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소비

기분이 좋아서도 마시고 나빠서도 마시는 게 술이다. 일상의 마실거리이기도 하다. 그럼, 술의 소비량이 늘어가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러시아에서 보는 흥미로운 것은 정부가 술을 권장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소주가 보편화된 술이라면 러시아의 대표 술은 보드카다. 독주다. 보드카 소비 1% 증가가 0.25% 포인트의 사망률을 높인다. 이 때문에 텔레비전 광고에도 금했던 보드카 소비를 권장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러시아 정부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러시아도 예외가 아니어서 금융불안이 막심하다. 이 때문에 국민사회의 술 소비가 줄어 주류산업의 타격이 심한 모양이다. 구 소련 공산당은 1958년부터 1985년까지 27년 동안 ‘음주와의 전쟁’을 벌였다. 보드카 생산량을 줄이기도 했지만 밀주가 성행, 소비량은 해마다 늘기만 했다. 소련이 와해되고 러시아로 복귀되고도 절주운동은 계속됐으나 보드카 소비량은 여전히 늘었다. 이런 절주운동에도 효과가 없었던 보드카 소비가 경제위기를 맞아 이젠 정부가 되레 권장할만큼 절로 감소된 것을 보면, 러시아 국민이 겪는 경제난이 얼마나 심한지 직잠이 간다. 문제는 세금과 재고다. 러시아 정부의 술 소비 권장이 가계 지출에서 제일 먼저 절감 대상으로 삼는 국민사회의 호응을 얼마나 얻어, 주류세가 36%나 줄고 지난해에 비해 6배나 넘치는 재고량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지 궁금하다. 그런데 국내 소주값이 또 오른다. ‘참이슬’의 출고 가격이 1년7개월만에 5.9% 인상돼 360㎖짜리 한 병에 소비자들은 대형마트에서는 950원, 일반 소매점에서는 1천200원을 줘야 산다. ‘처음처럼’도 곧 인상될 전망이다. “주정가격 등 생산비가 올랐기 때문이다”란 게 업계의 이유이지만 올려도 잘 팔리기 때문에 올리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술값은 가계지출에 영향을 크게 안받는 국내 사정이 러시아보단 경제가 더 낫다고 봐야 할 지, 진로와 두산 등 주류업계는 불황에도 호황인 것 같다. 올 한 해 동안의 술 소비량 통계는 내년 초나 발표될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느는 관행으로 보아 올 소비량도 늘었을 것이 거의 틀림이 없다. /임양은 주필

농어촌특별세

‘농어촌특별세’를 폐지하려는 기획재정부의 속셈은 난감하다. 농특세는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 상정에서 제외돼 가까스로 폐지위기를 넘긴 상태다. 하지만 기재부가 또다시 폐지시도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기재부 세제실 고위간부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주요 당직자를 방문, 내년 1월8일까지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농특세 폐지에 협조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수산물시장 개방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대체 재원 확보 방안도 없이 도대체 농촌을 왜 더 살기 힘들게 만드려는지 이상하다. 농특세는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 직후 농어업의 경쟁력 강화, 농어촌 생활환경 개선, 농어민 후생복지사업 등을 위한 15조원의 재원 조달을 위해 10년 시한으로 1994년 7월 도입됐다. 재원 목표 15조원은 UR로 인해 10년간 농가피해 예상액을 참고해 산출됐다. 당시 재정경제부는 농특세를 탐탁치 않게 여겨 4년 후인 1998년 농특세 폐지를 추진했으나 관계부처 이견으로 무산됐고 2001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재연됐다. 하지만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등 농산물시장의 추가개방으로 인해 2003년 12월 여야 합의로 되레 과세시한을 2014년 6월 말까지 10년간 연장시켰다. 이때도 예산당국의 반발이 거셌다. 재산운용의 탄력성을 꾀하는 예산부처 입장에서 전용(轉用)이 불가능한 목적세가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농특세가 폐지될 경우 농촌이 더더욱 살기 어려워질 건 보나마나다. 정부는 농특세를 없애는 대신 일반회계에서 관련 예산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우선 순위가 낮은 농어촌 관련 예산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반회계에서 농특세 대체재원의 안정적인 확보가 불확실하다. 문제는 농특세로 걷는 재원만큼 일반예산을 농어촌지원사업에 투입하겠다면 굳이 농특세를 폐지할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만일 농특세가 사라지면 정부의 농어업 경쟁력 강화 대책이 크게 위축된다. 농특세는 2014년까지 유지하기로 이미 사회적 합의가 돼 있다. 기획재정부는 농특세 폐지 추진을 중단해야 된다. 야당은 농특세 폐지를 반대하지만 한나라당이 또 강제로 밀어붙일 우려가 크다. 정부와 여당은 농어촌을 자꾸 괴롭히지 말라. /임병호 논설위원

크리스마스

역사의 큰 획(BC/AD)을 그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던 당시, 이스라엘은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본명 옥타비아누스) 초대 로마 황제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의 조카였던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의 내란을 종식시키고 혼돈과 폭동을 잠재우면서 법과 질서로 대표되는 로마의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세네카가 붙인 ‘아우구스투스의 평화’는 나중에 ‘팍스 로마나’로 발전할 만큼 아우구스투스의 정치적 영향력은 막강했다. 황제 숭배를 강요했던 그는 스스로 메시아를 자처했다. 하지만 그 평화는 로마의 군사력에 의한, 피로 물든 평화였다. 군사력을 가진 권력자, 원로원 등 지배계층에 의한 가짜 평화와 가짜 구세주가 통치하던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으로, 모든 인류의 구원자로, 사랑의 메시아로 태어났다. 메시아의 탄생을 고대하며 준비해야 할 이스라엘은 깊은 잠에 취해 있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는 제사장들의 타락상을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여호와의 이름을 멸시하고(1:6), 많은 사람들을 죄악에서 떠나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느님의 법에서 떠나게 했다(2:8). 이스라엘 백성들은 잡혼과 이혼, 헌물 도적질을 일삼았다. 신앙과 겸손 대신 불신앙과 교만이 칭송 받는 시대였다(3~4장). 이스라엘의 이 같은 암흑의 역사는 예수가 올 때까지 400여년간이나 지속됐다. 2400여년 전 말라기 선지자의 지적이 큰 울림으로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모습과 지금 세계가 처한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 탄생 당시의 로마 세계는 절대 군사력에 의한 인간 중심의 평화를 지향했으며, 지금은 경제의 힘에 의한 인간 중심의 평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오늘의 지구촌 위기는 경제적 풍요만을 추구했던 인간의 탐욕으로 빚어졌다. 권력자들과 돈의 힘을 의지했던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가졌으면서도 빈자의 모습으로, 또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의 헌신자로 오신 예수의 탄생 의미를 경건하게 다시 새겨야 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예수의 출생지 베들레헴 근처에서 밤 중에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들려준 천사들의 찬송 소리다. /임병호 논설위원

