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이 결딴낸 우리말’

’수급(首級)’은 ‘싸움터에서 벤 적군의 머리’이다. 그런데 황석영의 ‘삼국지’에 “장비의 수급을 베어든 범강과 장달은… ”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장비의 목을 벤…”이 맞는다. 이문열의 ‘삼국지’에 “집에 돌아 와 급히 말에 안장을 매면서도 유비는 크게 불안해하지 않았다”는 문장이 있는데 “안장을 매다”보다는 “안장을 메우다”가 더 안성맞춤이다. ‘메우다’는 ‘말이나 소의 목에 멍에를 얹어서 매다’라는 뜻이다. 장정일 ‘삼국지’에 “조조의 대군이 들이 닥치는 마을은 사람들이 모두 집을 버리고 산속으로 피난 가는 바람에…”에서 ‘피난’은 ‘피란’으로 고쳐야 한다. ‘피난’은 ‘홍수 따위의 재난을 피하여 멀리 옮겨 감’이고, ‘피란’은 ‘난리를 옮겨 감’이기 때문이다. 1968년 학생잡지 ‘학원’의 편집기자로 시작해 30여 년 동안 취재와 편집 일을 하며 ‘남의 글을 눈 여겨 보아 온’ 권오운 시인이 최근 펴낸 책 ‘작가들이 결딴낸 우리말’을 보면 문학이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유명 소설가 50여 명의 글 실수를 집어낸 ‘작가들이 결딴낸 우리말’ 가운데 이런 문장도 있다. “남자 밑에 깔려 색을 쓰면서도 카르멘인가 뭔가 그따위 고상을 떨어야 하는 여자”(김별아)에서 ‘고상’은 오문이다. ‘언행이 고상(高尙)하다’라고 쓸 수는 있지만, ‘고상’은 떨 수도, 부릴 수도, 거릴 수도 없다. “장사하는 일로 일생을 늙어와서 잔푼돈의 셈에 민감한 그런 사람들”(배수아)에서 잔푼돈은 ‘잔돈푼’(얼마 안 되는 돈)의 잘못이다. “그녀는 배신자이며 도둑이며 화냥녀였다”(공지영의 ‘봉순이 언니’)에서 ‘봉순이’는 ‘화냥년’이 아니다. ‘화냥기’는 ‘계집의 바람기’, ‘화냥질’은 ‘서방질’, ‘화냥년’은 ‘서방질을 하는 계집’이다. ‘봉순이’는 유부녀가 아니라 처녀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 ‘화냥녀’는 ‘화냥년’이 아니라 ‘화냥女’다”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는 있겠다. “매니큐어를 한 내 발톱”(김인숙의 ‘물 위에서’)도 틀렸다. 매니큐어는 손톱을 아름답게 꾸미는 화장품이고, 발과 발톱을 곱게 다듬는 화장법은 ‘페디큐어’다. “성실한 독자라면 나뿐 아니라 누구라도 어휘 사용의 문제를 짚어 낼 수 있다. 작가들이 기분 나빠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술 한 잔씩 사야 할 것”이라는 권오운 시인의 말이 그럴듯 하게 들린다. / 임병호 논설위원

‘바보상자’

가족간의 대화를 단절시키는 것이 TV다. 저녁밥상을 물리고 나면 온 가족이 돌아가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곤했던 가족문화가 TV란 괴물이 나오면서 망가졌다. 초저녁 거실 공간에서 이 채널 저 채널을 돌려가며 멍청하게 TV만 바라보던 가족들은 이윽고 황금시간대가 지나면 잠 자려고 각기 제방으로 들어간다. 이로써 그날 일과는 끝이다. 소중한 가족간의 저녁시간을 이렇게 낭비하곤 한다. 토크쇼라야 시시콜콜한 그 얘기가 그 얘기다. 연속극이래야 그야말로 연속극적으로 일부러 짜맞춘 얘기다. 이런데도 TV화면에 따라 일희일비한다. TV노예가 됐다. 중독증에 걸려도 단단히 걸렸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남편이나 아내 없이는 살아도 TV 없이는 못산다는 TV족속이 적잖다. EBS가 2004년 12월에 ‘20일간 TV끄고 살아보기’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다. 당시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131가구 중 130가구가 여전히 TV를 보고 있는 것으로 보도된 것을 보면 TV중독이 얼마나 극심한 가를 짐작케 한다. 그런데 아직도 TV없이 사는 집이 딱 한 군데 있는 과천 어느 40대 가장의 집 저녁 가족 얘기는 정말 다정다감하다. TV에 빼앗겼다가 되찾은 가족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실감케 한다. 국내 TV가 흑백에서 컬러로 방영된 것은 1980년이다. 당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가 초법적으로 통치하면서 민중영합책으로 준비가 덜 된 컬러방송을 우격다짐으로 몰아쳐 앞당겨 방송케 한 것이 컬러방송의 시작이었다. 그 무렵 지지대子가 있었던 신문사에 TV칼럼을 연재했던 소설가 최인호씨는 TV를 가리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바보상자’라고 했던 것을 기억한다. TV가 ‘바보상자’인 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뉴스의 속보성, 현장성은 TV의 강점이다. 볼만한 다큐멘터리도 더러는 있다. 그러나 대체로 TV중독증의 폐해는 갈수록 더 심해진다. TV채널에 매달리는 시청이 아니고, TV채널을 끌 줄도 아는 신생활 시청의 지혜가 있어야 할 때다. / 임양은 주필

