한 존재로 만들어 준 언론이 그 주인공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경찰에 체포됐을 때, 이미 그들은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고, 광적인 팬들도 생겨났다. 재판정 앞에서 한 여성이 들고 있던 ‘Murder Me!(날 죽여줘요)’라는 피켓 속 응원문구가 이 모든 상황을 한마디로 설명해 준다. 최근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인하대 캠퍼스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망 사건’이 그것이다. 한 남학생이 단과대학 건물에서 동기 여학생을 성폭행하다가 3층에서 추락해 숨지게 한 충격적인 사건을 두고, 일부 언론이 보인 행태는 가히 엽기적이다. 추락한 피해자가 발견됐을 당시의 상태를 부각해 ‘인하대서 여성 옷 벗은채 피 흘리고 쓰려져’라는 선정적 제목과 함께, 매 기사마다 ‘나체로’, ‘알몸으로’ 라는 헤드라인을 빼놓지 않으며 조회수 장사에 집중했다. 특히 언론에서 피해자의 만취상태를 강조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남학생이 성폭행을 해 사람을 죽였다’가 아닌 ‘여학생이 술에 취해 성폭행당해 죽었다’는 식으로 논점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최초 발견한 사람이 부럽다’는 식의 몰상식한 댓글부터, ‘술이 문제다’, ‘왜 밤 늦게 다니냐’는 안타까움을 가장한 댓글까지 하나같이 2차 가해에 여념이 없다. 누군가의 비극이 가십으로 소비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영화 ‘킬러’의 엔딩은 쿨(?)하다. 연쇄살인마 커플은, 자신들의 탈옥을 돕고 그동안 자신들을 밀착취재해온 TV쇼 앵커를 향해 이렇게 내뱉는다. “넌 쓰레기야, 넌 시청률 때문에 우릴 도왔어” 그리고 그를 살해하는 것으로 그들의 살인행각은 끝난다. 이승기 대표변호사(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인천시론] 뇌질환 무서워 마세요

오는 7월22일은 ‘세계 뇌의 날’이다. 세계 뇌의 날은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 뇌전증 지원에 결의한 것을 기념해 세계신경과협회가 7월 22일로 지정했다. 뇌의 날에는 매년 뇌질환 중 하나를 선정해 해당 질환에 대한 경각심을 알리고 있다. 뇌질환은 뇌전증을 비롯해 뇌졸중, 치매, 파킨슨병, 두통, 어지럼증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중독이나 우울증 등도 뇌질환으로 분류한다. 이 밖에 아직 치료법을 찾지 못한 희귀 뇌질환도 많다. 뇌는 우주와 함께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으로 꼽히며,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기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뇌질환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 △심각성 △치명성 등 무거운 속성을 떠올린다. 하지만 뇌질환은 제때 정확한 치료를 받는다면, 지속적으로 관리해 나갈 수 있는 질환이기도 하다. 가령 뇌졸중은 신속하게 치료를 받는다면 무탈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파킨슨병은 약물로 증상을 유지 및 관리해 나갈 수 있다. 뇌졸중은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 뇌가 손상되는 질환이다. 흔히 ‘중풍’이라고 한다. 국내 주요 사망원인 4위 질환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증상은 뇌의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순간 나타난다. 증상이 나타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뇌세포가 죽기 때문에, 무조건 빨리 응급실에 내원해 막힌 혈관을 재개통하거나 출혈부위의 시술 또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뇌졸중이 발병했을 때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응급처치는 없다. 따라서 증상이 발생하면 무조건 119에 신고해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뇌졸중이라고 특정지을 만한 증상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한쪽 팔다리에 힘이 없거나 저리고 감각이 없는 경우’, ‘말을 못하거나 발음이 어눌해지고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 등이다. 지금까지 뇌졸중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였다면, 이제는 예방법이다. 다행히 뇌졸중은 예방할 수 있는 질환이다. 중장년에 접어든 독자들이 있다면 고혈압, 당뇨병, 심장질환 등 뇌졸중 위험질환이 있는지 여부를 일찍 발견해 적극적인 관리·치료를 해야 한다. 또한 소금이나 콜레스테롤 섭취를 제한하는 것이 도움이 되며, 금연·절주·스트레스 관리·운동은 뇌졸중을 예방하는 필수 요소다. 어디서든 항상 듣는 건강 유지법이지만, 건강관리의 시작은 기본에서 출발한다. 진료현장에서 가장 안타까운 경우가 치료시기가 늦어, 고생하는 환자들을 봤을 때다. 모든 질환이 똑같지만, 특히 뇌질환은 예방과 신속한 치료가 중요하다. 안상준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신경과 교수

