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

불가사리는 상상의 동물이다. 곰 같은 모양에 코끼리 코, 무소의 눈과 쇠꼬리에다 호랑이 다리를 가졌다. 역시 상상의 동물인 용을 서기(瑞氣)로 치는 것처럼 불가사리도 악몽을 물리치고 사기(邪氣)를 쫓는 것으로 전한다. 경복궁 굴뚝 밑에 불가사리가 새겨진 것은 굴뚝을 통해 침입하는 것으로 여긴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한 주술이다. 그런데 불가사리가 이변을 일으킨 전설이 있다. 고려말 나라가 어지러울 때, 개경(개성)에 불가사리가 나타나 쇠란 쇠는 무기든 농기구든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 활을 쏴 아무리 죽이려고 해도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어느 현인이 불로 없앨 수 있다고 하여 그의 말에 따라 가까스로 죽였다고 한다. 죽일 수 없었다 하여 ‘불가사리’(不可殺伊)라 하고, 한편으로는 불로 죽였다 하여 불가사리’(火可殺伊)로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상상의 동물이 아닌 실재(實在)의 불가사리가 바다 속에 있어 인간을 꽤나 괴롭힌다. 불가사리 강에 속하는 극피동물의 총칭이 불가사리다. 별 모양의 몸체를 조각내도 죽지 않고 조각난 채 살아나 더 늘어나는 골치아픈 동물이다. 국토 연안이 불가사리로 애먹는 가운데, 옹진 앞바다엔 특히 심해 피해가 막심하다고 한다. 전복, 소라 등 소중한 어민들의 패류 어자원을 불가사리가 마구 먹어치워 씨를 말릴 지경이라는 것이다. 군 부대와 주민들이 단 이틀 동안에 무려 9천㎏을 건져냈는데도 바다 속은 여전히 온통 불가사리 천지라는 소식이다. 예전엔 별로 보이지 않던 불가사리가 갈수록 늘어난 이유 또한 밝혀지지 않아 구제책이 막막한 실정이다. 그냥 해수 온도가 상승한 기후 변화와 유해물질의 유입 등으로만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당국은 어민들이 그물에 걸려 올라온 불가사리를 ㎏당 1천원에 사들이는 게 고작이라니 정말 답답한 노릇이다. 동강내도 죽지않는 바다 불가사리는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았던 육지 불가사리를 불로 다스렸던 것처럼 불에 태워야만 완전히 없앨 수가 있다. 세상이 어수선하다 보니 육지 불가사리가 아닌 바다 불가사리가 설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임양은 주필

‘생태계의 콩팥’

습지(濕地)는 물에 잠겨 있는 땅이다. 연못, 늪이나 호수, 하천, 밀물 때 수심 6m 이하 갯벌을 습지라고 한다. 전 세계 습지 면적은 850만㎢로 중국 국토 면적 960만㎢의 89% 정도 된다. 우리나라는 연안습지의 갯벌이 281.5㎢, 내륙습지는 111㎢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습지는 육상 생태계와 물 생태계의 경계에 있어 다양한 동식물이 살고 있다. 습지식물은 어패류의 먹이가 된다. 습지는 물새를 위한 먹이와 서식처도 제공한다. 지구상 어느 생태계보다 동식물이 잘 성장한다. 습지는 쏟아지는 빗물을 저장해 홍수를 조절하고 지하수도 보충한다. 지구 전체로 봤을 때 습지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곳이다. 지구 전체로 이탄(泥炭)습지에 축적돼 있는 탄소의 양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총량의 60%에 해당한다. 이탄습지는 바닥에 쌓인 식물체가 완전히 썩지 않고 부분적으로 석탄으로 바뀐 습지다. 습지는 물속에 녹아 있는 오염물질을 제거·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주변에서 흘러드는 오염된 물을 깨끗한 물로 정화한다. 습지는 자정능력이 뛰어나 ‘생태계의 콩팥’으로도 불린다. 생태계의 보고(寶庫)인 습지가 농경지 확장이나 갯벌 매립으로 점점 사라져 가자 1960년 국제 수금(水禽·물새)류 조사국(IWRB)이 나섰다. 철새들이 국경을 넘어 어느 나라 습지에서도 살 수 있게 하자는 운동이 시작됐다. 여러 차례 국제회의 끝에 1971년 이란 해안휴양지 람사르(Ramsar)에서 습지보호 국제협약이 채택됐다. 158개국이 가입했고 우리나라는 1997년 101번째로 동참했다. 강원도 대암산 용늪이 ‘람사르 습지’로 처음 등록한 이후 국내 최대의 창녕 우포늪, 신안 장도습지, 순천보성벌교 갯벌, 제주 물영아리오름, 태안 두웅습지, 울주 무제치늪, 무안 갯벌,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 오대산 국립공원 습지, 제주 물장오리 습지 등 11곳이 등록됐다. ‘환경 올림픽’으로 불리는 람사르 총회 열 번째 행사가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을 주제로 28일부터 8일간 창원을 중심으로 경남 일원에서 열리고 있는 건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람사르 협약’ 정신은 ‘습지의 현명한 이용’이다. 람사르 총회를 유치한 나라답게 습지가 잘 보전돼야 하는데, 수선만 요란하게 떨다가 그만두는 정부가 문제다. /임병호 논설위원