무서운 중국

중국은 올 경제성장률을 8%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는 무려 9.9%였다. 이같은 고도성장률속에 국방예산을 12.6% 늘려 302억달러(2천838억 위안)로 책정했다. 그러나 관측통은 중국 국방비는 공식발표보다 통산 2~3배가 더 많은 것이 통상례인 점에 비추어 실제 국방비는 9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본다. 거대한 전폭기 기지인 6만7천500t급 초대형 항공모함 수척을 올해 보유하는 것은 이런 군사대국 지향의 국방예산 증액 배경 중 하나의 사례다. 올해 마오쩌둥(毛澤東)사망 30주기를 맞는 추모열기는 대단하다. 대륙 곳곳에 세우는 동상 가운데 그의 고향인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에 건립되는 동상은 높이가 7.1m로 최대 규모다. 정치 지도자로 뿐만이 아니고, 인민들에게 복을 비는 기복신앙의 우상으로까지 인식됐다고 중국 언론은 전한다. 1966년 문화혁명 그리고 그의 사후에는 개혁 개방을 저해하는 ‘사인방’까지 나온 배후가 마오쩌둥이지만 중국은 옛 지도자를 깎아내릴 줄 모르고 이처럼 존경한다. 중국 정부가 잘사는 농촌 만들기를 위해 최대 과제로 벌이는 ‘신농촌(새마을)운동’ 지도자 양성책으로 새마을사관학교가 출범했다. 해마다 1만명의 새마을운동 지도자를 배출할 계획이다. 이질현 전 서울대 교수가 중국 정부로부터 베이징 농민대학 초청교수로 초청받아 앞으로 3년간 강의하기 위해 곧 출국하게 된 것도 신농촌지도자 양성의 맥락에 속한다. 이 교수는 서울대 농대에 있으면서 새마을운동을 학문적으로 그리고 실용적으로 병립시킨 새마을운동의 대가다. 중국은 또 올해 두만강 유역의 나진항 일원을 개발, 향후 50년동안 사용권을 갖는 공동개발 프로젝트를 착수한다. 고속도로 및 공단건설 등의 이 프로젝트 외에 각종 채광 채굴권을 이미 획득한 중국은 북녘을 역사 왜곡 외의 ‘신동북공정’개념으로 잠식하고 있다. 이는 한국전쟁에 중국 의용군의 참전 대가로 휴전직후, 백두산 천지 절반을 중국이 할양받은 이후, 오랜만에 노골화한 또 하나의 동북공정 전략이다./임양은 주필

누구 댓글인고?

2002년 12월, 대선 막바지에서 이른바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를 선언한 정몽준 후보가 노무현 후보 지지를 전격 철회했을 때다. 다급해진 노무현이 정몽준 집엘 찾아갔으나 만나기는 커녕 문전축객을 당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물론이고 당도 ‘당선’은 따놓은 ‘당상’으로 여기고 느긋했다. 이에 비해 노무현 캠프에서는 막바지 불꽃에 박차를 가한 것이 인터넷이다. 이처럼 한나라당은 넋 놓고 있는 새에 일제히 역공을 가한 인터넷 활동으로 정몽준의 지지 철회를 되레 전화위복으로 만들어 당선될 수가 있었다. 이래 저래 인터넷 덕을 많이 본 탓으로 인터넷 신문도 무척 좋아하는 노 대통령은 계속 인터넷을 애용한다. 댓글 달기를 좋아해 외국 순방길에서도 댓글을 달 정도다. 이 바람에 정부 부처에서 국정브리핑에 댓글경쟁 풍조가 생겨 댓글을 얼마나 많이 올렸는가를 부처별로 평가한다는 말이 들린다. 특히 대통령이 마음에 드는 댓글이 있으면 그가 누구인가를 하문한다니 공무원들로서는 신경이 여간 쓰이는 일이 아니다. 공무원들이 근무시간에 본연의 일보단 구렁이 제몸 추스르는 식의 ‘신용비어천가’ 작사에 골몰해야 할 판이니 요지경속이다. 정보화시대다. 인터넷도 좋고 댓글도 좋다. 이도 여론이라면 여론이다. 그러나 충동여론은 깜짝쇼다. 이런 방법으로 선거에서 덕을 보긴 했지만 5년의 임기를 놓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엔 충동여론이나 깜짝쇼로는 한계가 있다. 2003년 노 대통령 신년 인터뷰에서 “시정 잡배들의 쇄설에 괘념치 마시고 성군이 되시옵소서”라고 극구 찬양했다. 이랬던 도올 김용옥 순천대 교수가 지난 3월엔 SBS 라디오 전화 인터뷰에서 새만금 개발문제를 두고 대통령을 가리켜 “자격도 없고 영원히 저주받을 사람”이라는 독설을 퍼부었다. 도올도 이러한 데 하물며 인터넷 민심이야, 인터넷이나 댓글을 잘못 좋아하다가는 역풍의 부메랑을 맞을 수가 있다. 감각적인 것을 너무 좋아하는 것은 오성(悟性)이 아니다. /임양은 주필

빙상계의 고질병

“파벌싸움이 너무 커져 선수들이 많은 피해를 보는 것 같다. 내 전부였던 스케이트를 그만 두고 싶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국민의 갈채를 받은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 선수가 인터넷 한 홈페이지에 털어 놓은 아픈 속내다.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대회에서 남녀 개인종합 1위를 차지한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이 볼썽사나운 귀국 환영식을 치른 후 나온 탄식이다.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4연패를 달성하고 귀국한 지난 4일 아버지가 인천공항에서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을 폭행한 사실때문에 마음이 괴로웠던 것으로 보인다. 안 선수는 지난 3일 이번 대회 3천m에서 1위로 달리던 이호석 선수를 오른팔로 밀어 넘어트렸다는 이유로 실격됐다. 하지만 아버지 안 씨는 “ 선수들과 코치가 짜고 안현수가 1등 하는 것을 막았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말리던 빙상연맹 관계자에게 손찌검을 했다. 빙상계의 파벌논란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외국에 나가 국위를 선양하고 개선한 선수들을 환영하는 자리가 난장판이 됐으니 망신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쪽의 잘잘못을 떠나 한국 쇼트트랙의 금빛 명예에 흠집을 남겼다. 쇼트트랙의 경우 선수들의 기량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한국체대와 비한국체대 출신 지도자간 등의 대립으로 선수들의 선수촌 입촌 거부사태 등 마찰이 끊이질 않았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지난 동계올림픽에서도 그랬듯이 사실상 ‘2개의 팀’으로 운영돼 왔다. 선수들이 남녀불문 두 패로 갈려 각각의 코치로부터 훈련은 물론 작전 지시까지 별도로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들의 기량과 정신력이 이상할 정도다. 선수들을 학맥과 인맥으로 갈라 놓고, 선수단 구성과 운영의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어른들의 행태가 정말 병폐다. 선수들이 코치의 눈치를 보느라 우승한 동료에게 축하 인사도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고 하니 할 말을 잊게 한다. 2002년 월드컵축구 4강의 기적, 제1회 WBC 4강 신화를 이룩한 축구 및 야구대표팀의 지도력을 빙상계는 본받아야 한다./임병호 논설위원