박근혜의 침묵

물리적 변화는 합성이다. 합성은 원상적 분리가 가능하다. 화학적 변화는 융합이다. 융합은 원상적 분리가 불가하다. 한나라당의 고질병이 이른바 친이·친박 계열의 암투다. 이 비상시기에도 암투의 저류가 흐른다. 융합을 못하고 합성돼 있기 때문이다. 원내 거대 여당이면서도 맥을 못추는 연유 또한 이 때문이다. 국회 의사당에서 해머와 전기톱이 설치는 난장판인데도 친박 계열은 이재오 조기 귀국설에 더 신경쓰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을 대신해 당의 기강을 바로잡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이재오 조기 귀국설의 관측인 것이다. 이재오는 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살피는 측근이긴 하다. 김대중에게 박지원이 있고, 노무현에게 문재인이 있었다면, 이명박에겐 이재오 인 것이다. 이재오가 내년 초에 귀국하고 안 하고는 그들의 일이므로 관심이 없다. 관심을 갖는 것은 박근혜의 침묵이다. 박근혜가 당의 영수급 인물이라면 집권 여당이 처한 이 어려운 시기에 침묵을 지키는 것은 괴이하다. 침묵이 때론 정부 여당을 돕는다고도 할 수 있지만, 작금의 상황은 아니다. 지난 번 촛불집회 때도 그랬다. 나중에 가서 기껏 한다는 게 ‘정부도 반성하고 시위도 반성해야 한다’는 식의 양비론을 내놨다. 양비론이나 양시론은 하나마나 하는 비겁한 기회주의적 논리다. 정부 여당이 경제위기 타개에 난국을 맞고 있는 이즈음 박근혜가 힘을 실어주는 좋은 말 한 마디를 해주는데 무척 인색하다. 친박 계열의 행적에만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매케인은 오바마를 공격하는 공화당전국위원회에 “지금은 당보다 미국이 있을 때”라면서 “공화당은 오바마에 대한 비난보단 힘을 합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근혜에게 이명박은 경선을 겨룬 정적이긴 해도 같은 당 사람이다. 당이 틀리고 대선에서 겨룬 오바마와 매케인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박근혜에게 듣고 싶은 소릴 매케인이 했다. 박근혜의 차기설을 말하지만, 이명박이 실패하면 박근혜의 차기도 있을 수 없다. “글쎄요? 웬지 그 분의 처신에 요즘은 회의감이 들긴 해요” 친박 계열의 한 중진급 국회의원이 내뱉는 말이다. /임양은 주필

국선전담변호사

국선변호사는 미성년자나 70세 이상의 노인,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피고인이 신청할 경우에 법원이 나랏돈을 들여 직권으로 선정하는 변호사를 말한다. 대법원이 갖는 국선전담변호사 40명 선발에 178명이 지원, 4.5대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고 한다. 지난 3월에 선발할 때만도 경쟁률이 2대1이던 것이 지원자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에는 인기가 없었던 것이 국선변호였다. 변호사가 마지못해 국선을 맡게되면 형식적으로 임하기가 일쑤였다. 심지어는 검찰조서는 고사하고 공소장조차 안 보는 국선변호사가 있었다. 다른 사건의 사선변호사로 법정에 나왔다가 갑자기 국선을 맡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피곤인은 지금 반성하고 있지요?” 이런 식으로 묻고는 “재판장님의 관대한 처분을 바랍니다”하고 두리뭉수리하게 끝내는 게 국선변호였다. 쥐꼬리만한 국선선임료는 으레 소속 변호사회 운영비로 입금되기도 했었다. 국선변호가 예전과 달리 인기를 끄는 것은 경제가 어려운 탓도 있지만 보수가 괜찮기 때문이다. 월 800만원에 매월 50만원의 업무수행비가 지급된다. 변호사 1만명 시대에 사건 수임이 없어 사무실 운영비 조차 대기 어려운 변호사들이 적잖다. 이런 판에 국선전담변호사는 계약기간이 2년이긴 하나, 사건 수임의 걱정없이 상당한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국선전담변호사의 연봉이 억대다. 정액 소득자 치고는 고액이다. 이런 고액 연봉의 국선전담변호사 일 것 같으면 변론도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사선변론처럼 기록도 꼼꼼히 살피고 구치소를 찾아 피고인 면담도 하는 성실한 노력이 있어야 된다. 변호사는 맡은 사건이 잘 되든 안 되든 결과에 책임을 지진 않지만, 소임에 최선을 다 해야 할 책임은 있다.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은 변호사법이 규정하고 있는 변호사의 사명이다. 억대 연봉을 받는 국선전담변호사가 공소장조차 읽지 않고 법정에 서거나 무턱대고 “관대한 처분을 바랍니다”는 식의 변론을 일삼아서는 국비의 낭비다. /임양은 주필