공무원의 길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公僕)’이다. 국정 수행의 기간(基幹)이다. 공무원은 국민을 위하여 공익을 추구하고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진다. 특히 공무원은 일반 국민보다 깨끗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공직자윤리법’ ‘공무원윤리헌장’ 등이 공무원의 삶과 길을 제시한다. ‘(공무원의) 이 생명은 오직 나라를 위하여 있고, 이 몸은 영원히 겨레 위해 봉사한다. 충성과 성실은 삶의 보람이요, 공명과 정대는 우리의 규정이다’라고 했다. 공무원윤리헌장에 명시된 내용이다. ‘우리는 불의를 물리치고 언제나 바른 길 만을 걸음으로써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국민의 귀감이 된다’, ‘우리는 공익우선의 정신으로 국리민복을 추구함으로써 복지 국가를 실현하는 겨레의 기수가 된다’고 강조했다. ‘공무원의 신조’는 더욱 극명하다. ‘국가에는 헌신과 충성을, 국민에겐 정직과 봉사를, 직무에는 창의와 책임을, 직장에선 경애와 신뢰를, 생활에는 청렴과 질서를’ 목표로 정했다. 독재정권이 고압적으로 충성을 강요하는 조항이 아니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공무원들이 가슴 깊이 명심해야 할 금과옥조(金科玉條)다. 영혼 속에 간직해야 한다. 그러나 공무원의 부정부패는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하루가 멀다하고 드러나는 일부 공직자들의 부도덕 실태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위고하를 막론한 부정이 참담할 지경이다. 이렇게 공직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 못한 때 경기일보사가 제정한 경기공직대상 수상자들이 위안을 준다. 경기공직대상은 15회에 이르는 동안 공직사회의 청렴하고 건전한 분위기 조성은 물론 공직자의 사기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역대 수상자들처럼 이번 수상자들도 일선 지방행정의 각 분야에서 그야말로 불철주야 위민행정에 진력해 온 자랑스러운 공무원들이다. 시대와 정권은 변하고 바뀌어도 공직자윤리는 불변해야 함을 입증했다. 경기공직대상 수상자들의 공적과 청렴한 생활은 수 많은 공무원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영예로운 경기공직대상수상을 도민과 함께 거듭 축하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삐라

삐라(bill)는 선전을 위한 종이 쪽지를 사람이 돌려주거나 눈에 잘 띄는데 붙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삐라가 북녘 공중에서 뿌려져 평양정권이 삐라 노이로제에 걸렸다. ‘김정일은 300만 인민들이 굶어죽을 때도 일본 요리사를 불러 진수성찬을 차렸다’ ‘인민들을 먹여살려야 할 8억9천만 달러를 아버지 시체 장식에 썼다’는 것 등이다. 여자 관계 등 복잡한 가계보 등이 제시된 삐라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7일 열린 남북군사실무책임자 접촉에서 북측은 삐라 살포 중단을 강력히 요청했다. 지난 2일에도 같은 요구를 했다. 저들은 삐라 중단 요구를 위해 남북군사실무책임자 접촉을 제의하는 실정이다. 북측은 삐라 살포에 대해 “엄중한 상황”이라며 “개성공단, 개성관광사업에 좋지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얼마전 로동신문은 논평원 글을 통해 “존엄에 대한 비방행위는 핵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협박했다. 삐라는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대형 풍선을 이용해 보내는 것이다. 삐라를 실은 풍선이 북녘 상공에 날아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절로 터져 쏟아지도록 돼 있다. 수 십만 장이 살포된 가운데 멀리는 평양 이북에까지 뿌려진 모양이다. 이에 통일부는 민간단체에 대북 전단 살포 자제를 요청했다. 그러나 북측은 계속되는 삐라에 ‘요청 놀음’을 벌릴 뿐이라며, 반공화국 책동의 삐라 살포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궤변이라고 주장한다. 삐라가 북에서 남으로 뿌려졌던 때가 있었다. 이른바 천리마운동으로 북의 경제 사정이 남쪽보다 앞섰을 시기에 겨울이면 북풍을 타고 삐라를 남으로 살포했던 것이다. 당시 대공기관에선 불온 삐라를 줍게되면 신고해달라고 홍보하기에 바빴었다. “장군님이 지켜본다고 생각하니 힘이 솟아 올랐다”는 것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북에 첫 금메달을 안긴 여자 역도 63㎏급 박현숙(23)의 말이다. 이에 중국인들 사이에선 “장군님 생각에 힘이 솟았다니, 진짜 마오(毛) 시절이 생각난다”며 화제가 됐지만, 북의 입장에서는 그와 같은 ‘장군님’에 대한 삐라는 가히 ‘존엄’의 훼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삐라 살포에 대한 북의 신경질적 반응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나온 뒤에 부쩍 심해졌다는 사실이다. /임양은 주필

섹스

섹스는 건강이다. 뉴스위크의 근래 보도다. 어느 연구 논문을 인용했다. 일주일에 1·2회의 규칙적인 섹스는 감기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 면역이 향상될 뿐만이 아니라 장수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특히 여성에게 효험이 높다는 것이다. 적당한 섹스는 또 다이어트에 좋고, 얼굴을 동안으로 유지케 하고, 편두통 요실금 등의 예방이 된다고도 했다. 그런데 섹스가 문제다. 브라운 영국 총리의 어느 보좌관은 지난 1월 총리의 방중 여행을 수행했다가 휴대전화의 일종인 블랙베리폰을 잃었다. 상하이의 한 디스코클럽에서 접근해오는 미모의 중국 여성과 호텔에서 잠자고 이튿날 아침에 보니까 없어졌더라는 것이다. 영국 총리실은 중국 정보기관이 펼친 미인계로 보고 있으나 증거가 없으므로 냉가슴만 앓았던 것이다. 블랙베리폰은 총리실의 컴퓨터 서버 해킹 등이 가능하나, 보안상의 후속 조치를 취한 것은 물론이다. 얼마 전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총재가 부하 여직원과 섹스를 가졌다고 해서 말썽이 됐다. 직위 남용으로 조사까지 받았다. 그 부하 여직원은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장의 부인으로 칸 총재와 아내가 주고 받은 전자 우편을 남편이 발견한 것이다. 세계적인 금융위기 상황에서 스캔들이 터져 더욱 화제가 됐었다. 그러나 칸 총재는 “사생활”이라며 “직위를 남용한 적은 없다”고 맞선 가운데, 칸 총재의 부인이 남편을 비호하고 나서 다시 한 번 주목을 끌었다. TV 앵커 출신으로 칸 총재의 부인인 안느 생클레르는 “원 나이트는 개의치 않는다”며 “우리는 여전히 서로 사랑한다”고 남편에 대한 신뢰를 보였다. 칸 총재는 프랑스인이다. 그의 부인이 보인 신뢰가 사생활을 문제 삼지않는 프랑스 사람들의 기질인지, 남편을 궁지에서 구하기 위한 제스처인진 몰라도 돌아가는 것이 가관이다. ‘공무원을 대상으로 무턱대고 여자 관계를 폭로하겠다며 돈을 요구했더니 주더라’고 했던 공갈범이 있었다. 30대 범인은 그렇게 해서 12차례에 걸쳐 2천800만원을 챙겼다. 밑도 끝도 없는 협박 한 마디에 돈을 건넨 것이다. 섹스는 건강이긴 하지만, 또한 문제다. /임양은 주필