거짓말

미국 대통령들의 거짓말 사례는 거의 일반적이다. 역대 미대통령의 거짓말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이른바 ‘통킹만 사건’ 거짓말이다. 존슨 대통령은 1964년 8월 4일 미군 구축함 2척이 통킹만에서 월맹군의 어뢰 공격을 받았다면서 북폭을 명령했다. 그러나 존슨 대통령은 자신의 명령 10시간 전 문제의 구축함 2척 중 한 척의 함장이 어뢰공격 사실에 대해 ‘의심스럽다’고 전문을 보낸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심지어 북폭명령 30분 전까지도 미 국방부는 어뢰공격을 확인하려 결사적으로 매달렸다는 사실이 2003년 6월 녹음 테이프 등을 통해 드러났다. 미국이 월남전 명분으로 삼았던 통킹만 사건은 이미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 언급,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피그만 사건 개입 부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U2 정찰기 격추 부인, 빌 클린턴 섹스 스캔들 부인 등은 대표적인 대통령 거짓말 사례다. 미 대통령들의 거짓말 이유는 군사적인 경우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정치적인 것이 많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처럼 대통령의 거짓말이 군사적 이유일 때는 용납되지만, 정치적일 때는 신뢰도 문제 때문에 대가를 치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존슨 대통령은 통킹만 사건으로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어 재선을 포기해야만 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거짓말 논란에 휩싸여 곤욕을 치렀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위해 정보를 단순히 과장한 수준을 넘어 거짓말을 했다는 게 논란의 요체였다. 대표적인 예로 2002년 10월 7일 “이라크가 생화학 무기를 보유·생산하고 있으며 핵무기를 추구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과 2003년 2월 28일 “사담 후세인 이라크 당시 대통령이 지역 사령관들에게 생화학 무기를 사용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라크에서 생화학 무기가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이라크군이 미군에게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거짓말의 대안은 진실을 말하거나 필요하다면 침묵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물론 한국의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임병호 논설위원

애인관리 기법

군대 생활을 하는 장병들에게 가장 기다려지는 소식은 아무래도 애인의 편지다. 애인이 없는 장병들은 여자친구에게서 엽서만 와도 요즘말로 ‘기분 짱’이다. 어머니의 편지나 가족들이 보내 온 편지 또한 반갑지만 그래도 애인이 보낸 편지는 읽고 또 읽어본다. 그런데 어떤 여성은 군대에 있는 애인에게 이별을 선언하는 편지를 보낸다. 이런 편지는 사형선언문이나 다름 없다. 탈영이나 자살을 권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애인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을까봐’ 걱정하는 장병에게 보내는 이별 통지는 사약이다. 설령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어도 휴가를 나왔을 때 직접 고백해야지 편지나 전화로 알리는 것은 잔인하다. 애인 있는 청년들이 군 입대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애인의 변심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육군 제20사단 예하 백마부대가 최근 들어 사회에 애인을 두고 온 장병들이 군복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애인 상담제’를 운용하고 있다고 한다. 전문 애인상담병을 배치하고 커플멤버십제도를 운영하는 등 장병들이 전역할 때까지 ‘곰신’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각종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는 소식이 미소를 머금게 한다. ‘곰신’은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고무신’의 줄인 말로, 군에 간 남자친구를 둔 여성을 일컫는다. ‘애인 상담제’ 가운데 커플멤버십제도는, 애인이 있는 병사들의 명부를 만들어 상담병이 기록을 관리하는 일인데 눈에 띄는 것은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애인이 직접 부대에 전화를 걸면 통화를 할 수 있도록 한 ‘사랑의 전화’다. 이른 바 ‘위기의 시기’에 의사소통이 되지 못한다면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상황을 초래할 수 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예약 인터넷사용제도 있다. 신세대 장병들인데도 대대 인터넷이 4대로 한정돼 있어 사용하기 어려웁지만 예약제를 이용하면 주기적으로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 등을 관리해 애인과의 연결통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인의 생일에 외박을 허용하는 제도도 있고, ‘애인과 헤어지고 난 후 군 생활’ ‘군 생활 중 애인관리 기법’을 주제로 한 ‘애인관리 기법 향상 세미나’도 열어 장병들의 호응을 받는다고 한다. 장병들의 ‘곰신’관리도 해준다니 병영생활이 점점 좋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애인들이여, 헤어지지 말라. /임병호 논설위원

김영희씨 母子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머니의 힘은 실로 위대하다. 이런 가운데 나타난 전통적 한국 어머니의 모정은 희생정신이다. 조선 숙종조 대제학을 지낸 김만기, 소설 ‘구운몽’ 등 국문학사상 주옥같은 소설을 남긴 한글문학의 선구자 김만중 형제를 어려운 환경속에서 훌륭히 키워낸 것은 홀몸이었던 어머니 윤씨부인이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물 불을 가리지 않는 것이 한국의 어머니상이다. 자녀에 대한 자애와 헌신으로 온갖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고전문학이 많다. 예를 들면 ‘계녀가’(誡女歌)는 이런 어머니상을 그린 것이며 사모곡(思母曲)은 그런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가사작품이다. 현대문학에도 많다. 소설로는 ‘어머니’(강경애) ‘엄마의 말뚝’(박완서) ‘어머니의 깃발’(송기숙) 등을 꼽을 수 있다. ‘어머니 /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깊은 호수에 흰 물새 날고 / 좁은 들길에 들장미 붉어 / 멀리 노루새끼 마음놓고 뛰어다니는 /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신석정의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의 시다. 조병화의 ‘어머님 방의 등불을 바라보며’, 박목월의 ‘어머니’란 제목의 시집도 있다. 미국 슈퍼보울의 영웅 하인스 워드(30), 그의 어머니 김영희씨(59) 모자가 모국에 돌아와 공식 일정을 보내고 있다. 아들은 “어머닌 나의 전부”라고 말한다. 아들을 인생의 전부로 알았던 어머니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모자가 산 조지아주 프래스트파크 일대에서는 ‘김영희’는 몰라도 “워드 엄마”라고 하면 거의 모를 사람이 없을 만큼 아들을 키운 정성이 지극했던 것 같다. 아들을 똑바로 키워 대학까지 졸업시키면서 선수생활 뒷바라지를 한 어머니의 힘은 식당 등에서 하루 15시간을 일해온 각고의 노력이었다. 낯 설고 말 설고 물정 설은 이국 타향에서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희생정신의 모정이다. 이들 모자의 금의환향, 이는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상의 인간승리인 점에서 돋보인다. 김영희씨를 통해서 전통적 어머니의 모습, 워드를 통해서 한국적 효를 재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 임양은 주필