[인천시론] 너무 예쁜 광장과 시청 출입이 주는 단상

삭막한 도심에서 시청 앞 마당 ‘애뜰광장’이 싱그러운 여유를 주는 요즘이다. 짙푸른 잔디밭을 배경으로 온갖 꽃들과 장식물들이 광장을 장식하고 있는 그곳. 마치 여느 어린이시설의 잘 꾸며진 정원을 보는 듯 착각이 들 정도다. 관공서라는 인상을 갖기 어렵다. 시민들은 휴식 공간이면서 만남의 장소로 그곳을 애용하고 있다. 옛 기억을 더듬어보면 인천애뜰 잔디광장은 차들이 빡빡하게 채워진 주차장이었고 그 앞으로는 차들이 분주히 오가는 복잡한 도로로 이뤄져 있었다. 2019년 11월께 인천시청과 차도로 분리됐던 광장을 지상으로 연결해 시민 소통·관광·문화공간으로 새롭게 꾸민 ‘인천애(愛)뜰’ 광장이 시민에게 전면 개방됐다. 당시 인천시는 단절과 불통의 상징처럼 보일 수 있는 시청 주변 구조를 개방과 소통의 구조로 변화시킨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수시로 오가며 볼 때 좀 과하지 않나 싶기까지 하다. 청사 정문 계단까지 이용해 만든 꽃밭이며 문 앞까지 내놓은 여러 개의 큰 화분들이 오히려 빽빽해서 통행을 방해하거나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어렵게까지 만드는 것은 아닌가 걱정될 정도다. 인천시청에는 광장문화가 사라진 것은 아닐까 싶어서다. 너른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자발적인 만들어낸 집회, 공연 등이 광장문화의 요체라면 현재는 불가능에 가깝다. 애뜰광장을 거쳐 청사에 들어가려면 색다른 또 하나의 경험이 기다리고 있다. 통과의례와 같은데 직원이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위해 가는지 묻고 확인한다. 사방으로 문은 많이 달려있으나 모두 열려있지는 않다. 직원이야 전자카드가 있어 출입이 자유롭지만 소위 ‘민원인’은 누군가 열어줘야 한다. 계단을 이용한 부서출입도 편안치 않다. 이는 코로나19가 엄중하던 시절엔 시민과 공무원의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지금도 그럴까? 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일까? 아무튼 이 모든 사정이 엄중한 ‘통제’로 읽힌다. 이래저래 시청을 찾은 이들은 불편과 불쾌감을 감수하는지도 모르겠다. 옛 기억을 또 다시 끄집어낸다. 2019년 10월께 인천시청사 출입통제를 전면 철회하라는 시민단체의 항의가 빗발쳤다. 당시 항의단체들은 시민들을 통제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오해될 소지를 경고했었다.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청은 공공의 공간으로서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괜한 차별이자 통제, 인권침해라는 구설에 오를 필요 있겠는가? 닻을 올린 민선8기 인천시는 시민 중심의 소통시대를 천명했다. 조직과 문화에서 칸막이가 있다면 거둬낼 일이다. 곳곳을 장식한 꽃들과 묵직한 화분, 전에 없던 화단들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이 청사 출입에 따르는 삼엄함과 대비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영일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인천시론]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탓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거야’/ 그러자 난 내가 미워졌다.” 독일의 극작가 겸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그의 시(詩)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통해, 나치의 만행과 2차 세계대전의 참상 속 비극을 증언했다. 그는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덴마크와 체코, 모스크바, 미국 등 15년간 망명생활을 하며, ‘펜’을 무기로 반나치투쟁을 역설해왔다. 