연예인

국감 자료의 내용을 정리해 본다. 오락프로 진행자의 회당 출연료가 천차만별이다. KBS의 경우 ‘해피투게더’의 유재석이 900만원으로 상종가다. ‘해피선데이’ 강호동 850만원, ‘상상플러스’ 탁재훈과 ‘경제비타민’ 신동엽이 각 800만원이고 ‘미녀들의 수다’ 남희석은 550만원이다. ‘전국노래자랑’의 송해가 300만원, ‘가족오락관’의 허참이 170만원으로 하종가다. 송해는 80노구다. 고령에도 전국을 누비는 노익장을 과시한다. ‘전국노래자랑’을 20여년 맡아 진행한다. 허참은 ‘가족오락관’의 설립 멤버다. 30년 가량 된다. 송해나 허참은 신진의 인기도에 밀리긴 해도 자신의 프로그램에 독자적인 역량을 묵묵히 발휘하고 있다. 탤런트의 회당 출연료는 MBC의 경우 ‘여우야 뭐하니’의 고현정이 2천500만원으로 가장 많다. ‘문희’의 강수연이 1천600만원이고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선아가 1천200만원이다. 이런가 하면 회당 6천400원인 단역 출연자도 있다. 드라마 원고료는 회당 MBC 4부작 ‘기적’이 1천467만원으로 제일 많은데 이어 ‘깍두기’ 1천256만원 등이다. KBS는 창사 특집극(2005년)에 회당 1천50만원을 주었다. SBS는 전속 작가로 연간 1억5천258만원을 준 것이 최고 금액이다. 드라마 원고는 연속극 같으면 회당 분량이 200자 원고지 60~70장이다. 모두가 고액 소득자들이다. 일반 사람들은 단번에 그만한 돈을 벌기란 상상도 할 수 없는 특수 직업의 연예인들이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맡지 못하거나 배역 섭외를 받지 못하면 땡전 한 푼 벌지 못하는 것이 또 이들이다. 탤런트의 경우는 약 700명이 있다. 이 가운데 배역을 갖고 활동하는 수는 200명 정도다. “많이 버는 것 같아도 허랑방탕해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것은 한 때 잘 나갔던 MBC 코미디언 김병조의 말이다. 그는 구두쇠로 소문났었다. 길 가다가 시동이 꺼지는 고물차를 탔을 만큼 돈을 안 썼다. 대체로 연예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구두쇠들이다. 자기 몸으로 직접 뛰지 않으면 돈이 벌리지 않기 때문에 번 돈에 대한 집념이 특히 강하다. /임양은 주필

우울증

고(故) 최진실씨를 비롯한 대다수 연예인 자살의 사례처럼 자살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실제로 국내 자살 원인의 80%는 정신장애와 관련됐으며, 자살자의 약 60%가 우울증과 조울증 등 ‘기분 장애’를 경험한다는 보고가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자살을 암과 같은 일반적인 질병과 달리 심리적 나약함이나 의지 부족 등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다. 자살이 매년 늘고 있지만 예방이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우울증의 경우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인도 상당수가 유병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지난해 전국 병원에서 진료받은 우울증 환자 1천425명을 조사한 결과, 64.4%가 ‘우울증인 지 몰랐다’고 답했다. 이들이 처음 정신과를 찾기까지는 평균 3.2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에 대한 낮은 사회적 관심, 정신과 치료에 대한 오랜 편견 등이 원인이라고 한다. 우울증 환자가 빠른 시간 내에 증상을 자각하고 거리낌 없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함을 말해 준다. 우울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마음의 병’이다. 100명 중 15명 정도는 평생 한 번쯤 우울증을 겪지만 초기에 잘 대처하면 감기처럼 치료하기 쉽다고 한다. 주요 증상은 우울한 기분, 흥미·즐거움의 상실이지만 개인의 형태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청소년은 학업능력 저하나 비행으로 나타나고 노인들은 치매 같은 증상을 보인다. 계절에 따라 식욕부진, 체중감소 같은 증상을 보이거나 여성의 경우 출산 뒤 생기기도 한다. 우울증과 우울감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아무런 이유 없이 하루에도 여러차례 우울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우울감은 대개 2~3일 가량 지나면 사라진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우울감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우울증이 아닌 지 의심해 봐야 한다. 우울증 가운데 단순 우울증의 경우 자살률이 10~15% 수준이지만 조울병은 자살률이 50%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다. 우울증은 항우울제 등 약물 복용과 정신 치료 등을 병행하면 80% 이상 완쾌된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좋은 치료제는 긍정적인 삶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한글 푸대접