왕건 청동상

고려 태조 왕건(王建)은 여러 왕조, 역대 군왕 중 처첩을 가장 많이 거느린 임금이다. ‘고려사 후비전’에 전하는 정실 왕후, 부실 부인 등 후비(后妃)만도 28명에 이른다. 왕후는 신혜왕후(神惠王后)등 6명이며 부인은 정목부인(貞穆夫人)등 22명이다. 출신지역 또한 다양하다. 강원·황해·경기·충청·경상·전라도 출신이 모두 망라됐다. 출신성분 역시 다채롭다. 신라 왕족·토호·문관 또는 무관 대작 집안의 출신이 있는가 하면 미천한 백두 집안 출신도 있다. 왕건은 고려 건국의 일천한 기반을 각 지역, 각 계층별 출신 딸들과의 정략결혼으로 공고히했던 것이다. 그러나 허점이 되기도 했다. 왕건이 재위 26년만인 서기 943년 5월23일 67세로 생애를 마치면서, 제2왕후인 장화왕후 소생 무(武)를 후계자로 정해 2대왕이 된 혜종이 후사없이 2년만에 죽자 후비간에 알력이 벌어져 마침내 왕규의 난이 일어났다. 반란은 얼마 안 가 평정됐으나 왕위다툼을 둔 골육상쟁의 비극을 빚었다.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의 청동좌상이 오는 6월초 서울에 온다하여 화제가 됐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과 북쪽 조선력사박물관 간의 첫 번째 교류전을 갖는 것이다. 청동상은 북에서 오는 90여 점의 유물 가운데 하나다. 흥미로운 것은 왕건의 청동좌상은 실제 사람 크기와 같은 등신대(等身大)로 의자에 앉은 키가 143.5㎝다. 왕건 사후 만들어져 개성 봉은사에 안치됐는 데, 고려가 망한뒤 연천의 어느 사찰로 옮겨졌다가 세종 때 왕건의 능인 개성 현릉으로 옮겨 묻었던 것을 2003년에 출토한 것으로 전한다. 이상한 것은 청동좌상이 벌거벗은 나신(裸身)이라는 것이다. “원래는 옷을 입었으나 수백년동안 땅속에 묻혀있는 바람에 옷이 부식했을 것”이라는 게 북녘 관계자의 말이긴 하지만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왕건 사후에 만든 이 청동좌상은 당시 왕건의 모습일 것이라는 점이다. 왕건은 1천63년 전의 사람이다. 무려 1천년 전의 사람을 비록 청동좌상의 조각품이긴 하지만 실물 크기의 모습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은 문화재로서의 높은 가치를 말해준다./임양은 주필

板橋別曲

판교신도시, 언론에 판교만큼 오르내린 신도시는 아마 없을 것이다. 막판 분양 직전까지도 그랬다. 분양 직전에 취해진 성남시의 분양가 승인 유보는 분양 일정이 취소될 지경으로 아슬아슬했다. 그래서 성남시를 욕한 사람도 있었지만 자치단체의 그같은 권한 행사는 잘한 조치다. 민간건설업체의 아파트분양 가격에 평당 십만원의 거품만 빼도 수천만원의 이익이 실수요자들에게 돌아간다. 그런데 판교신도시는 서민들에겐 그래도 너무 먼 도시다. 싸다는 24~29평형 주공아파트 분양가격이 3~4억 수준이고 보면, 하늘의 별따기라는 당첨은 고사하고 신청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은행 융자를 낸다지만 7천500만원까지 내준다는 융자를 받아도 은행 이자를 감당할 서민은 없다. 이래 저래 무주택 서민들은 월 임대료가 58만원인 임대아파트에 쏠리는 모양이지만 이도 만만치 않다. 천만 다행으로 입주한다 해도 그냥 소멸되는 임대료를 무한정 내기엔 벅찬 것이 서민들 처지다. 아파트를 지어도, 지어도 무주택 서민은 여전하다. 이유가 있다. 아파트가 없어 자기집을 장만하지 못한 것이 아니고 돈이 없어 집마련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서민층 형편에 맞는 아파트를 짓는 법은 없다. 그렇게 지으면 슬럼가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갈수록이 대형화하고 더 호사스럽게 짓는 것이 아파트 건설 추세가 됐다. 이래야 비싸게 더 잘 팔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민층의 자기집마련의 꿈은 점점 멀어진다. 먹고 살기도 바쁜 이 불황에 아파트 입주금을 저축한다는 것은 평생가도 못할 꿈인 것이다. 시작부터 분양 직전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판교신도시, 당첨만 되면 대박이 터진대서 ‘아파트 로또’라고도 하는 판교신도시는 결국 돈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일 뿐 서민층과는 먼 얘기가 됐다. 돈은 많아도 돈이 없고, 아파트는 많아도 아파트가 없는 서민들은 대부분이 정직하게 산 사람들이다. 다만 남들처럼 주변머리가 없는 죄뿐인 데 그 고통은 너무도 커다./ 임양은 주필

