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박한 땅에서도 견디고 논둑길과 산길에서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혀도 끗끗하게 생명력을 유지하며 당신은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가니 그 정신을 배우겠다. 어둠이 숲 뒤로 밀려나면 어린아이, 어른들, 연인들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들리면서 당신은 새벽부터 짓밟힘으로 고통을 당하지만 하늘을 향하여 다시 일어선다. 당신의 끈질긴 삶의 자세를 바라보면 나약한 내 마음도 어느새 세상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어둠을 환한 빛으로 변화시키는 표상(表象)으로 각인(刻印)이 된다. 배수자 문학박사, 제4회 나혜석 문학상 대상 수상. ‘마음의 향기’, ‘얼음새 꽃 소리’, ‘사색의 오솔길’ 등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죽어서도 잊지 못할 잊을 수 없는 잊어서도 안될 서리서리 피 맺힌 유월의 상처 온 육신이 찢기워 신음이 저승 문턱을 넘나들고 피가 내를 이루던 내 혈육들의 상처가 묻혀져간 유월 우리는 그 위에 배 터지는 풍요로 평화라는 명분으로 잔을 들어 축배를 주고 받았다 상흔조차 남지 않은 그 날의 상처 되새기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아파오는 유월의 상처 땅속에 묻기 전 우리 가슴에 먼저 묻어야 했을 상처다. 김도희 황해도 사리원 출생. 한국문인협회·경기여류문학회·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시인마을> 동인.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봄 맞을 준비에 쓸데없이 시간을 다 보내어 버리고 돌아보니 봄은 벌써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는 봄을 퍼담아서 온통 노랑물에 취한 *봄마중꽃들이 미련퉁이 밤퉁이 비웃기라도 하듯 깔깔대며 만취한 봄을 송별하고 있었다 서둘지 않아도 될 텐데 난 또 주저앉아 얼마나 더 헛되이 생의 노란 봄을 기다리게 될는지 모른다 * 봄마중꽃: 이른 봄 산기슭에 피는 작고 노란 야생화 안서경 1986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유독 그곳만 환한 볕마루> 외. 국제PEN한국본부·양평문인협회·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개탄과 물로 달리는 증기 기관차 치익 칙 푸푸 기운 빠진 소리 60년대 경부선 중심지 추풍력 역에서 쉬고 있을 때 물 지게 진 할아버지 물 탱크에 물 가득 채워주면 다시 기운을 얻어 기운차게 달리던 기차 생계를 위한 직업이지만 힘든 기차를 움직이게 만든 위대한 할아버지 추풍령 역의 역사로 남아 지금은 물 저장고 중심으로 공원이 된 곳 물 지게 진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달리는 기차에 손을 흔든다 진숙자 충북 영동 추풍령 출생. <수원문학>으로 등단. 가톨릭 파티마 세계 사도직 상임위원 역임. <시인마을> 동인.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년시절 십리 길 초등학교 다녀오는 친구 난 빠르게 우리 집 가게 왕사탕 한 알 배고픈 친구 주먹에 쥐어주네 친구가 집으로 가는 길 다람쥐 볼되어 수인선 철로 맛있게 건너가 새어머니와 산다는 집 앞 덜 녹은 사탕 아까워 아드득 깨물지 못해 철로길 서성대다 다 녹으면 들어간대 사회에서 다시 만난 친구 사는 날 달달하길 바랐는데 팔 다리 움직임 달라지는 몹쓸 병에 일찌감치 별빛 열차 타고 돌아가네 한 떨기 사탕 꽃 조금 빠르거나 조금 늦게 녹여내는 일 윤연옥 안산 출생. 인천문학상‚ 인천문화상‚ 에세이포레 문학상 수상.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문협‚ 인천문협‚ 인사동시인‚ 시인마을 회원.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살며시 얼음 풀린 길 가운데 작은 웅덩이에 머물러 열여섯 소녀처럼 꽃앙울 여드름 다닥다닥 단 채 들떠 있는 벗꽃가지 비춰 주는 거울이었다가 목 마른 까치에게 물 한 모금 나눠 주겠습니다 조그만 연못가 가느다란 버드나뭇가지 끝에서 물속 키작은 올챙이와 숨바꼭질 하다가 호젓한 호숫물에 물무늬 만들며 기웃거리는 봄 바람 손 잡고 새끼오리들 고무 줄 끌기 놀이 함께하겠습니다 송사리 놀고 있는 맑은 냇물 길 따라 마음 깊은 강물 어깨에 기대어 지난 이야기 두런 두런 나누며 조용조용 큰 바다로 흘러갈 것입니다 황영이 충남 당진 출생. <국보문학>으로 등단, 경기시인협회 회원 <시인마을> 동인
파란 대문 열고 들어서면 무너져 내린 흙벽 나무 청 검은 고양이 한 마리 들락날락하는 시골집 떨어져 나갈 듯 닳고 낡아 간신히 몸을 기대고 서 있는 부엌문 부뚜막에 나란히 걸린 가마솥 솥뚜껑에 앉은 뿌연 먼지 녹슨 채 세월의 무게 견디고 있다 눈물 콧물 흘리며 불 지피던 아궁이 메케한 연기 들이마시며 밥 짓던 유년의 기억 속에 노랗게 익어간 고구마, 은행, 알밤 내 허기를 채워주던 특별한 간식이 었지 수십 년 방치된 화로 형체 잃어가고 무성하게 자란 칡넝쿨 장독대 휘감 고 있다 이희강 충남 부여 출생 2018년 3월 문예비전 등단. 한국문인협회·경기시인협회 회원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4년 전 모란꽃 툭 떨어질 무렵 아무 말씀 없이 홀연히 떠나신 어머니 올봄 모란꽃 툭 떨어질 때 내 가슴에 다시 오셨네 매년 모란꽃 피고 질 때마다 어김없이 내 가슴에 오셨다 가시는 어머니 올봄에는 아예 내 가슴 외딴 방에 자리 잡으시고 편히 누우셨다네 주광일 시집 『저녁노을 속의 종소리』로 작품 활동. <Fides(신의)> 발행인. 가장 문학적인 검사상(한국문인협회) 수상.