한글 연구와 바른말 보급에 앞장서 온 ‘한글학회’는 1908년 8월 31일 설립됐다. 올해 100주년을 맞이하는 동안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 ‘큰사전’ 편찬과 발행 등 한글 다듬기에 지대한 기여를 한 국내 유일의 민간 한글 연구 단체다. 한글학회 운영 재원은 1977년 국민 성금 등으로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지은 5층짜리 ‘한글회관’ 건물 임대수입 등으로 충당한다. 건물의 80% 이상을 빌려주고 받는 월 3천만여 원의 임대료와 일부 연구사업에 대한 지원금이 수입의 전부다. 그나마 임대료 수입은 사무실 운영비와 11명의 한글학회 직원 급여로 대부분 사용된다. 이 건물의 5층 일부를 사용하고 있는 한글학회는 도서관이나 연구실조차 없어 중요한 한글 관련 자료 및 고서들이 사무실 바닥에 쌓여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보조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설립 100주년을 맞아 정부에 6억5천만 원의 기념사업 예산 지원을 요청했으나 겨우 1억8천만 원만 배정받았다. 한글을 경시하는 정책은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올 한 해 동안 영어사업에 썼거나 쓸 예산이 한글사업에 들이는 예산의 15.6배에 이른다. 정부와 지자체들이 올해 영어교육사업에 들이는 예산은 1천861억9천52만 원이나 된다. 하지만 한글교육 및 문화 육성에 들어가는 돈은 119억2천925만 원에 불과하다. 지자체 5곳은 아예 한글사업에 한 푼도 지원하지 않았다. 대기업들도 한글을 홀대하긴 마찬가지다. 한글학회가 올해 초 한글 전용 연구실과 도서관 용도 등으로 사용할 ‘한글학회 100돌 기념관과 연구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국내 100대 기업에 후원금을 요청했지만 후원금은 커녕 문의 조차 없었다. 선조들이 물려준 유산 가운데 으뜸이 우리 말과 글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말과 글을 지키고 가꾸는 일은 또 하나의 독립운동이었다. 한글학회 회원들은 우리 말과 글을 지키는 데 목숨을 내걸었다. 그들이 한글을 보전하지 못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찌 됐을 것인가. 한글에 대한 투자는 우리 민족 유산을 지키는 위대한 사업이다. 한글학회는 물론 한글연구 기관에 국고를 아끼지 말아야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이봉화

이봉화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은 쌀소득 보전 직불금 파동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의 직불금 부당 수령사실이 말썽이 된 것은 지난 6일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의 보건복지가족부 국정감사에서 불거졌다. 부재 지주인 그는 남편으로 하여금 안성시 원곡면 지문리에 있는 논 6천876㎡(2천83평)에 대한 허위 ‘자경확인서’를 받아 직불금을 챙겼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직불금을 신청했던 날이 2월28일로 차관 임명장을 받기 바로 하루 전인 것이다. 말썽이 된 그로부터 벌써 보름도 더 지났다. 이 차관은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는 가운데 직불금 파동은 일파만파로 번져 국회의 국정조사 대상에까지 올랐다. 외부의 사퇴 촉구에도 끈질기게 자리 보전에 급급하더니, 사의를 표명한지 이틀만에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의 표명도 서류로 낸 것이 아니고 청와대에 구두로 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믿는 구석이 대단하다. 이 차관은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때 인사과장을 지냈다. 이어 고속승진 끝에 감사관을 지내고는 대통령직 인수위원으로 발탁됐다. 7급으로 시작한 고졸 공무원으로 입지전적인 사람이다. 야간대학을 마쳤다. 일처리가 깔끔해 이명박 서울시장의 주목을 받은 것이 복건복지가족부 차관에까지 오른 출세의 계기가 됐다. 이 차관은 국정감사에서 직불금 말썽이 있었어도 대통령을 믿었던 것 같고, 대통령 또한 웬만하면 놔두고 싶은 애착을 가졌던 것 같다. 이런 인간 관계가 사표가 뒤늦게 수리된 배경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차관의 퇴진은 기정 사실이다. 그가 아무리 유능하다 해도 직불금 관련의 도덕성 해이에 지탄을 모면할 수는 없다. 문제는 대통령이다. ‘만시지탄’은 ‘선참후계’의 반대가 된다. 진즉 기민하게 ‘선참후계’ 했어야 할 이 차관 퇴진을 미뤄 ‘만시지탄’을 갖게 한다. 기왕 인사 조치를 취하면서도 좋은 말을 듣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처사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거의가 이처럼 타이밍을 놓친다. 타이밍을 놓치기 때문에 듣지 않아도 되는 좋지 않은 말들을 듣기가 일쑤다. 이명박 맨이 하필이면 직불금 파동의 원조인 것도 희한하다./임양은 주필

술자리 정치

권번(券番)은 기생학교다. 가무와 예법 등을 가르친다. 권번은 한성(漢城·서울) 권번도 유명했지만 평양 권번을 더 알아 주었다. 권번과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 요정이다. 기생이 없는 요정은 요정 축에 들지 못했다. 종로에 있었던 명월관은 일제 강점시대의 대표급 요정이었다. 광복 후에는 권번이 폐지됐다. 기생도 없어졌다. 기생은 없어졌지만 기생 역할을 하는 접대부는 있었다. 일종의 고급 접대부인 것이다. 고인이 된 모 고관과의 염문설로 파란을 일으켰던 여성이 고급 접대부였던 것이다. 삼청각·청수원·아서원 등은 서울에서 한때 소문났던 기업형 요정이다. 옛 삼청각 자리엔 길상사란 절이 들어섰다. 주인이 절을 세웠다. 요정정치의 시대가 있었다. 1980년대까지 이랬다. 정부 고위직이며 정치권의 흥정이 으레 요정의 밤 술자리에서 이뤄졌다. 폭탄주의 원조가 이 같은 요정 술판에서 연유됐다. 지금은 한식 요리집은 있어도 접대부를 둔 요정은 없다. 요즘 세상에 요정정치를 하다가는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요정정치는 없어도 카페정치는 없지 않다. 저택에 꾸민 은밀한 구조의 고급 양주집이다. 이른바 호스티스로 불리는 접대부도 있다. 서울 강남에 이런 데가 많다. 이의 관리형 일류 마담 월급이 웬만한 근로자 연봉과 거의 맞먹는다. 각계의 많은 인맥 사단을 단골로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맥은 정계·관계·재계를 비롯해 여러 방면이다. 정·관계의 인사들이 이런 델 더러 이용하는 것으로 들린다. 아소 다로 일본 신임 총리가 카페정치를 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지난 9월24일 취임 이후 지난 17일까지 15차례나 비공식 밤 스케줄을 보냈다는 것이다. 데이코쿠(帝國·제국) 호텔 같은 특급호텔의 회원제 카페에서다. 일본은 과거의 기생과 비슷한 ‘게이샤’ 문화가 아직도 있다. ‘게이샤’ 술집에도 갔는진 확인되지 않았으나 아무튼 술집엔 날마다 간 모양이다. 공식 밤 스케줄 10차례를 합치면 불과 24일 동안에 모두 25차례나 밤 술자리를 가진 셈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요정이든 카페든 술자리 정치가 건전한 자리라고 보긴 어렵다. /임양은 주필