살구꽃 아래서

산수유와 생강나무꽃은 비슷하게 생긴 노란 꽃이지만 꽃, 잎, 줄기가 모두 다르다. 산수유는 꽃자루가 길어서 꽃이 위로 모여 피지만, 생강나무는 가지에 꽃이 붙다시피 해서 핀다. 산수유 줄기는 벗겨져 지저분하게 보이지만, 생강나무 줄기는 매끈하고, 꺾거나 일을 자르면 생강냄새가 난다. 매화와 배꽃은 꽃 색깔도 흰색, 꽃잎 수도 5장으로 똑 같다. 구분 포인트는 꽃자루다. 꽃자루가 짧아 줄기에 꽃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 매화, 꽃자루가 길어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면 배꽃이다. 배꽃이 매화보다 조금 크다. 양지꽃과 피나물꽃은 노란꽃이다. 꽃잎 수로 구분하는데 양지꽃은 5장, 피나물꽃은 4장이다. 양지꽃은 들판의 양지바른 곳에 자라고 피나물은 깊은 산 속 습기 많은 곳에 자란다. 피나물과 비슷하게 생긴 꽃으로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애기똥풀꽃이다. 피나물은 잎, 줄기를 자르면 피같은 붉은 즙이 나오고, 애기똥풀은 애기똥 같은 노란 즙이 나온다. 유채꽃은 제주도의 명물이다. 요즘은 전국 여러곳에서 재배하고 있지만 특히 제주도 성산포 일출봉 앞에는 한해 내내 유채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한 곳들이 많다. 그러나 사실은 배추꽃인 경우가 많다. 유채는 봄꽃이다. 유채꽃과 배추꽃은 전문가들도 구분하기 힘들 만큼 닮았다. 잎을 보지 않고서는 잘 모른다. 뿌리쪽 잎이 크고 발달해 있으면 배추꽃, 줄기쪽 잎이 함께 발달했으면 유채꽃이다. “살구꽃 휘장에 날아들어 봄날 흩어지는 밤 / 밝은 달 창문으로 들어와 은둔자를 찾누나 / 옷자락 올리고 달 아래 꽃 그림자 밟으니 / 반짝반짝 시냇물에 부평초 넘실댄다 / 꽃 아래서 술 따르니 맑은 향 퍼지는데 / 어찌 긴 가지 잡아당겨 / 향설 꽃잎 잔 속에 떨구랴 / 산마을 멀건 술이 떨떠름하긴 해도 / 그대여 잔에 뜬 달까지 다 마시게나 / 퉁소 소리 끊기고 달만 휘영청한데 / 오직 걱정은 달 지고 술잔 비는 일 / 내일 아침 강한 봄바람이 몰아치면 / 푸른 잎 사이에 붉은 꽃 몇 점만 붙어 있는 걸 보게 되리” 소동파(蘇東坡)의 시 ‘달밤에 손님과 함께 살구꽃 아래 술을 마시며’를 가슴에 새기면 술이 생각나고 정인(情人)이 떠오른다. 산수유꽃과 생강나무꽃이 비슷하듯 모든 꽃은 서로 닮았다. 도화(桃花)인지 행화(杏花)인지 이화(梨花)인지 매화(梅花)인지 분간을 못하게 온갖 꽃들이 어울려 피어나는 바야흐로 봄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연예인 겸임교수

겸임교수는 고등교육법 제16조 규정에 의한 자격기준에 해당하는 자로 관련분야의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학교의 장(長)이 임명하거나 위촉할 수 있으며 교수시간은 매 학년도 30주를 기준으로 매주 9시간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학교의 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학칙으로 다르게 정할 수 있다. 요즘 우리나라 대학에서 문인 등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을 겸임교수로 임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연예인 겸임교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급 연예인만 40여명에 이른다. 초기에는 영화감독, 방송PD, 아나운서 등이 강단에 많이 섰으나 요즘은 연기자, 개그맨, 가수 등 연예인들로 확대되고 있다. 연예인 겸임교수는 신설 학교나 지방 대학에서 홍보를 위해 주로 임용한다. 2002년 개교한 서울종합예술학교가 대표적인 사례다. 노동부 인가 2년제 예술직업전문학교인 이 학교는 올 새 학기 들어 트로트학과를 신설하면서 가수 장윤정을 실용음악예술학부 겸임교수로 영입했다. 또 개그맨 남희석· 박준형 등을 연기예술학부 겸임교수로 임용했으며 작년에는 탤런트 이광기, 모델 홍진경, 개그우먼 이영자, 가수 김경호 등을 위촉했었다. 탤런트 조민기·노주현·정보석·박준규·이승연·박상원 등도 다른 대학들의 겸임교수로 위촉됐다. 연예인 겸임교수 위촉은 다른 분야와 좀 다르다. 아는 사람을 통해 강의 부탁을 받고 특강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교수가 됐다는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김미화의 경우 자신도 모르게 겸임교수로 위촉됐다는 보도를 접한 뒤 학교측에 항의해 없었던 일로 됐으나 각종 홍보물에는 여전히 교수진 명단에 올라 있다고 한다. 연예인 겸임교수 임용 붐은 홍보효과를 노린 학교측과 교수라는 직함으로 이미지를 높이려는 연예인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문제는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실기 위주의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다는 학교측의 주장과는 달리 실제로는 커리큘럼과 강의 스케줄도 마련되지 않거나, 실제로 강의하는 스타는 극소수라는 점이다. 본인도 모르게 겸임교수로 위촉될 만큼 연예인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좋은데 기왕 강단에 섰으면 “교수진 때문에 지원했다”는 학생들을 생각해서라도 자기가 맡은 시간에 후배를 대신 내보내는 일은 삼가야 할 일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겸임교수 제도의 장·단점을 검토해봐야 한다./임병호 논설위원