동지

절후의 하나인 동지는 밤이 가장 길다. 여름철 하지부터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다가 동짓날에 이르러 극점에 다다른다. 따라서 동지 이튿날부터는 하지까지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고대인들은 이 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여겨 태양신에 제를 올리는 축제를 벌였다. 중국의 주(周)나라가 동지를 설날로 삼았던 게 이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도 비슷했다. 조선왕조 23대 순조 때 학자 홍석모가 지은 책으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가 있다. 연중 행사와 풍습을 집대성한 책이다. ‘동국세시기’는 동짓날을 ‘아세’(亞歲)라고 했다. 작은 설이라는 말인 데 역시 태양의 부활을 의미한다. 동짓날에 쑤는 동지죽을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전래의 고담이 작은 설로 친데서 연유한다. 동지죽을 쑤는 팥은 잡귀를 쫓는 축귀(逐鬼)의 효험이 있는 것으로 믿었다. 팥이 붉은 양색(陽色)이므로 음귀(陰鬼)를 쫓는 효과가 있는 걸로 보아왔다는 것이 민속적인 해석이다. 돌림병이 퍼질 땐 우물에 팥을 넣어두기도 했던 것이다. 동지가 음력 동짓날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고 하는 데 애동지엔 또 동지죽을 안 쑤기도 하는 풍습이 있다. 올핸 동짓달 스무나흘 날이 동지여서 노동지다. 음력으로는 동짓날이 동짓달 중에 불규칙적으로 드는데 비해 양력으로는 언제나 12월21일이 동짓날이다. 동짓날은 왕조시대에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관상감에서 이날 새해 달력을 만들어 조정에 내면 임금이 친람하여 옥새를 찍어 백관에게 나눠주고, 지금의 행정안전부격인 이조(吏曹)에서는 지방수령 방백들에게 배포하였다. 농경산업이 절대시됐던 때였으므로 새해 달력은 농사와 관련된 주요 자료였던 것이다. 영농과 밀접한 연중 24 절후의 기록은 특히 중요했다. 어젯밤이 올 동지다. 오늘부터 밤이 짧아진다. 태양이 부활한다고 믿었던대로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태양의 부활과 아울러 경제의 부활도 함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임양은 주필

최근 국조(國鳥) 지정 대상으로 회자되는 학(鶴)은 신선이 타고 다니는 새로 알려져 있다. 천년을 장수하는 영물로 인식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친숙하게 만난다. 학은 예로부터 선비나 문신의 복식에 자주 등장했다. 조선시대 때 학자들이 평상시에 입던 학창의(學?衣)는 학의 모습을 본떠 만든 옷이다. 흰 바탕의 창의에 깃·소맷부리·도련의 둘레를 검은색으로 둘러 학과 같이 깨끗하고 기품있는 선비의 기상이 돋보이도록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문무관의 관복에 흉배를 부착하였는데 문관은 학을, 무관은 호랑이를 각각 품계에 따라 다르게 붙였다. 학은 고고한 학자를 상징하여 문관이, 호랑이는 용맹을 상징하여 무관이 사용했다. 학문을 숭상하는 문인을 학으로 비유하는 상징적인 표현이 관직의 품계를 나타내는 의관제도로 정착돼, 학을 수 놓은 흉배를 다는 문관을 일명 학반(鶴班)이라고도 하였다. 학과 관련된 속담도 많다. 학이 장수한다는 데서 연유하여 생겨난 ‘학발동안’이란 말이 있다. 머리가 학의 깃처럼 하얀 백발이나 얼굴은 붉고 윤기가 돌아 아이들 같다는 뜻이다. 전설 속의 신선을 형용하는 말로 사용된다. 학이 오래 사는 것에 비유하여 장수하는 것을 학수(鶴壽)를 누린다고 한다. ‘학수고대’란 학의 목처럼 목을 길게 늘이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몹시 기다림을 일컬을 때 쓰인다. ‘학고(鶴孤)’는 외롭고 쓸쓸한 사람을 말하고, ‘학립계군(鶴立鷄群)’은 여러 사람 중에서 뛰어난 인물을 의미한다. 학을 선비로 상징한 ‘학명지사(鶴鳴志士)’는 몸을 닦고 마음을 실천하는 사람을 말하며, ‘학명지탄(鶴鳴之歎)’은 선비가 은거하여 도를 이루지 못함을 탄식하는 것을 뜻한다. 학은 시베리아의 아무르·우수리지방, 만주 동북부 및 일본 북해도 동부의 구시로 등지에서 번식하여 번식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거나 남하한다. 우리나라엔 10월 하순경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환경 오염 등으로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1968년 천연기념물 제202로 지정, 보호하고 있는 중이다. 학을 국조로 지정해도 반대하거나 거부할 상황은 아니다. 다만 반가운 소식을 전하고 해충을 없애는 익조(益鳥)라 하여 국조 대접을 극진히 받던 까치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불법 다단계 사기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그렇게 불법 다단계 업체의 사기에 놀아나는 지 답답하다. 불법 다단계의 사기성을 언론에서 계속 보도하는 데도 피해자가 속출한다. 아프리카 가나에서 금광개발사업을 추진한다면서 ‘두 달 내에 투자금의 120%를 지급하겠다’는 턱도 없는 약속을 믿었다니 안타깝다. 다단계 사기범은 3천100명에게서 무려 178억원이나 받아 챙겼다. 그러나 가나에 투자한 돈은 10%에 불과했다. 사기범이 가나 족장, 가나의 대사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믿고 투자했다니 어처구니 없다. 인터넷TV(IPTV) 셋톱박스 사업을 통해 ‘대박을 터뜨리겠다’며 투자자를 모집한 한 다단계업체는 6개월 만에 투자 원금에 30~50%의 수익을 보장한다고 장담했다. 불법다단계판매로 적발됐던 사람들이 내세운 이것도 당치 않은 얘기다. 6개월 만에 무슨 수로 투자 원금의 30~50% 수익을 올리겠는가. 무려 6천600여명이 4천7억원을 투자했다가 몽땅 날렸다. 과거엔 생필품이나 화장품· 건강식품 등이 다단계의 주요 상품이었지만 지금은 수법이 바뀌었다. 대부분이 6개월 안으로 수익을 보장하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주로 정보통신·해외자원 개발 등을 미끼로 삼는다. 다단계 업체를 위해 회원 관리 전산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공급·관리해주는 전산업체와 프리랜서도 등장했다. 수법이 지능적으로 교묘해졌다. 검찰은 현재 700여 개의 불법 다단계 업체가 휴·폐업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 다단계 업체들은 수사 기관에 적발돼 처벌을 받으면 회사 이름을 바꾸는 수법을 쓴다. 계열사를 설립하는 수법으로 범행을 재개하기도 한다. 현재 95개 업체가 성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딱히 규제할 방법이 없다. 피해액이 클 경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 아니면 유사수신행위 방조 혐의 적용이 고작이다. 불법 다단계는 투자 아이템이 무엇이든 3~6개월이면 자금이 고갈되게 마련이다. 최초 투자자에겐 무리를 해서라도 수익금을 제대로 주며 환심을 사지만 나중 투자자에겐 수당이나 배당금을 줄 수 없게 된다. 불법 다단계에 속아 11만명이 1조원의 피해를 봤다고 한다. 불법 다단계사업 처벌법이 물러 터진 것도 원인 중 하나다. /임병호 논설위원