그럼에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슬펐는지, 그는 ‘사상자 명부’라는 또 다른 시에서, 나치의 체포명령을 피해 망명했으나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한 벤야민을 비롯 먼저 떠난 동료들을 하나하나 애도했고, 이후 ‘오직 운이 좋았던 탓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토로한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이는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한번이라도 소중한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겪어봤을 삶의 통과의례인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단지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때론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를 비하하고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어린 자녀들을 잃은 부모들을 향해 “그만 좀 우려먹어라”, 심지어 “죽은 자식들을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식의 공감능력을 의심케 하는 막말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10년 46명의 군인들이 전사한 천안함 피격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민군합동조사단 및 미국·영국·스웨덴·호주 등 국제조사단의 조사 결과,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선체가 반파되며 침몰했음이 확인되었지만, 침몰원인을 둘러싼 각종 음모론은 꺼질줄 몰랐다. 암초 내지 동맹국 잠수함과 충돌했다는 설부터, 금속피로로 배가 갈라져 침몰했다는 설까지 숱한 루머가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전파됐고, 어느 순간 최원일 전 함장을 비롯한 살아남은 장병들은 패잔병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세월호 유족과 천안함 생존자들 모두 살아남은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자기혐오로 고통의 시간을 겪고 있음에, 굳이 그들을 욕되게 하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누군가의 슬픔에 기대어 한몫 챙기려는 정치권과 그들의 추종자들이 그 주역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슬픔마저 정략적 판단의 대상이 되는 세상, 우리 사회가 타인의 슬픔에 온전히 공감할 수 있도록, 이제 그만 그대들은 빠져 달라. 이승기 대표변호사(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인천시론] 때 이른 불볕더위, 폭염 예방 대책

최근 전세계 곳곳에 때 이른 폭염이 찾아왔다. 미국에서는 거대한 열돔 현상이 발생했으며, 프랑스와 스페인은 한낮 최고 기온이 40도를 넘어서 야외 활동이 금지됐다. 이제는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가 아닌, 폭염으로 인한 거리두기가 시행될 것 같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벌써 전국의 낮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어섰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폭염주의보가 발효됐다. 우리는 이전부터 ‘이열치열(以熱治熱)’ 또는 더위를 ‘먹었다’고 표현하며, 더위에 관대하고 여름에 더운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나친 더위는 우리 몸에 독이 된다. 사람은 체온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항온동물로 36~37℃를 유지한다. 하지만 폭염과 같은 외부 환경에 의해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체온이 올라가면 문제가 발생한다. 발생하는 증상으로는 △두통 △어지럼증 △피로감 △근육경련 등이 있다. 이러한 증상은 흔히 ‘더위 먹었다’고 하는 증상과 유사한데, 이를 일사병이라고 한다. 일사병은 체온이 37~40℃인 상태로, 휴식을 취하고 적절히 수분을 보충하면 나아진다. 하지만 체온이 40℃이상 올라가면 문제가 심각하다. 이러한 상태를 열사병이라고 한다. 열사병의 경우에는 △열경련 △열실신 △열부종 △의식소실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심하면 사망에도 이를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만성질환자와 노인들은 기온에 대한 적응능력이 낮아 이러한 온열질환에 취약하다. 여름철 기온이 오르면, 당뇨병이나 심근경색 등 만성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기온이 낮아지면 ‘뇌졸중’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보고도 있다. 