‘선(選)파라치’의 계절

‘파파라치’는 소리를 내며 성가시게 날아드는 벌레를 칭하는 이탈리아 말이다. 원래 연예인 사진을 몰래 찍어 언론사 등에 파는 사람들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포상금을 노린 신고꾼으로 통용된다. 그래서 전문 파파라치들까지 생겨났다. 이들을 교육하는 학원과 인터넷카페까지 등장할 정도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물론 공공기관과 기업까지 경쟁적으로 수십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신고포상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파파라치를 양산하는 포상금제도를 가장 많이 생산한 곳은 건설교통부다. 파파라치의 명칭도 각양각색이다. 최근 건교부가 판교신도시 등 아파트를 불법전매하거나 이를 알선한 자를 신고할 경우 최고 1천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키로 해 ‘아파라치’가 생겼다. 신고꾼 가운데 포상금 액수가 가장 큰 종목은 선거 부정을 고발하는 ’선파라치’다. 법무부는 선거범죄를 신고하면 최고 5억원을 준다. 손해보험협회는 임직원 비리를 신고하면 3억원을 준다. 특이한 파파라치들도 적지 않다. 노파라치(노래방 불법영업), 병파라치(병역비리), 봉파라치(쓰레기 봉투), 컵파라치(일회용컵) 등 모두 60종류에 이른다. 신고포상금제는 행정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음지를 시민의 힘으로 정화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 카파라치가 대표적이다. 월드컵축구대회를 앞두고 교통법규 위반에 대해 포상금을 지급하는 카파라치 제도를 2001년 도입했다가 시민간 불신감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일어 2003년 폐지했다. 하지만 폐지 후 감소하는 듯했던 신호위반, 차선위반이 다시 늘기 시작하는 요요현상을 보였다. 토파라치나 아파라치를 하려면 위반자의 거주여부와 전입여부를 알기 위해 주민등록등본, 토지대장등본 등 각종 서류를 떼 봐야 한다. 휴대전화 불법복제, 의료보험 허위 청구, 전선절도 등 각종 부정을 적발한다는 취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의 얼굴과 음성을 허가 없이 촬영하는 것도 적절치 못한 짓이다. 국민 모두가 법에 어긋난 행위를 하지 않으면 60종류의 파파라치가 필요 없겠으나 포상금으로만 해결하려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이다. 그렇긴 하나 선파라치들이 총동원돼서라도 ‘5·31 지방선거’는 깨끗하게 치러져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바둑 훈수

바둑의 세계 인구가 점점 늘어간다. 중앙아시아와 서구 등지까지 파급됐다. 그렇지만 한국·중국·일본이 역시 바둑 강국이다. 대만에도 보급됐지만 기력이 아주 약하다. 이 때문에 세계 타이틀을 건 바둑대회가 열려도 한·중·일 선수들만이 참가하는 삼개국대회가 된다. ‘바둑삼국시대’는 상당기간 더 계속될 것이다. ‘바둑삼국’ 중에서도 프로바둑이 맨 처음 생긴 곳은 일본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막부(幕府)를 연 에도(江戶)시대 부터니까 약 400년이 된다. 한국이나 중국은 바둑이 있었어도 친선이나 오락으로 두었던 데 비해 일본은 주로 내기바둑을 두어 프로바둑의 발달을 가져왔다. 그런데 ‘장기 훈수는 뺨 맞아가면서 한다’는 속담처럼 바둑 역시 핀잔을 들어가면서도 곧 잘 훈수를 하기 마련이다. 바둑판 두께가 보통 다섯 치쯤 되는 바둑판 뒤엔 움푹 파인 대목이 있다. 흔히 보통으로 보지만 일본에서 전해진 무서운 유래가 있다. 일본 사람들은 이를 ‘혈유’(血溜)라고 하는데, 내기 바둑판에서 훈수꾼이 있으면 목을 베어 무효가 돼 뒤엎은 바둑판 혈유에 머리를 올려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본의 내기 바둑꾼은 주로 사무라이 계층이었던 것 같다. 바둑두면서 점심시간도 감시 당하는 프로대회가 나왔다. 오는 5월에 열리는 제11기 LG배 세계바둑대회가 이러하다. 제한 시간이 각각 3시간씩 주어지는 바둑을 두다가 점심을 먹게 되는데, 이 점심시간에 훈수하는 폐단이 있을 우려를 없애기 위한 것이다. 바둑에 도가 트인 프로기사들이라 한 두 마디 말에도 이내 판세가 달라질 수 있고, 상금이 수천만원에서 억대이고 보면 이도 일리가 없지 않다. 따라서 점심시간이 되면 참가 선수가 밥먹는 자리에 상대 선수측의 감시원을 배치, 바둑에 관한 얘기는 일절 금기로 삼는 새로운 규칙이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아마 바둑 또한 일수불퇴의 냉엄한 승부로 가는 경향이 많은데, 프로바둑의 그같은 ‘점심감독’은 아마 바둑에도 다소간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임양은 주필

골프 寓話

경기도내 골프장 수는 98개소다. 전국 204개소의 약 반을 차지한다. 지금 추진중이거나 공사중인 골프장이 또 15개소다. 경기도는 골프장 100개 시대를 앞두고 있다. 골프장 1개소당 지방세 평균 세수입이 약 37억원이다. 이래서 기초자치단체는 골프장 건설을 비호한다. 눈 앞만 보는 처사다. 골프장 건설로 인한 환경 및 생태계 파괴 손실액을 환산하면 그같은 세수입은 푼돈에 불과하다. 국가청렴위원회가 이해찬 골프로비 의혹 파문 여파로 공직자들의 직무관련자 골프회동을 금지시켰다. 하급자가 상급자와 친 골프 또한 하급자가 돈을 내지 못하도록 했다. 접대성 골프를 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직자가 직무관련자와 골프를 함께 쳐서 안 되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는 말처럼 지극히 당연한 원론적 얘기다. 이런 원론적 얘기를 국가청렴위가 지침으로 내려 보냈다. 원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공무원들이 꽤나 골프를 즐기는 것 같다. 국가청렴위 지침이 내려오고 처음 맞은 지난 주말의 도내 골프장이 평소보다 덜 붐볐던 모양이다. “공무원들이 바짝 몸을 사린다”는 것이 골프장 주변의 말이다. 몸을 사리는 것은 좋은데 그 뒷말이 고약하다. ‘언제는 안 그랬느냐’는 것이다. 좀 지나면 또 흐지부지 될 테니까 그 때까지 참으면 된다는 것이다. 국가청렴위 지침쯤은 지나가는 소나기로 알고 그칠 때까지 피하면 된다고 보는 사고방식인 것이다. 하긴, 듣고보니 딴은 틀린 얘기가 아니다. 일과성 소나기에 그쳤던 것이 과거의 관행이었다. 당부할 게 있다. 골프를 고급 레저로 알고 골퍼는 신사로 아는 것이 골프족들의 대체적 인식이다. 그러면서 골프친 돈은 아까워 거지처럼 남에게 얹혀만 치려고 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천박한 비신사적 행위다. 자기 돈으로 골프를 칠 형편이 안 되면 아예 골프채를 잡지 말아야 한다. / 임양은 주필