구두

한국복식사는 구두의 국내 도입을 1880년대로 친다. 개화파 정객, 외교관들이 일본 미국 등지서 사 신고 들어온 것이 기원이다. 이러다가 1894년(고종 31년) 갑오경장으로 양복이 공인되면서 상류사회에서 구두가 보편화됐다. 당시엔 구두를 양화(洋靴)라고 했다. 서울에 양화점이 등장한 것은 1905년으로 기록돼 있다. 검정 에나멜 구두가 유행된 것으로 전한다. 구두도 시대에 따라 유행이 달랐다. 최초의 구두 도입기엔 목이 발목위까지 올라와 발등부터 버튼이 달려 잠그는 장화형의 버튼부츠였던 것이 구두끈을 매는 단화형으로 차츰 변모했다. 여성용 구두는 개화기에 기독교 전도사 부인들이 들어오면서 퍼지기 시작했다. 이 무렵의 여성 구두는 굽이 낮은 예장화 스타일이었다. 하이힐이 널리 보급된 것은 1930년 대다. 하이힐을 가리켜 ‘뾰족구두’라고도 했다. 신여성의 대명사로 불리웠다. 전에는 모두가 맞춤구두였다. 구두방에 가서 발을 재고 본을 떠서 만든 수제품 일색이었다. 그러다가 지금처럼 기계로 대량생산하는 기성화가 일반화되어 제화점이 사양화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다. 구두가 국내에 도입된 지난 120여년 동안에 이밖에도 많은 변천을 거듭했다. 구두가 주요 뉴스가 됐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에서 난데없는 구두세례를 받았다. 지난 14일 비밀리에 깜짝방문, 기자회견을 갖던 중 이라크 기자가 구두 두 짝을 잇달아 던지는 봉변을 당한 것이다. 구두를 던진 사람은 알바그다디야 TV의 알자이디 기자다. 그는 “전쟁은 끝났다”는 부시의 말 끝에 “이라크인이 보내는 이별 키스다. 이 개야”라는 소리와 함께 그같은 행위를 한 것이다. 미국 대통령 경호팀이 덮쳤으나 이미 구두 두 짝을 다 던진 뒤다. “대통령이 고양이처럼 민첩한 순발력을 보였다”는 것은 미국 CNN의 촌평이다. 연단에서 고개를 숙여 구두공세를 피한 부시는 “내 신발 사이즈를 알길 원한다면 답은 10(인치)사이즈다”라는 농담으로 사태를 얼버무렸다. 1960년 후르시쵸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유엔총회에서 구두를 벗어 연단을 치면서 연설한 이후 처음 외신을 탄 구두 관련의 주요 뉴스다. /임양은 주필

판사의 인성

판사의 인성평가가 거론되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대법원행정처는 이를 위한 ‘법관 임용시 인성평가 방안’에 대한 연구과제 공모에 나섰다. 즉 판사의 품격이 지녀야 할 인성 측정을 어떻게 객관화하는냐는 방법을 묻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판사를 희망하는 사법연수원 수료생 가운데 연수 점수가 높은 순서에 따라 임용해오고 있다. 인성은 도외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판사의 자질이 의심되는 판사들이 없지않아 종종 말썽이 되고 있다. 법정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보이기도 하고, 법을 왜곡해가며 편향된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회원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판사평가제’를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불공정한 재판으로 민원이 증가하고 있어 판사의 공정성과 자질을 점수로 매긴다’는 것이다. 재판은 물론 법으로 한다. 그러나 알아둘 게 있다. 재판은 법에 앞서 양심으로 한다. 채증의 법칙, 증거 유무능력, 법률해석 및 적용, 판결 등은 판사의 양심 작용이다. 인성은 곧 양심을 말한다. 판사의 양심이 삐뚤어졌으면 채증, 증거능력, 법률 적용 등을 얼마든지 삐뚤어지게 할 수가 있다. 그 같은 판결 이유는 찍어다 붙이기에 달렸다. 자유심증주의는 판사의 양심을 담보로 한다. 재판에 필요한 사실의 인증에 관한 증거의 가치 판단을 판사의 심증에 일임하는 주의가 자유심증주의다. 쉽게 말해서 판사가 맘 먹기에 달렸다. 이런 판사직을 양심이 잘못된 사람이 맡아 수행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다. 흔히 ‘판사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법원 주변에서 나오는 이유가 이에 있다. 그런데 사법연수원의 점수가 양심의 인성을 반영한 건 아니다. 점수가 판사의 자질을 나타내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같은 고민을 해결키 위해 추진되는 것이 ‘건전한 가치관과 올바른 품성’을 추구하는 판사의 인성평가제다. 대법원은 오는 2010년부터 판사 임용에 인성평가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 주관적인 인성을 객관화하기란 참 어렵긴 하다. 어렵긴 해도 연구를 거듭해 시행하는 것이 옳다. 이도 사법신뢰의 길이다. /임양은 주필