폭염으로 체내 수분이 감소하면서 혈전이 생기기 쉬운 환경이 조성돼 기존의 혈전은 더 커지거나 새 혈전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폭염경보나 주의보가 발효됐을 때는 특히 만성질환자나 노인은 외출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부득이하게 실외에서 활동할 경우에는 주기적으로 수분을 섭취하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 옷차림은 열흡수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밝은 색깔의 헐렁한 옷이 좋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밖에 실외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완화된 만큼, 외부에서 운동 또는 작업을 할 때는 마스크를 벗어두는 것도 좋다. 지구 온난화와 함께 폭염은 재난의 수준까지 왔다. 기후위기는 곧 우리의 건강 및 생존과도 연결된 이슈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국내에서는 지자체별로 무더위 쉼터, 그늘막 등 폭염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이제는 폭염도 태풍처럼 경각심을 갖고 대비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 안상준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신경과 교수

[인천시론] 뒷걸음 친 정부 환경정책, 지역 독자 행보로 선도를

시행을 코앞에 두었던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유예됐다. 환경부는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침체기를 견뎌온 중소상공인을 고려해 일회용 컵 보증금제 시행을 오는 12월1일로 6개월 미룰 것이라고 밝혔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소비자가 일회용 컵에 담긴 음료를 살 때 자원순환보증금 명목으로 300원을 더 내게 하는 제도다. 컵을 반납하면 그 돈은 돌려받는다. 일회용 컵 회수율을 높여 재활용률을 높이고 나아가 일회용 컵을 덜 쓰게 하겠다는 게 제도의 취지다. 대상 매장은 스타벅스 등 매장 수가 100개 이상인 가맹점들이다. 전국 3만천여가 해당되는데 당초 계획대로라면 오는 7월10일부터 적용할 예정이었다. 환경부가 지난 2019년 1회용품 줄이기 로드맵을 내놓았다. 2022년까지 1회용품 35%를 줄이겠다는 포부였다. 그를 위해 올 4월부터 매장 내 플라스틱 컵, 용기, 포크·수저 등 사용금지 규제 시행, 6월 일회용컵 보증제 시작, 11월엔 매장 내 종이컵, 빨대와 젓는 막대, 우산 비닐 등의 사용금지까지 순차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간 코로나19의 확산과 자영업자들의 반발로 제도는 캠페인 수준에 머물렀을 뿐이다. 이 정책은 애초부터 따라야 할 입장에서 반발이 불가피한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 당장 해당 매장은 추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이용자(소비자)로서는 위생에 대한 불안, 불편함을 들어 썩 반기지 않는다. 이번 환경부의 입장 선회는 또한, 정권교체에 따른 눈치보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식음료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과 간담회를 거쳐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지만 국민의힘이 정부에 시행유예를 요구했던 점에서 그렇다. 이미 식품접객업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규제 재시행을 앞두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시행유예를 제안하자 환경부가 입장을 선회한 바 있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지난 2020년 6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됐다. 2년의 시간이 그렇게 부족했을까?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무책임, 정권 눈치보기, 폐기물 발생 억제와 자원순환을 위한 정책을 후퇴시켰다는 오점을 남겼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정부 탓을 하며 우리는 손을 놓고 있을 것인가? 인천시 차원에서도 카페 내 일회용 컵 사용 실태를 파악하고 정책 대응할 필요가 있겠다. 자원순환도시, 해양도시로서 바다로 무수히 흘러드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고려하면 독자적인 차원의 대응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후퇴한 정부의 행태와 대비되는 전형을 만들 기회가 될 것이다. 인천시 자원순환 및 해양환경 관련부서에서 발 빠르게 검토하고 추진체계를 만들 일이다. 지영일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인천시론] 스윙보트, 투표로 세상을 바꾼다고?