비인기종목의 병역특례

현대 국제사회의 스포츠 경쟁은 총성없는 전쟁이다. 예컨대 올림픽만 해도 ‘참가에 의의가 있다’던 시대를 지나 이젠 참가의 의의와 함께 승리에 더 큰 의미를 둔다. 총성없는 전쟁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다방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중 국제 스포츠대회는 문화 분야에 속하면서 경제적 부가가치가 점점 높아져가는 추세다. 국제사회의 스포츠 경쟁은 곧 국위 선양이다. 이번 WBC의 4강 진출에 따른 일부 야구선수의 병역 특례조치가 나오자 비인기 종목 분야에서 차별 대우를 들고 나왔다. 펜싱 핸드볼 하키 등 예를 들자면 이밖에도 많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유가 있는 주장이다. 다만 국제 스포츠 대회에도 격이 있다. 올림픽 입상을 제외하고는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경기대회 등을 권위있는 대회로 친다. 월드컵대회는 축구, 그리고 이번에 치른 야구 외에는 별로 권위가 인정되지 않는다. 친선게임 수준의 각종 오픈대회는 격이 낮다. 주요대회에서 국위를 선양한 입상 선수들에 대한 병역 특례에 인기종목 비인기종목을 가리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 게 사실이다. 어떤 종목의 선수이든 주요 국제대회에서 입상하기 까지는 남모른 노력의 피눈물이 고여 있다. 축구의 차범근씨는 태릉선수촌에서 남들은 다 잠자는 새벽에 혼자 나와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날마다 슈팅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비화가 있다. 인기종목일수록 프로 선수들이 많고 비인기종목은 겨우 실업팀이거나 아니면 순수한 아마 선수들이 많다. 뒤집어 말하면 아마 선수들의 국위 선양을 더 높이 평가해야 한다. 비인기종목이라는 이유로 외면되는 것은 스포츠정신이 아니다. 권위있는 대회에서의 국위 선양은 인기종목, 비인기종목을 가릴 이유가 없다. 비인기종목의 병역 특례조치는 비인기종목의 저변 확대에도 큰 도움이 된다. 정치는 후진국 수준에 머문 가운데 스포츠는 선진국으로 가고 있다. 스포츠 선진국의 고른 저변 확대를 위해서도 비인기종목의 병역 특례는 능히 검토할만 하다./임양은 주필

국회법 정비 필요하다

여기자 성 추행을 저지르고도 국회의원직에 연연하는 최연희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행태를 보면 국회법을 정비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진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집 불태우느냐’는 이론이 없지 않지만 국회의원이 중대한 실수를 하더라도 ‘직무 관련성’이 없으면 현행법상 의원직을 제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 등 야 4당이 최연희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아 사퇴권고결의안을 공동발의키로 했지만 강제력이 없을 뿐 아니라 의원직 제명안을 발동한다 해도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는 처리가 불가능하다. 현행 국회법은 윤리특별위원회 징계심사에서 제명 징계안이 통과된 뒤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제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최 의원 같은 경우 국회 활동과 무관한 성추행이어서 ‘징계심사’가 아닌 ‘윤리심사’에 회부되기 때문에 징계 자체도 성립이 안 된다. 또 사퇴권고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의원직 사퇴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사퇴권고결의안은 일반 결의안 형태를 띠고 있어 정치적 의미 이외에 실질적 제명은 힘들다. ‘윤리심사’와 ‘징계심사’로 이원화돼 있는 윤리특별위원회의 특성상 국민적 공분의 대상인 성추행 사건 등의 처벌 수위는 ‘위반사실 통고’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어 국민의 법감정과 크게 괴리돼 있다. 따라서 징계심사와 윤리심사로 나누어진 심사를 직무와 관계 없이 사안의 경중에 따라 심사하는 방식으로 통합해야 한다. 과거 유신정권을 비방한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제명하는 등 야당탄압으로부터 국회의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당시에는 ‘직무 관련성’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필요했지만, 그러나 16대까지 윤리특위 심사 자체가 단 한 건도 이뤄진 적이 없었다는 점을 비춰 볼 때 이제는 국회의원들의 ‘제식구 감싸기’ 관행은 고쳐져야 한다. 비단 최 의원의 성추행 사례 만이 아니다. 앞으로 국회의원이 연관된 무슨 해괴한 일이 발생할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국회의원의 징계사유에 반인권, 반여성적 행동을 포함시켜야 한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시작한 ‘국회 자정 결의 촉구’ 국민청원운동이 호응을 받는 이유다. 여론에 밀려 마지 못해 손대지 말고 국회가 스스로 국회법을 정비해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한국야구의 ‘꿈’

한국야구가 돌풍을 일으킨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4년마다 열린다. 당초 지난해에 열릴 예정이었지만 준비 과정이 소홀했고 또 미국의 일방적인 주도 탓에 1년을 연기, 올해 개막됐다. 1회 대회는 1년 늦었지만 2회 대회는 이미 2009년으로 정해진 상태이며 이후엔 4년 주기가 적용된다. 메이저리거를 포함, 사상 처음으로 전세계의 프로가 참가한 국가대항전 WBC에서 한국 야구대표팀의 당초 목표는 8강 진출이었다. 2003년 삿포로 아시아선수권대회(아테네 올림픽 지역예선)에서 대만에 역전패했던 한국은 우선 대만을 설욕하는 데 WBC의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지역예선(1차 라운드)에서 일본을 꺾고 1위를 차지했고 6연승 행진을 이어가며 4강까지 순항했다. 비록 준결승에서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됐지만 경기력에선 4강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일 간의 숙명의 라이벌전에서 한 번을 이긴 일본이 두 번을 이긴 한국을 따돌리고 결승에 오른 것은 희한한 대진 탓이었다. 한국은 1회 WBC에서 일본과 1차 라운드(지역예선), 2차 라운드, 그리고 준결승 등 3차례 맞붙었다. 1, 2차 라운드에서 대결한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준결승에서 또 맞붙은 건 문제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 멕시코와 함께 2차 라운드 1조다. 한국이 1조 1위, 일본이 1조 2위다. 종목을 막론하고 스포츠에선 ‘크로스 매치’가 관례다. 그런데 이번은 같은 조 1, 2위끼리 준결승을 치렀다. 도대체 말이 안 된다. 상식 이하의 엉터리 대진 일정은 미국을 위해서 고안됐다. 미국이 도미니카공화국, 쿠바 등 2조 소속의 우승후보들을 피해 결승까지 무난하게 진출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물론 1차 라운드부터 2차 라운드까지의 조 편성 또한 미국이 유리하도록 이뤄졌다. 파죽의 6연승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김인식 감독은 “일곱 번 치른 경기에서 단 한 번 졌지만 패한 것은 패한 것”이라며 패배를 인정했지만, 그러나 ‘한국야구의 꿈’은 지금 이 순간에도 푸르게 푸르게 무럭무럭 자란다. 노련한 선수들은 더욱 노련하게, 패기 넘치는 선수들은 더욱 패기 넘치게 2009년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코리아를 빛낼 영웅들이다. 3년 뒤엔 더욱 기량이 무르익어 결승 진출은 물론 우승의 감격을 대한민국에 선사할 기대주들이다. 한국을 세계 만방에 빛낸 야구 영웅들이 정말 훌륭하다. 눈물겹게 고맙다. / 임병호 논설위원