박지성로

‘박지성로’ 도로 명칭의 개명이 논의되고 있으나 안 된다는 생각을 갖는다. 수원시 영통구 망포동 1.3㎞ 구간의 박지성로가 개통된 것은 2005년 6월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에서 우리 대표팀이 4강에 오른 것은 불멸의 금자탑이다. 그리고 박지성 선수는 이에 수훈을 세운 국민적 축구 영웅이다. ‘박지성로’가 동탄신도시 건설로 그동안 막혀있던 3.4㎞ 길이의 화성쪽 도로가 개통되면서 개명 논의가 나왔다. 정부의 ‘도로명 주소 재정비계획’상 2개 이상의 시·군에 걸쳐있는 도로는 명칭을 통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래서 화성시가 들고나온 새 명칭이 ‘센트럴파크로’다. 더욱이 ‘도로명 주소 재정비계획’이 생존 인물의 이름을 딴 도로명은 공식 주소로 사용할 수 없다는 대목이 있어 문제가 된 모양이다. 그러나 그 같은 규정이 있기 전에 ‘박지성로’가 먼저 지정됐으면 소급되는 게 부당하다. 원천적으로 지역사회 도로 명칭에 중앙이 개입한다는 것은 재고가 요한다. 화성시에 간곡히 말하고자 한다. 박지성 선수를 수원출신으로만 여기지 않는 넓은 안목을 기대한다. 영어 발음인 ‘센트럴파크로’보다는 ‘박지성로’가 더 친근하고, 청소년에게 희망을 주는 상징성이 높다고 본다. 도로 구간이 화성시 쪽에 더 많다. 따라서 화성시의 의견이 존중돼야 함을 안다. 하지만 박지성 선수는 대한민국의 선수, 경기도의 선수다. 화성의 ‘박지성’이 아니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박지성로’는 본인이나 가족이 원해서 지정됐던 게 아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의 이름을 따 도로명을 붙였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는 취소하고 다른 이름을 붙인다고 한다. 인도상으로 할 일이 아니다. 경위가 어떻든 가혹하다. 경기도의 적극적인 중재가 요구된다. 당초 ‘박지성로’ 지정을 추진한 것은 경기도다. 전임 도지사 재임 때다. 하지만 경기도의 일을 두고 시임 도지사가 ‘나 몰라라’하는 차별은 있을 수 없다. 경기체육계, 특히 축구인들의 ‘박지성로’ 보존운동이 있을 때다. ‘박지성로’는 경기축구인들의 자긍심이다. 축구인의 자긍심과 지역사회를 위한 축구인들의 노력을 지켜보고자 한다. /임양은 주필

우리말로 두루미인 학(鶴)은 선학(仙鶴)·선금(仙禽)·노금(露禽)·태금(胎禽)·단정학(丹頂鶴) 등으로 불린다. 예로부터 학은 고고한 선비의 이상적인 성품을 상징해왔으며 장수를 상징하는 대표적 존재로 인식돼왔다. 그림이나 詩의 소재로 학을 즐겨 채택하였고 복식이나 여러 공예품에도 학을 많이 넣었다. 학문양은 삼국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러 성행한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사람들은 학을 기물에 새기면 장수·행복· 풍요의 운이 찾아든다고 믿어서, 장수를 송축하는 선물을 교환할 때엔 주로 학을 새겨 넣었다. 공예품에 나타나는 학은 시대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인다. 고려시대의 학은 날개를 마음껏 펼치고 다리를 수평으로 쭉 펼치고 있는 동적인 모습이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날개의 윗부분과 다리가 맵시 좋게 약간 구부러진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공예품에 새겨진 학은 구름 또는 소나무와 함께 표현되고 있다. 이들 유형의 공통점은 대부분 장생을 의미하는 구름과 소나무, 불로초 등과 짝을 맺고 있는 점이다. 특히 구름과 학을 조화시킨 운학문(雲鶴紋)은 통일신라시대의 공예품에서부터 등장, 그 역사가 오래됨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주로 상감청자에 학이 새겨졌다. 한쌍의 선학이 구름 사이에서 비무(飛舞)하는 모습, 두 마리의 학이 긴 목을 서로 휘감고 춤을 추는 모습 등 형태가 다양하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선 추상적인 운학문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 범위도 자기 그릇에서부터 문갑·함·필통·베겟모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그제 우리나라의 국조(國鳥)를 학으로 지정하자는 범국민운동 발대식이 전국 기초단체장 30여명으로 구성된 학송회와 국조선정범국민운동본부 공동 주최로 국회에서 열려 관심을 끌었다. 이들은 “매년 전 세계 학의 4분의 1이 우리나라를 찾는 만큼 학을 국조로 지정해 널리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대식에 앞서 지난 7월 299명의 국회의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110명 가운데 67명이 ‘학을 국조로 삼고 싶다’고 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까치를 사실상 국조로 알고 있는 터에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대심도 철도

‘대심도 철도’는 지하 40~50m 깊이에 철도를 건설하는 방식이다. 지하 40m 이하 깊이에 공사할 경우 관련법상 지상 토지 소유주에게 땅값의 0.2% 이하만 보상해주면 된다. 미국 워싱턴(79m), 러시아 모스크바(84m), 북한 평양(100~150m) 지하철 등이 대표적인 대심도 철도다. 경기도가 올해 초 경기 남부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광역교통망 확충 차원에서 지하 40~50m에 건설되는 대심도 고속철도 구상을 내놓았었다. 37.7㎞ 구간을 복선터널(중간역 2곳)로 공사할 경우 2조7천억원이 들며, 통행시간은 18.4분이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 구상은 안전성이나 경제성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더구나 서울 수서~동탄~평택(60.7㎞)을 KTX로 연결한다는 국토해양부의 복안과 충돌하면서 실현성이 희박해졌다. 하지만 대심도 철도가 전부 무리는 아니다. 깊은 땅속에 길을 뚫기 때문에 토지보상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기존 철도에 비해 건설비가 40% 가량 절감된다. 지하 공사여서 민원 발생이 적은 것도 장점이다. 기존 철도는 노선이 구불구불한 데다 속도까지 느리지만, 대심도 철도는 직선화하고 중간 절차를 최소화해 화성 동탄신도시에서 서울 삼성동까지 20분 안에 갈 수 있다. 특히 국토부가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네트워크 사업 구상’을 발표해 수도권 대심도 철도 건설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수도권 교통 정체를 급행철도로 연결하려는 이 사업을 위해 현재 국토부가 동탄~삼성동을 비롯해 서너 개 노선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국내 대규모 건설업체 10곳도 자체적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 참여 여부를 고려하고 있는 상태다. 부정적인 지적이 없진 않다. 하루 이용자가 7만명(편도요금 3천원) 선이면 사업 타당성이 있다고 보고 있지만, 동탄 1·2 신도시 인구가 50만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할 경우 7만명 이용이 가능할 지 의문이다. 동탄신도시엔 대심도 철도보다는 광역간선급행버스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일부에서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오늘날은 교통·운송에서 철도가 에너지·환경면으로 각광을 받는 게 세계적인 추세다. /임병호 논설위원