YS와 DJ

김영삼(YS),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정적이면서 친구 사이다. 전두환 정권의 5공 땐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의 공동의장을 지냈다. 한나라당 김무성 안경률 의원 등, 민주당의 박광태 광주시장 이석현 의원 등은 민추협 출신이다. 이들 10여명이 지난 7월부터 친목 성격의 월례 모임을 갖고 있다. 상도동(YS)계, 동교동(DJ)계로 불리웠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젠 그같은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민추협 출신의 이들이 YS·DJ의 화해를 적극 주선하는 모양이다. ‘지역감정 극복과 국민통합을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감한다는 것이다. YS와 DJ는 박정희 정권 때인 3공 시절부터 경쟁의 관계였다. 당시 제일 야당인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두 사람은 40대 기수론을 표방한 당내 경선이 치열했다. 경선은 DJ가 역전승을 거뒀으나 본선에서 패배했다. 세월이 흘러 민추협 공동의장을 지낸 뒤엔 YS·DJ 순으로 대통령을 지냈다. 두 사람은 지금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지만, 썩 좋은 것은 아니다. 근 50년 지기(知己)의 친구로서 갖는 정보다는 정적이었던 앙금이 더 깊다. 얼마전 YS가 부친상을 당했을 때도 DJ는 전화 문상만 하고 마산의 빈소 문상은 가지 않았다. DJ의 전화 문상은 건강을 이유로 들었으나, 외국 나들이를 한 미국보단 마산은 지근 거리라고 보는 것이 객관적 시각이다. 문상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 데 노무현 전 대통령도 문상을 가지 않았다.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때는 과거에 YS가 사준 팔목시계를 차고 상도동을 찾더니, 대통령을 지내고 나서는 그가 살고 있는 김해와 마산은 지척간인 데도 가지 않았다. “내가 노무현을(정치인으로) 픽업했다”는 것은 YS의 말이다. 조지 HW 부시와 빌 클린턴 두 미국 전 대통령이 허리케인으로 폐허가 된 텍사스주의 어느 마을을 돕기위해 함께 나란히 찾은 것이 지난 14일이다. 아버지 부시는 클린턴에게 대선에서 패배를 당하고, 클린턴은 패배를 안겨준 사이인 데도 두 전직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힘을 합치고 있다. YS·DJ 두 전직 대통령도 그와 같은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면 좋겠다. 민추협 출신들의 화해 노력을 눈 여겨 두고 보는 이유다. /임양은 주필

올림픽 꿈나무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은 종합 7위의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앞으로 10년 이후에도 이 같은 성적을 이어갈지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메달 종목 선수들의 산실인 학교 운동부가 급격히 쇠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체육회 한국초·중·고선수 현황을 보면 2003년 이후 5년 동안 대부분의 종목에서 선수가 줄었고, 비인기종목에서 특히 심했다. 육상은 21%, 레슬링은 16%, 양궁 6%, 유도는 7%가 줄었다. 30대 선수들이 대표팀의 주력인 여자핸드볼도 중·고교 선수가 매년 10%씩 줄어 신진 유망주 확보에 어려움이 많다. 주요 메달 종목의 ‘올림픽 꿈나무’가 줄어 들고 있는 것이다. 첫번째 요인은 저출산이다. 대부분 한 두 명의 자녀를 둔 부모들이 이제는 힘들고 장래가 보장되지 않는 운동에 자녀가 매진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자녀를 운동선수로 키우려는 학부모들이 축구 야구 등 인기 종목에만 관심을 갖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육상 등 기초 종목에서 활약하던 선수가 부모의 뜻에 따라 축구나 야구 등으로 옮겨가는 사례가 늘고 있는 이유다. 학교 운동부의 선수 지도 방법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사회 분위기가 개인의 개성과 행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마당에 여전히 학교 운동부는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는 상황이다. 특히 스포츠정신을 길러야 할 소년쳬전이 교육청이나 시·도 간의 치열한 전쟁터가 되고 있다. 어린 선수들이 결과에만 집착하며 지나친 훈련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면 되레 선수 생명을 단축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학생들이 운동부를 심리적으로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급선무다. 운동부에 가입하면 운동에만 전념해야 하고 해당 종목 선수로 인생의 진로가 결정된다는 부담을 덜어 줘야 한다. 운동 선수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 조사 결과, 유명 프로선수를 매력적으로 인식하지만 학교 운동부 선수에 대해선 매우 부정적이었다. 이는 운동부 생활에 대해 스파르타식 훈련과 불안한 미래 등과 같은 선입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비인기 종목과 기초 종목은 학교 운동부가 유일한 선수양성 기관이기 때문에 정부의 전략적 지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도 학교 운동부 출신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하이칼라 농부