‘3 S 운동’

사단법인 경기도교육삼락회의 정기총회가 경기도교원단체총연합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지난 3월20일 김진춘(金鎭春) 경기도교육감이 특별강연을 했다. 초·중·고등학교장, 시·군교육장 등으로 봉직하다가 은퇴한 전직 교육자들이 ‘배우는 즐거움, 가르치는 즐거움, 봉사하는 즐거움’을 삼락(三樂)으로 삼고 계속 청소년 선도, 학부모 교육, 학교교육 지원을 위해 활동하는 교육삼락회 행사에서 김 교육감은 <글로벌 인재 육성을 위한 ‘희망 경기교육’의 과제와 전망>에 대한 소신을 얘기했다. “국제화, 정보화, 다원화, 자율화를 특징으로 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글로벌 인재는 자신의 적성 분야의 경쟁력과 함께 창의력, 국제인의 소양, 강인한 체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며 “경기교육은 200만 학생 모두가 미래의 희망을 품고, 자신이 꿈꾸는 분야에서 글로벌 인재로 인정 받는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역설했다. “중앙정부는 물론 시·도지사, 시장·군수는 교육에 투자를 아끼거나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김진춘 교육감은 이날 원고에 없는 ‘3 S 운동’ 이야기를 꺼냈다. 경기도 교육행정 지침이기도 한 ‘3 S 운동’은 ▲스피드(Speed·속도) ▲서비스(Service·봉사) ▲새티스팩션(Satisfaction·만족)이라고 소개했다. 신속한 원스톱 업무(민원)처리,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다이나믹한 행동, 현대사회를 주도할 역동적인 사고를 말하는 ‘스피드’, 친절하고 예절 바른 봉사, 현장의 업무경감을 돕는 지원 행정, 겸손하고 예절 바른 업무 자세인 ‘서비스’, 그리고 고객 감동을 통한 만족도 고양, 꿈과 기대를 높이는 희망 경기교육 실천, 학생, 학부모, 도민들에게 교육 만족도를 제고한다는 ‘새티스팩션’을 상세히 밝혔다. 그리고 김 교육감은 김순태 회장에게 총회 점심식대를 전달하고 “(도교육청 재정은 매우 어렵지만)경기도교육삼락회 지원금을 하반기 중 1천만원 추가증액하고 계속 후원하겠다”고 약속, 박수를 받았다. 김순태 회장도 김 교육감에게 ‘가평 잣’을 선물하면서 건승을 기원했다. 도내 시·군 삼락회장단과 학부모들, 유네스코협회 이사진 등 2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평생교육을 위해 마치 초년교사들처럼 회의장 의자를 옮기고 청소를 하는 등 봉사에 앞장서는 삼락회 회원들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 임병호 논설위원

청와대가 이젠…

이 정권의 청와대에선 별의 별 일이 다 벌어진다. 공용 헬리콥터를 이용한 직원 가족들의 집단 관광이 벌어졌는가 하면, 민생은 도탄에 빠진 가운데 정권 쟁탈 자축연을 갖고 ‘님의 노래’를 불러가며 자가 도취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불법 정치자금 등 갖가지 의혹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등 추태 또한 만발하였다. 대통령 비서설은 왕조시대의 승정원격이다. 조용한 것이 승정원이다. 도승지(비서실장)를 중심으로 좌·우 승지, 좌·우 부승지, 좌·우 동부승지 등이 있었다.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는 승정원은 임금의 그림자일 뿐 실체는 없었다. 정치에도 초연했다. 이러면서도 높은 품격의 도덕성을 지녔다. 왕조시대 임금의 비서실격인 승정원이 이랬으면 민주주의 시대인 지금의 비서실이 승정원보다 더한 도덕성을 요구받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대통령 비서실 사람이 살인을 하기란 나라 밖 그 어디에도 유례가 없을 것이다. 30대의 3급 별정직인 행정관이 아내를 목졸라 죽인 것은 이미 다 아는 일이지만 청와대측 코멘트가 고약하다. 이 행정관은 살인을 한 이튿날 태연히 청와대에 출근했고, 아내가 근무하던 열린우리당쪽에도 전화를 걸어 아내가 출근했느냐고 물었던 대목이 있었다. 자신이 죽인 아내의 출근을 물은 것은 저의가 영 좋지않은 걸로 보는 것이 세간의 눈이다. 그런데 행정관이 그같은 전화를 한 것은 “아내의 생사를 확인키 위한 것”이라는 마치 두둔하는 투의 희한한 청와대측 코멘트가 나온 것은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것보다 못하다. 별의 별 일이 나오다 못해 이제 해외토픽감의 살인자까지 나온 지경이 된 것은 나라의 수치며 국민의 불행이다. 왜 이러는 것일까, 도덕성의 빈곤 때문이다. 청와대부터가 이 모양이 되어서는 사회 기강이 바로 설 수 없고, 사회 기강을 독려할 수도 없다. 청와대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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