삼한사온

삼한사온(三寒四溫)은 겨울철이면 한반도와 중국의 동북부 지방에 나타나는 기후의 특성이다. 대체적으로 사흘은 춥다가 나흘은 따뜻해지는 것이다. 12월 들어 시작하여 이듬해 2월까지 이런 현상이 반복된다. 삼한사온의 주기적 기후 현상은 그 주된 원인이 시베리아 고기압에 있다. 시베리아 고기압이 발달하여 북풍이나 북서풍이 불어 추워졌다가 중국의 북부에서 저기압이 몰려오거나 하면 추위가 약해지는 것이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다. 발달된 시베리아 고기압이 북극의 영향을 받아 남동쪽으로 이동하면서 팽창하면 북서계절풍이 강해져 추위가 몰아친다. 이것이 ‘삼한’이다. 이러다가 남쪽으로 확장된 시베리아 고기압이 하부로부터의 가열 등 여러 작용에 의해 기온상승 및 습기 공급으로 원래의 고기압으로부터 분리, 이동성 고기압이 형성되면서 따뜻한 날씨가 계속된다. 즉 ‘사온’인 것이다. 삼한사온이 실종됐다. 삼한사온의 주기 현상이 불규칙화한 것은 작금의 일은 아니다. 1970년대 기상자료를 보면 당시에도 편차가 심했다. 즉 삼한사온 현상이 희석됐던 것이다. 그런데 이젠 삼한사온을 느껴보기가 어렵다. 아주 없어진 것이다. 지난 7일은 대설이었다. 오는 21일은 한 해 가운데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이다. 새해 1월5일은 소한, 20일은 대한으로 이어진다. ‘소한 추위는 꿔서라도 한다’라고 대한이 소한집에 갔다가 추워서 도망쳤다’는 말도 있다. 겨울 중 가장 추운 게 소한 추위다. 그리고는 새해 1월26일은 설날이다. 즉 지금쯤은 겨울추위가 한창 매서울 때다. 그런데 추워봤자 반짝 추위다. 삼한사온이 아니라 마냥 이상난동인 것이 이즈음의 겨울이다. 삼한사온의 중심을 이루는 시베리아 고기압이 북극 해빙의 온난화 영향을 받아 전 같은 구실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살기가 어려운 판에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가장 무서운 것이 겨울 추위다. 이런 면에서는 따뜻한 겨울이 좋을지 모르지만 걱정이 된다. 더운 여름엔 불볕더위가 쨍쨍 내리쬐고, 추운 겨울엔 고드름이 녹을 날 없이 칼바람 추위가 몰아쳐야 정상인 게 대자연의 이치다. 삼한사온의 실종은 자연현상의 붕괴인 것이다. /임양은 주필

한비자(韓非子)

한비자(韓非子)는 본명이 한자(韓子)로 중국 춘추시대 말기의 사람이다. 신상필벌주의의 형명(刑名)사상을 주창했다. 저서로 ‘한비자’ 20권 55편이 전한다. 다음은 ‘한비자’ 애신(愛臣)편에 나오는 내용의 일부다. ‘임금이 신하나 애첩이나 형제들을 위해 너무 사랑해주면 그들은 멋대로 굴게되어 임금의 자리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므로, 임금은 의당 친히 위권(威權)을 장악하여 인신의 전횡을 막아야 하느니, 신하를 사랑하는 것이 너무 친밀하면 반드시 임금의 지위를 위태롭게 하고 정비와 애첩에 등급이 없으면 반드시 적자가 위태롭게 되는 것이고, 임금의 형제들이 날뛰면 반드시 국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신의 녹이 아무리 많아도 성 안에 땅을 차지해서는 안 되며, 무장은 사졸들과 사적 관계를 맺어서도 안되고, 애첩이 아무리 귀해도 정비를 능멸케해선 안 되며, 임금의 형제들이 정치를 입에 담아서도 안되니, 이것이 명철한 임금의 도(道)이다’라고 말했다. ‘한비자’는 또 십과(十過)편에서 임금이 저지르기 쉬운 열가지 과오를 들어 역사적으로 고증했다. 여기서는 첫째 작은 충성에 현혹하고, 셋째 편벽된 것을 좋아하고, 여덟째 충신의 말을 듣지 않는 것 등 세가지가 있다는 것만을 소개하겠다. 다만 충신의 말을 듣지않은 사례로 제나라 환공이 관중이 간언한 대신 천거를 듣지않아 낭패를 본 고사를 들면서 이렇게 밝혔다. “그러므로 충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홀로 자기 뜻대로 행하면 곧 그 높던 명성도 없어지고 사람들 웃음거리의 시초가 된다”고 한비자는 말했다. 생각컨대 측근내각이 보신주의에 치우쳐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고 ‘대통령 형님’들이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애신편을 상고케하고, 충언이 통하지 않는 것은 ‘십과편’을 상고케한다 할 것이다. 조선왕조에서 임금의 형제는 물론이고 종친들의 정사 관여가 금기로 됐던 것은 임금의 형제 등이 설치면 국사가 어지러웠던 것을 아는 정치적 지혜였던 것이다. / 임양은 주필

지번(地番)