감사원이 공개한, 지난해 실시된 ‘쌀 직불금 실태 감사’ 결과를 보면 서울·과천에 거주하는 공무원 520명과 공기업 임직원 177명이 2006년분 쌀 직불금을 수령했다. 이 지역에서 쌀 직불금을 수령한 4천662명은 공무원이나 공기업 임직원 이외에도 금융계, 변호사 등 전문직, 회사원, 직업불명 등 비농민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4천520명(96.9%)은 벼를 수확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쌀농사를 짓지 않으면서도 직불금을 불법 수령했다는 의혹이 안 생길 리 없다. 2007년에도 부정 수령자가 12만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공직자가 4만여명이나 돼 충격이 더욱 크다. 농민에게 돌아가야 할 쌀 직불금을 공직자들이 가로챈 셈이다. 농민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회 이른바 지도층 인사들이 농촌을 얼마나 하찮게 생각하고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동안 정부는 농업정책과 관련해 정부가 할 것은 다해왔다고 공언해 왔는데 공직자들이 불법을 저지른 것은 농정의 사기이며 변죽만 울린 꼴이다. 지금 농촌은 고유가에 비료값 인상 등으로 풍년농사를 지었어도 시름만 깊어가는 중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시행됐지만 쌀 직불금 문제는 여야 모두에게 양날의 칼이다. 현 정부 들어 임명된 고위 공직자들의 부당한 직불금 수령 사실이 더 드러나면 한나라당의, 노무현 정부에서의 부당 수령 사실이 더 적발되면 옛 여당이던 민주당의 책임이 더 무거울 수밖에 없어서다. 그런데 이 마당에 청와대가 “(현행법상 쌀 직불금은 위탁 영농 대상자도 수급대상이 된다. 노무현 정부에서 법을 잘못 만들어 이(봉화) 차관 같은 사람도 직불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한 건 부적절하다. 더구나 “(이 차관과) 비슷한 경우가 공무원, 의사, 변호사 등에도 많이 있다. 따라서 위법이라기보다 도덕성의 문제”라고 선을 그은 것은 ‘내 식구 감싸기’로 더욱 당치 않다. 불법을 저지른 공무원이 있다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부당 이득을 환수하고, 그 정도가 심하면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국민감정을 모르는 그야말로 ‘소통부재’의 대표적인 사례다. 청와대는 현 고위 공직자 중 직불금을 신청한 인사 명단을 당장 공개해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은행나무 가로수

단풍철이 곧 다가온다. 사람들은 단풍을 감상하지만 단풍은 활엽수의 마지막 몸부림이다. 엽록소(탄소동화작용의 촉매인 엽록체)가 변질하여 화청소(이파리의 색소)의 색깔이 붉거나 노랗게 변하는 것이 단풍이다. 모든 활엽수는 늦가을이면 다 단풍이 든다. 그중 유별나게 고운 것이 단풍나무의 빨간 단풍과 은행나무의 노란 단풍이다. 단풍이 아름답긴 해도 낙엽을 앞두는 것이 단풍이다. 유실수는 열매를 다 성숙시키고 나면 낙엽의 전주곡으로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다. 은행나무 가로수가 적잖다. 도심지에서 은행나무 단풍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참 좋다. 그런데 결실을 맺은 은행이 문제다. 보통은 바지런한 주민들이 따간다. 길 가다 보면 은행나무 가로수에 올라가 툭닥거리며 은행 터는 것을 볼 때가 있다. 그런데 장대를 이용해 은행 20㎏을 딴 주부 3명이 절도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다. 은행 열매는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이므로 절도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또 영등포구청에서는 ‘가로수는 공공의 재산이므로 나무 열매도 공공의 재산’이라면서 길에 떨어진 것을 줍는 것은 괜찮아도 따는 것은 안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말인즉슨 틀린 말이 아니다. 더 엄격히 말하여 길에 떨어진 열매를 주어도 안된다 할 수 있는 것은 길에 떨어져도 공공의 재산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그들 말대로라면 공공의 재산인 은행 열매를 구청에서 제때 거둬들이지 않아 유실되거나 그대로 썩히면 직무유기나 배임에 해당된다 할 것이다. 책상머리 이론보다 실체적 사실을 봐야한다. 자치단체에서 은행나무 열매를 수확해간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인건비가 안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따는 것도 힘이 들지만 열매 껍질을 벗기고 알맹이를 깨끗이 씻어 햇볕에 말리는 데 잔손질이 여간 가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 방법은 수확할 권리를 민간에 입찰 붙이는 것이지만 이도 문제점이 적잖다. 어떻든 가로수를 관리하는 자치단체에서 따가지도 않는 은행 열매를 주민이 땄다고 절도죄로 다스리는 것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원시를 비롯한 도내 시·군에서도 은행나무 가로수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은행나무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임양은 주필

100원

화폐의 최소 단위는 ‘전’이다. 돈 전(錢)자다. 그러나 전 단위는 일몰됐다. 현행 최소 단위는 ‘원’이다. 예컨대 ‘원·달러 환율’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최소 단위인 1원 짜리 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의 최소 단위 통화는 10원 짜리 동전이다. 그런데 10원 짜리 동전은 길에 떨어져 있어도 줍는 사람이 별로 있을 것 같지 않다. 10원 짜리 동전을 만드는 덴 4.5배의 돈이 더 든다. 이토록 비싼 돈을 들여 만든 10원 짜리 동전이 천덕꾸러기인 것은 돈의 유통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최고 단위 화폐인 만원 짜리 한 장도 시장에 나가면 눈 녹듯이 사그라지는 판이다. 그러고 보면 실생활의 최소 단위는 100원 짜리 동전인 셈이다. 100원 짜리 동전을 만드는 덴 약 40%의 돈이 더 들어간다. 한데, 100원 짜리 동전 또한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코 흘리기 아이에게 주어도 마뜩찮게 여긴다. 100원 짜리 동전 한 개로는 사먹을 게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100원 짜리 동전 한 개가 신경 쓰이는 데가 있다. 택시의 기본 요금 1천900원은 참 묘하다. 거스름돈을 받기도, 안 받기도 어줍잖은 것이 100원 짜리 동전 한 개인 것이다. 전엔 기사들이 서슴없이 거슬러 주거나 손님 또한 안 받고 그냥 내리기도 했던 것이 요즘 들어서는 달라졌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100원 짜리 거스름 동전을 받을 요량으로 우물우물하며 기다린다. 그러면 기사들 또한 거스름 동전을 내주는 것이 예사롭지 않을 때가 많다. 손님 앞에 성큼 내주면 될 터인데, 100원 짜리 동전 한 개를 든 손이 중간쯤 머물러 있어 받으려면 손님이 손을 뻗어야 하는 것이다. 세간의 서민생활 인심이 이토록 기막히게 달라져 가는 것을 택시를 안 타는 분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정부의 고관들은 더 더욱 알 턱이 없다. 그런데 100원 짜리 동전 한 개를 거스름 돈으로 내주는 기사의 손길이 손님들에게 점점 더 먼 위치에서 머문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러는 기사가 많다. 살기가 점점 더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의 높은 이들은 말로만 떠들 일이 아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임양은 주필

처첩(妻妾)