만약 내가 던진 한 표로 선거의 승패가 갈린다면 어떨까? 2008년작 영화 ‘스윙보트(Swing Vote)’는 이런 발칙한 상상을 스크린으로 옮겨왔다. 세계적인 대배우 케빈 코스트너가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투표를 독려하고자, 직접 제작과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모두가 알지만 차마 외면해온 선거 뒤편에 감춰진 추한 민낮을 블랙 코미디 형식을 빌려 실컷 조롱하고 있다. 미국의 작은 도시에 서는 버드는 이혼 후 홀로 딸을 키우는 싱글대디로 퇴근 후 술을 마시는 게 일상인 한량이다. 하지만 미국 대선에서 기계적 결함이 발생해, 버드 홀로 재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문제는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의 후보가 똑같은 표를 얻으며, 버드의 한 표로 최종승자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재투표까지 남은 10일 동안 양당 대선캠프는 오직 버드만을 위한 선거캠페인을 펼치게 된다. 버드의 취향과 관심을 쫓는 치열한 표심잡기 경쟁에, 후보자들은 아첨과 뇌물공세를 펼치고, 언론은 버드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보도하기 바쁘다. 심지어 버드가 생각 없이 던지는 말에, 공화당은 지역개발이라는 기존의 공약을 뒤집고 환경보호정책을 내세우는가 하면, 이민자보호정책을 펴던 민주당은 이민자 유입을 막겠다며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버드 한명을 위한 포퓰리즘 공약이 남발하는 순간이다. 10일간 유명인사가 된 버드, 그의 표심을 얻기 위한 후보자들의 좌충우돌 행태, 이를 뒤쫓는 언론까지 선거를 둘러싼 인간군상을 통해, 한낱 종이에 불과한 한 표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하진 새삼 깨닫게 된다. 스윙보터, 특정 정당과 후보자가 아닌 선거 당시의 정치 상황이나 관심 정책 등에 따라 투표하는 유권자로, 흔히 ‘부동층’이라 부른다. 물론 정치에 무관심한 나머지 대세에 따르는 짝퉁 스윙보터도 있지만, 대다수 우리 국민들은 정치가 곧 일상을 바꾼다는 신념으로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가며 옥석가리기를 하는 찐 스윙보터이다. 영화 역시 처음에는 주목받는 상황 자체를 즐기며 오락가락하던 버드가, 마지막에는 후보들과 함께 정책토론회를 열 정도로 적극적 스윙보터의 모습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투표가 아닌 ‘투표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영화는 투표소에 들어가는 버드의 밝은 표정, 깨달음을 얻은 듯 환한 미소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6. 1. 지방선거가 코앞인 지금, 내 표가 갖는 무게를 생각한다면, 우리 모두 ‘찐’ 스윙보터가 되는 게 어떨까 생각해본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인천시론] 지역참여로 추진되는 해상풍력발전이 중요

해상 풍력발전이 대안에너지원이자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국가적 관심을 받고있다. 해상풍력을 통해 에너지전환은 물론 에너지 주권의 강화와 더불어 연관기업의 육성·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측면의 기여까지를 고려한 선순환체계가 마련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자칫 간과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특히 인천과 같이 해상풍력을 추진하는 경우가 그렇다. 해상의 경우 풍력발전시설 조성 시 철새, 갯벌, 부유사 등 자연환경, 거주환경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수 있다. 관련 정부부처인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가 해상풍력 환경영향평가협의회에 지역 시민단체 참여를 신중히 검토하고 보장해야 하는 이유다. 인천에서는 현재, 한국남동발전(용유무의자월, 덕적 해상 640㎿), 오스테드 코리아(덕적 해상 1천600㎿), C&I레저산업㈜(굴업도 주변 해상 233㎿), OW 코리아(덕적도 외해 1천200㎿)가 해상풍력에 나섰다. 한국남동발전, C&I레저산업㈜는 해상풍력 발전단지사업의 환경영향평가 가시화 단계로 체계적 평가를 위한 준비가 매우 필요한 상황이다. 통상 해상풍력 개발절차는 타당성 등 입지조사를 시작으로 해상 풍황 측정(1년), 발전사업허가 취득, 환경영향평가 및 해역이용 협의, 발전기 공유수면 점·사용허가, 착공·준공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중 ‘환경영향평가 및 해역이용 협의’ 단계에서 해상풍력과 관련된 각종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사업에 대한 우려와 요구를 수렴한다. 