지번(地番)은 토지에 부여된 번호다. 번지라고도 한다. 한 번 부여된 지번은 변경될 수 없다. 법원 등기 등 공부상의 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공부상의 혼란은 실생활의 혼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도시는 형성과정이 기형적이다. 서구사회처럼 먼저 블록화된 토지 기반에 도시가 들어서지 못했다. 그 반대다. 인가가 먼저 들어선 뒤에 도시기반을 조성했다. 연유가 있다. 6·25 한국전쟁의 피난민 및 월남동포 그리고 정전 후 보릿고개 시절에 도시로 급격히 몰려든 이농민 등 도시인구 팽창이 그 원인이다. 도시의 블록화, 상하수도 같은 도시기반 시설을 갖추고 인가가 들어선 게 아니고 인가가 조성된 뒤에 도로 및 상하수도 시설 등을 하곤 했던 것이다. 국내에 서구형 블록화 도로는 안산시가 유일하다. 그러니까 급격한 유입인구의 도시팽창은 도시마다 변두리에 무허가 건물의 양산화를 가져왔다. 이것이 나중에 무허가 건물의 양성화에 이어 재건축 과정을 거치면서 현대적 도시형태로 변화됐다. 당시엔 도시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현행 도시계획법이 시행된 것은 1971년부터다. 이러므로 지번 갖고 집 찾기가 어려운 것이 우리의 주택가다. 가령 178번지 같으면 177번지 등 인근에 있어야 할 터인데도 엉뚱한 데 떨어져 있기가 예사다. 당초 지번을 잘못 매긴 이유도 있지만 도시형성의 결함이 겹친 탓이다. 이를 시정키 위해 거리명에 가옥 번호를 시행하고 있다. 골목마다 ○○길이란 길 이름이 있고 건물마다 번호가 부여됐다. 그런데 좀처럼 생활화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실효성도 문제가 없지 않다. 우편물 배달 등엔 길거리 이름에 건물 번호가 편리할 지 몰라도 건물이나 토지 등 재산 관리에는 등기부상의 지번만이 사용된다. 앞으로 지번 대신 길거리 이름과 건물 번호를 등기부에 사용한다 해도 문제점이 많다. 건물이 아닌 토지, 특히 거리가 조성 안 된 토지는 번호를 매길 수가 없다. 병용한다 해도 공부 정리가 산적할 뿐만이 아니라, 불편을 야기하는 혼선이 막심할 것이다. 한데, 지번은 같은 번지라도 면적이 넓어 재분할된 번지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123의 1에서 30까지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123의30’라고도 쓰고 ‘123-30’라고도 쓴다. 그런데 흔히 ‘123의 30번지’라고 하는 것은 틀렸다. 번지에서 재분할된 땅 표기는 호(號)라고 한다. 그러므로 ‘123번지의 30호’라고 하는 것이 옳다. /임양은 주필

크리스마스 실

크리스마스 실은 1904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우체국장인 아이날 호벨이 결핵 아동들을 돕기 위해 창안한 이래 100년 넘게 세계 각국의 결핵단체가 판매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1932년 캐나다 선교사인 셔우드 홀이 도입했고, 대한결핵협회가 1953년부터 크리스마스 실을 제작·판매해 왔다. 크리스마스 실 판매 수익금은 지난해 결핵협회 전체 예산 250억원 중 62억원(24.8%)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하지만 ‘인터넷 세대’의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수십 년째 달라진 것이 없는 제작과 판매 방식 때문에 갈수록 판매량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2003년 65억원이었던 모금액이 매년 5천만~1억원씩 감소하면서 지난해엔 62억2천만원으로 줄었다. 판매량에 한계를 느낀 결핵협회는 최근 3년간 매년 66억원을 유지해 왔던 모금 목표액을 올해는 아예 60억원으로 낮췄다. 크리스마스 실 판매량이 줄어드는 것은 무엇보다 학생층의 외면이 결정적이다. 결핵협회는 지금까지 크리스마스 실 판매량의 약 60%를 초·중·고교학생들에게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학생들은 우편으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대신 이메일을 이용한 ‘e카드’에 익숙한 세대다. 학생들은 “취지는 좋지만 예쁘지도 않고 쓸모도 없는 크리스마스 실을 사려는 아이들이 드물다. 우리 반에선 지각한 애들과 쓰레기 버리다 적발된 아이들이 반강제로 실을 산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한다. 결핵예방교육과 결핵퇴치기금 조성을 위해 연말에 판매되는 크리스마스 실이 이렇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것은 학교·관공서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방법을 답습하는 데도 이유가 있다. 크리스마스 실도 잘 만들면 많이 팔린다. 일례로 2004년 정한경 일러스트레이터가 디자인한 ‘세계 민속의상’은 모자랄 정도로 인기였는데 크리스마스 실은 학생들의 정서와 동떨어져 있다. 더구나 벌 받는 학생들에게 강매하는 건 크리스마스 실의 참뜻을 모욕하는 일이다. 어른이 된 옛날의 학생들이 크리스마스 실을 구입하기도 어렵다. 직접 그린 크리스마스 카드를 넣은 봉투에 크리스마스 실을 붙이던 옛날이 그립다. /임병호 논설위원

‘칠면조 정치인’