‘사람의 지(智) 정(情) 의(意)의 움직임과 그 움직임의 근원이 되는 정신적 총칭’ - 이는 마음의 낱말에 대한 한글사전의 풀이다. 결국 마음은 자신의 것이다. 그러나 내 것이긴 해도 내 것이 아닌 것이 또 사람의 마음이다. 이성적 판단을 가지면서도 마음은 감성에 기울고, 감성적 판단을 가지면서도 마음은 이성에 기울 때가 많다. 이를 좌우하는 것이 외부의 조건이다. 즉 마음은 주관이고 조건은 객관이다. 약을 달인 약탕관의 물이 항상 일정할 수는 없다. 처가 달인 약의 분량은 많거나 적거나 했다. 그런데 첩이 달인 약은 항상 일정했다. 남편은 약을 달이는 정성이 처보다 첩이 더 지극하다고 여겼다. 첩은 달인 약이 많으면 내붓고 적으면 물을 타서 일정한 분량을 맞췄던 것이다. 병자호란 때다. 동대문밖 청량리에 진을 치고 있던 청나라 군영의 수장 용골대가 남산골 이 생원을 맞이했다. 미색이 뛰어난 이 생원의 처는 당시 행패가 심했던 청나라 군사에게 붙잡혀가 수소문 끝에 마침내 용골대가 취(娶)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만났지만, 가난은 해도 정분은 두터웠던 그런 아내가 아니었다. “장군! 조반석죽도 제대로 못챙긴 것을 생각하면 이가 갈리옵니다. 저놈 목을 치소서” 비단옷에 금장신구를 두룬 아내의 외침이다. 용골대는 환도를 빼어 들었다. 기합 소리와 함께 목이 떨어진 것은 이 생원이 아닌 여인의 것이었다. “미안하오. 본국에 가서, 만일 나보다 윗사람의 여자가 또 되면 그땐 내목을 쳐라하지 않겠소!” 어리둥절해 하는 이 생원에게 들려준 용골대의 말이다. 그러나 대개는 그런 상황에서 감성에 치우쳐 이 생원을 죽이는 것이 보통이다. 아부하는 아랫 사람이 조퇴를 신청하면 “암 몸이 최고지”하며 허락하고, 미운 아랫 사람이 조퇴를 신청하면 “무슨 소리야 공사를 구분못하는 구먼”하고 퇴짜놓기 십상인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본심을 감추고 꾸민 첩을, 꾸미지 않은 본심의 처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인간의 간사한 마음인 것이다. 한문의 첩(妾)은 서있는 여자란 뜻이다. 서있는 여자는 언제 떠나갈 지 모른다. 첩 뿐이겠는가, 인간 관계도 다를 바가 없다. 처보다 첩 같은 인간 관계를 더 좋아하는 용골대보다 못한 못난 인간들이 많아 세상이 더 어지럽혀지고 있다./ 임양은 주필

국감 회의론

국회의 국정감사 무용론이 제기되는 것은 국가적으로 매우 불행한 일이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게 국감에 나선 한나라당의 ‘대정부 엄호’다. 초반부터 도를 넘어섰다. 당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피감기관 ‘보호’를 독려하고 조언에 까지 나서는 모습은 적절치 못하다. 예컨대 학원 관계자들로부터 선거비용을 차입한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에 대해 야당의 날선 질의가 이어지자 “증인이 검찰 수사에 활용될 수 있어 불리한 증언을 할 필요가 없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조언하는 등 마치 변호사처럼 행동했다. ‘피감기관 감싸기’는 국감대책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정부 보호’를 거론하면서 더욱 강화됐다. 홍준표 원내대표가 “장관들에 대해 모욕성 질문이 들어올 때는 반드시 대응해 줘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지시했다. 국회 권위를 위해 간사들이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제지해 달라는 홍 원내대표의 주문은 국감의 무력화를 획책하는 발언이다. 민주당의 국감실력도 이미 바닥이 난 상태다. 준비 부족과 핵심 쟁점에 대한 체계적 비판이 결여됐다. 야당으로서의 주도권을 잃었다. 오히려 ‘참여정부 심판’을 앞세운 한나라당이 날을 세우고, 야당이 방어에 나선 양태다. 국감 질의 시간 대부분을 지역구 민원 문제에 활용하는가 하면, 하나마나한 원론적인 질문을 마친 뒤 “감사합니다”라고 사의까지 표명했다. 여권의 언론장악 논란을 두고 첨예하게 여당과 맞서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정도 말고는 뚜렷한 실적을 만들어내지 못해 민주당의 국감 중간 성적표는 낙제점에 가깝다. 이렇게 국정감사가 파행과 정쟁을 일삼는 것은 한나라당이 미국 쇠고기 수입 파문, 국제유가 폭등, 금융위기 등으로 국정을 장악하지 못한 탓이다. 야당시절을 잊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민주당은 아직도 야당으로 체질 개선을 하지 못했다. 여당인지 야당인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더욱 문제는 사정이 쉬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이다. 더구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감장에서 “감사하러 오시지 않았나요. 감사하세요” “질문만 하시면 어떻게 하느냐, 답변을 들으셔야죠”라는 등의 ‘오만’한 답변도 국감을 무력하게 만든다. 국감 회의론이 그래서 비등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주공, 잦은 설계변경 고질병 고쳐야 한다