환경영향평가협의회는 환경영향평가와 관련한 전반을 심의·조정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환경부 장관, 계획수립기관의 장, 산자부 장관이 구성주체가 돼 위원장 등 10명 이상으로 구성된다. 그 과정에서 자칫 사업에 우호적이거나 관계기관 인사 중심으로만 꾸려질 가능성, 입지 여건이나 지역 특성을 반영하지 못할 운영의 공산이 우려스럽다. 신뢰할 수 있는 환경영향평가를 위해 지역 이해도가 높은 인천지역 시민단체의 환경영향평가 과정 참여가 너무도 당연하고 필요하다. 또한 이는 환경영향평가법 제1조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계획 또는 사업을 수립·시행할 때에 해당 계획과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예측·평가하고 환경보전방안 등을 마련하도록 하여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과 건강하고 쾌적한 국민생활을 도모’하려는 것이 환경영향평가법의 제정 목적이다. 환경영향평가협의회가 형식적 구성으로 흐를 경우 환경영향평가법의 취지를 무시했다는 논란과 함께 지역사회를 경시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무엇보다, 중요한 에너지정책을 두고 민관이 대립하는 모습도 매우 곤란하다. 결국 환경부와 산자부 등 관계부처의 지혜로운 판단이 필요한 동시에 인천시의 노력이 중요한 사안이다. 지영일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인천시론] 친족 성폭력, ‘가족’이라는 속임수

“악마의 가장 큰 속임수는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반전영화의 교과서인 ‘유주얼 서스펙트’ 속 명대사이다. 27명의 사망자와 함께 9천만달러가 증발한 희대의 유혈극이 발생하고, 전설적인 범죄자 ‘카이저 소제’가 배후로 지목되지만, 누구도 그 정체를 알지 못한다. 유일한 생존자인 절름발이 ‘버벌’은 사건 발생 이전 6주간의 여정을 통해 카이저 소제와 직접 마주했던 경험을 공포에 질려 진술한다. 결국 경찰은 부패한 전직형사 키튼을 카이저 소제로 결론짓고, 결정적 단서를 준 버벌을 풀어준다. 이후 경찰서를 빠져나온 버벌의 절뚝거리던 걸음이 서서히 완벽한 워킹으로 바뀌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절름발이가 범인이다”라는 역사상 최악의 스포일러를 탄생시킨 명장면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자가 범인이라는 설정은 반전영화의 오랜 공식이다. 하지만 영화는 곧 현실의 반영이라 했던가. 최근 친족 성폭력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가족이라는 단어의 본질적 의미가 흔들리고 있다. “내 아이를 가졌으니, 넌 내 아내”라는 해괴망측한 논리로 의붓딸을 9세 때부터 12년간 343회 성폭행하고 임신·낙태를 반복케 해 징역 25년을 선고받은 50대 남성부터, ‘일주일에 3번, 쉬는 주 없음. 부족 횟수에 대해 그 다음 주로 추가됨’이라는 사실상 성노예 각서와 같은 메시지를 보내며, 장기간 10대 의붓딸을 강간해온 혐의로 구속된 40대 남성까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역겨운 인면수심의 만행들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친족 성폭력은 지난 2016년 438건, 2017년 422건, 2018년 465건, 2019년 400건, 2020년 418건으로 하루 1건 이상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특수성으로 신고조차 못한 채 덮어버리는 ‘암수범죄’는 제외한 왜곡된(?) 수치다. 결국 삶의 안식처라 믿었던 가족조차 날카로운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아픈 진실을 직시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고 이후의 삶을 안정되게 살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게 시급하다. 또한 친족 성폭력 대부분이 피해자가 미성년자일 때 시작되는 점을 고려한다면, 학교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가 범행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찰과 상담 역시 필요하다. 가족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믿게 만드는 것, 친족 성폭력의 속임수는 반전영화의 그것보다 치밀하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