미국 CNN방송이 추수감사절을 맞아 ‘칠면조 정치인’ 10인을 발표했다. 칠면조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추수감사절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바보나 실패작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칠면조 정치인 10인 중 10위에는 올해 공화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가 조기 탈락한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이 뽑혔다. 줄리아니 전 시장은 경선 초반 열세를 면치 못하는 가운데 플로리다에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는 전략을 썼으나 정작 플로리다에서도 득표율이 15%에 불과했다. 9위에는 하원의원 선거운동 자금으로 선거운동본부의 직원인 내연녀에게 입막음을 위해 돈을 건넨 것으로 드러난 팀 마호니 의원이 뽑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도 8위에 이름이 올랐다. 오바마는 올해 6월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주지사 모임에서 연설하면서 연단에 미국 대통령 문장(紋章)과 흡사한 로고를 붙여 김칫국을 너무 일찍 마셨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었다. 7위는 엘리자베스 돌 상원의원이 뽑혔다. 돌 의원은 선거전에서 경쟁상대이며 주일학교 선생인 민주당의 케이 헤이건 후보가 무신론자 단체로부터 선거자금을 받고 있다는 비난광고를 TV에 내보냈다. 선거는 돌 의원의 패배로 끝났다. 최장수 상원의원인 알래스카의 테드 스티븐스(공화) 의원은 독직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서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재선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5위는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에 막대한 돈을 흥청망청 쓴 기업인들이 뽑혔다. 3대 자동차업체들의 최고경영자들과 보험사 AIG의 경영진들이다. 4위는 험악한 내용의 설교로 오바마 후보로부터 ‘결별’ 선언을 받은 제레미아라이트 목사가 뽑혔다.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도 3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금융위기의 와중에 “미국 경제의 기초는 튼튼하다”는 뜬금 없는 발언으로 지지율을 갉아먹었다. 2위는 혼외정사 사실이 드러난 존 에드워즈 전 민주당 부통령 후보가 차지했다. 1위는 ‘월가의 저승사자’로 부패 추방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검사 출신인 엘리엇 스피처 전 뉴욕주지사다. 그는 고급 콜걸과의 성매매 파문으로 주지사직에 불명예 퇴진했다. 그럴 리도 없겠지만 한국 방송국에서도 ‘칠면조 정치인’을 뽑는다면 너무 많아 선정에 어려울 게 틀림 없다. /임병호 논설위원

吳起와 武后

사마천(司馬遷)의 ‘사기열전’(史記列傳) 오기(吳起)편에 나오는 고사다. 오기는 위(衛)나라 사람이다. 병법에 능했다. 그가 서하(西河)의 지방장관으로 있을 때다. 서하는 지금 중국 협서성 황하의 서쪽 일원이다. 위나라 왕 무후(BC 386~371재위)와 함께 서하에 배를 띄우고 일행이 물결따라 가던 중 무후가 오기를 돌아보며 말했다. “훌륭하다 아, 험준한 이 산하의 요새여! 이것이야말로 위나라의 보배로다”하며 감탄을 연발했다. 오기는 대답했다. “나라의 보배는 임금님의 덕행이지 산하의 험고함이 아닙니다”라고 왕의 감탄을 부정했다. 무후는 안색에 노여움을 띠었다. 그러나 오기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옛날에 삼묘씨(현재의 호남·호북·강서성에 할거했던 민족)의 나라는 동정호가 왼쪽에 있고 팽려호가 오른쪽에 있는 험고한 땅이었으나 덕과 의를 닦지 못하여 우 임금이 이를 멸망시켰습니다. 하왕조 걸왕의 거처는 황하와 계수가 왼쪽에 있고 태산 화산이 오른쪽에 있고 이궐(오늘날 낙양 남쪽의 단애)이 남쪽에 있고 양장산의 험고함이 그 북쪽에 있었으나 그의 정치가 어질지 못하여 은왕조의 탕왕에게 방벌되었습니다. 또 은의 주왕은 맹문산이 왼쪽에 있고 태행산이 오른쪽에 있고 대하(황하)가 그 남쪽을 지나고 있었으나 정치를 하는데 덕이 없어 주왕조의 무왕이 그를 죽였습니다” 오기는 한참동안 이렇게 말하고는 임금에게 다음과 같은 결론을 지었다. “말씀드린 이런 사실을 근거로하여 관찰해보면 나라의 보배는 인간의 덕에 있는 것이지, 산하가 험고한 데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임금께서 덕을 닦지 아니하면 이 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적이 될 것입니다”라는 말로 간언을 마쳤다. 무후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오기의 손을 잡으며 “참으로 옳은 말이로다”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400여년 전의 고사다. 하지만 세상사 이치는 지금도 같다. 오기와 무후 중 누가 더 현인(賢人)일까, 임금의 말을 거역한 간언의 용기는 실로 가상하다. 하지만 자신을 거역한 충언을 받아들인 무후는 역시 임금답다. /임양은 주필

실언

실언(失言)을 실구(失口)라고도 한다. 입방정이란 뜻이다. 실언은 누구든지 한다. 일상의 생활에서 흔히 경험한다. 그러나 실언이 잦으면 사람이 헤퍼보인다. 여느 사람도 아닌 공직자의 실언은 더욱 그렇다. 대통령쯤 되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실언에도 종류가 있다. 홍소형이 있는가 하면 독설형이 있고, 모사형도 있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때 실언을 잘 하기로 소문 났었다. 그러나 으레 실언에 뒤따르는 구설수는 없었다. 악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한번 웃고 넘어가는 홍소형의 실언이었던 것이다. 레이건은 2차대전후 미국 최고의 대통령으로 국민의 추앙을 받고 있다. 부시 미국 대통령 또한 실언이 많은 사람이다. 실언도 보통이 아닌 막말의 독설형이다. 부시가 “대통령으로서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한 데 대해 후회한다”고 한 것은 미국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미국 대선이 끝나고난 며칠후다. 그 예로 9·11테러직후 빈 라덴을 가리켜 “죽여서든 살려서든 잡아오라”고 하고, 이라크에서 미군의 희생이 늘자 이라크 반군더러 “한판 붙자”고 한 것 등을 꼽았다. 부인 로라로부터 “대통령이면 입조심하라”는 충고를 들었다는 비화도 털어놨다. 우리 대통령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실언이 많기로 평판났었다.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등 숱한 실언을 쏟아냈다. 그의 실언은 독설적이면서 다분히 계산이 깔린 점에서 모사형이기도 하다. 그냥 내뱉는 막말이 아닌 점이 특이했다. 요즘 전직 대통령들의 말들이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형님되는 노건평씨 비리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북관계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박근혜 의원을 두고 이런 저런 말이 있었다. 아직은 실언이랄 것 까지는 없지만 말들이 잦다보면 실언이 나올 수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실언이 없지않다. 최근엔 “지금 주식을 사면 내년에 부자가 된다”고 말해 가벼운 구설수가 있었다. 대통령이면 많은 말을 안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입이다. 나중에 후회하게 될 말은 삼갈 줄 아는 지혜와 경륜이 대통령의 직분이 요구하는 자질이 아닌가 싶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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