공공부문 사업비의 헤픈 씀씀이가 여전하다. 공기업에서 추진하는 공공건설 사업비가 최초 계획에 비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등 방만한 운영으로 국민의 혈세가 새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7일 대한주택공사 국정감사에서도 한나라당 유정복 의원(김포)은 주공이 공공건설사업의 잦은 설계변경으로 사업비가 당초보다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질타했다. 지난 2005년 12월 착공 후 올 6월 준공된 남양주 가운아파트 건설공사는 20번이나 설계를 바꿔 104억1천만원의 추가 공사비를 지출했다. 또 지난 2005년 11월에 시작한 성남판교·분당~내곡 간 도로이설 공사는 설계를 7회 변경, 당초 845억원으로 예정했던 사업비가 1천364억원으로 늘어났다. 이처럼 주공이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추진한 각종 사업의 설계변경은 981회로 1조1천375억원이 추가로 지출됐다. 혈세낭비다. 그래도 문책당한 사람은 아직 없다. 공공건설사업 예산이 중간단계에서 계속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기획 단계의 부실 때문이다. 처음 기획이 잘 됐는데 이렇게 사업비가 늘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기획에 결정적인 잘못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설계변경이 불가피할 때도 있을 것이다. 사업기간 중 물가가 오르고, 건설 공법도 바뀌기 때문에 사업비가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들 때문이라기보다는 공공사업에 대한 관리가 아직까지 크게 미흡하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예산 공사라고 해서 합리적인 산정없이 주먹구구식으로 기획한 공기업 종사자들의 고질적인 폐습의 결과다. 설계변경이 한두 번도 아니고, 3회 이상이 384건, 5회 이상도 171건이나 되는 자료가 이를 방증한다. 이같이 잦은 설계변경은 공기(工期)지연은 물론 설계를 계속 변경하는 과정에서 비리가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연례행사 처럼 되풀이되는 지적과 질타에도 설계 바꾸기 구태가 시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앞으론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합당한 이유 없이 실제 사업비가 초기 예상 사업비보다 지나치게 늘어나는 경우엔 사업추진 공기업에 책임을 묻는 체제가 필요하다. 엄중 문책함으로써 예산을 낭비하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정감사장에서 모두 품위를 지켜라

국정감사장에서 벌어지는 추태가 가히 점입가경이다. 국정감사가 아니라 여야간 감정싸움판이다.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1년과 올해 출범한 이명박 정부를 대상으로 한 국감이어서 초반부터 책임 소재를 둘러싼 ‘네탓 공방’만 일삼는다. 여야의 처지가 뒤바뀌어 피감기관으로선 지난해의 우군이었던 의원들이 적군이 된 경우가 많다. 특히 이른바 ‘좌편향 우편향’ 등 이념 공방이 치열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국감이 이래선 안 된다. 국정감사장이 정쟁(政爭)의 무대가 될 순 없다. 감사를 받는 측이나 감사를 하는 측의 수준이 도무지 형편이 없다. 오고가는 고성·막말이 유치하고 황당하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우선 국감장에 선 장관들의 무례가 지나치다. 누굴 믿고 그러는진 능히 짐작되지만 고압적인 답변은 예사고 막무가내식 답변을 서슴지 않는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압권이다. 강 장관은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들과도 설전을 자주 벌여 ‘버럭 강만수’ ‘ 핏대 강만수’라는 별칭이 붙었다. “김 (종률)의원님, 꼭 그렇게 소리를 질러야 감사가 잘 됩니까”라고 질문하는 의원을 되레 나무라기도 했다. 감사를 받으면서도 위세가 당당하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한 의원이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두 정권에 걸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주중 대사를 지낸 경력을 들어 ‘햇볕정책 전도사가 영혼을 팔았나’라고 따지자 “의원님도 반성하시오”라고 쏘아 붙였다. 세칭 ‘강만수 효과’인 모양이다. 도무지 책임지려는 장관이 보이지 않는다. 의원들도 별반 다른 것 없다. 국감장에서 호통만 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사실 호통을 칠 자격도 없다. 국회는 이미 스스로 법을 어겼다. 국회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처리하지 않은 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문 대표의 처신은 개인의 자질 문제지만 그를 감싸는 국회의 행태는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무시하는 집단이기주의다. 국회는 면책특권을 남용함으로써 정상적인 사법절차를 방해하고 있다. 그런 국회의 일원인 의원들이 국감장에서 언성을 높이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앞으로 실추된 명예와 본분을 되찾으려면 이성을 갖고 국감에 임해야 한다. 국회와 피감기관은 국민을 의식하기 바란다. 국감을 통해 정치적인 ‘스타’가 되고, 또 면죄부를 받으려는 과거의 국감 행태에서 탈피해야 한다. 이런 충고 또한 ‘우이독경’, ‘마이동풍’이 될 것 같아 재삼 걱정스럽다.

남북 스포츠

남북한이 체육교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90년이었다. 양측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축구대회를 벌여 1946년을 끝으로 중단됐던 경·평축구대회를 44년 만에 부활시키고,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처음으로 남북한 단일팀을 출전시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후 잠잠하던 남북체육교류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에 ‘공동입장’함으로써 물꼬를 텄다. 시드니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한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등 총 9차례에 걸쳐 국제종합대회 공동입장을 성사시켰다. 남북한이 따로 입장하면 오히려 이상할 만큼 국제대회 개막식 공동입장은 한반도 평화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남북한 공동입장이 중단됐다. 물론 경색된 남북관계가 첫 번째 원인이다. 스포츠는 정치와 별개라는 것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입장이지만 남북문제는 예외다. 남북 간 체육교류의 파국은 이미 지난 3월 예고됐다. 평양에서 열려야 했던 월드컵 축구 아시아예선 남북경기가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에 대한 북한의 문제 제기로 중국에서 치러졌다. 그뿐만 아니다. 올 4월26~27일 제주에서 열린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에 참가차 방한했던 북한 선수단 17명(임원 10명·선수 7명)의 숙식비를 남측에서 지원하려 했으나 북측이 거부한 일도 있었다. 남북관계 악화 요인 외에 국제스포츠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국내 인사가 없다는 점도 베이징올림픽 공동입장 무산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2002년 시드니올림픽 당시 김운용 IOC부위원장이 장웅 북측 IOC위원, 사마란치 당시 IOC위원장과 긴밀히 협의하며 공동입장 성사 역할을 했지만, 이번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국내 인사가 한 명도 없었다. 유일하게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한국인 IOC위원으로 남아 있지만 특검 수사로 불구속 기소되면서 대회에 참가하지도 못했다. 베이징올림픽의 메달 종합순위(7위~33위)에서 보듯 남북의 경기력도 더욱 벌어졌다. 만일 베이징올림픽에 남북이 단일팀으로 참가했다면 성적은 크게 뒤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향후 남북 탄일팀 구성은 경기력 차이 때문에라도 쉽게 성사되지 못할 듯 싶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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