양지뜸 안산 넘어 그 길목에 올라서면 잠귀 밝은 산수유 나뭇가지 눈 이불 털고 톱날 우는 기척에 대추나무 물 올리네 마른 나뭇가지처럼 마음 툭툭 꺾일 때 혼자가 아닌 우리로 피어나고 싶은 일상 한숨 섞인 봄바람 코로나는 안개 속인데 불러내지 않아도 깨우지 않아도 터질 듯 부푼 꽃망울의 외침이 순간순간 지나온 날 꽃밭처럼 안겨오네 조병하 충남 청양 출생. <국보문학>으로 등단. <시인마을>동인.
아기가 엄마 얼굴을 말끄러미 바라봅니다 엄마 눈동자에 비치는 아기 얼굴 아기 눈동자에 비치는 엄마 얼굴 엄마는 아기의 거울입니다. 임하정 수원 출생. 1996년 <아동문예>로 등단. 한국문인협회·국제PEN한국본부·한국경기시인협회·한국아동문학가협회 회원. 숲속학교 ‘성원’ 원장.
아침 이슬 맺혀있는 그대를 정녕 꽃이라 불러도 될까요 시간이 지나면 그대 잊힐 것만 같아서 눈 가득 담아 마음속 깊게 넣어 둘게요 그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아침을 여는 상쾌함이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시들지 않고 남을 수만 있다면 내 삶 그대에게 바치리다 그대여, 그대로 머물 수는 없을까요 박광아 <문학신문>으로 등단. 시집 <엄마가 그랬듯이>. <시인마을> 동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유년시절의 고향동무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지리산 형제봉이 또렷이 보이는 강 언덕에 앉아 눈시울에 방울방울 맺힌 추억을 양지바른 언덕에 두고 왔더니 겨울을 잘 견딘 청노루귀가 보송보송 그리움의 솜털 꽃대를 올려 자주빛 봄 울음을 운다네 자주빛 봄 울음을 운다네 정순영 하동 출생. 1973~1974년 시전문지 <풀과 별> 추천완료 등단. 시집 <시는 꽃인가> <사랑> 외 7권. 부산문학상, 봉생문화상 문학부문, 한국시학상, 현대문학 100주년기념문학상, 세종문화예술대상 외 다수 수상. 부산시인협회 회장, 자유문인협회 회장, 국제pen한국본부 부이사장, 동명대학교 총장, 세종대학교 석좌교수 역임. 일모 정한모시인기념사업회 고문. 경기시인협회 부이사장. <4인시>동인. <셋>동인.
겨울의 먼 길 걸어 소갈증으로 목마른 대지 위에 오랜 기다림의 임이 온 듯 반가운 봄비가 촉촉이 내린다 가물가물한 잠속에 자박자박 소곤소곤 귓속 간지러움 굳게 닫은 창문을 연다 삭정이처럼 퇴색한 기억들 동면으로 눈을 가린 안대를 열어주고 오그라든 어깨를 풀어주어 노화된 세포를 자극한다 공복에 스며드는 허기처럼 메마른 가슴을 적시고 유리창에 부딪치는 빗방울 알 수 없는 한줄기 낙서 창가를 맴돈다. 양길순 <한국문인>으로 등단. 시집 <자운영꽃 그리움>. 한국경 기시인협회 회원. <시인마을> 동인. 코리아 파이널 글로벌 미술대전 외 다수 수상.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물가 하나 없을 것 같은 가지에 봄물 오르는 소리 들린다 까칠한 바람 안고 하얀 옥양목 치마 곱게 말아 쥐더니 햇살 굴리며 미소 짓고 있다 순백의 미소 간직하려고 시린 밤 내내 앓던 속앓이 치마 한 자락씩 벗는 일 더욱 하얗게 피어 오르고 잎보다 먼저 바람 달래며 사위어 가는 웃음 오늘도 양지 바른 곳에서 햇볕 고르며 순하다 순한 눈빛 더욱 깊이 물든다. 심평자 안산 반월 출생. [한국시학]으로 등단. 수원문학아카데미 [시인마을]동인
누가 저리 아픈 걸까, 멈출 줄 모르는 저 붉은 선홍빛! 흘러도 나는 몰라라, 초록 곁에 꺼내놓은 저 붉은 심장! 김순자 한국시학>으로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시인마을> 동인.
구석진 자리에서 적막하게 쪼글쪼글 늙어간 노파 오랜 기다림 끝에 구석에서 나온 날 관절 아픈 무릎 세우고 은발 뿌리 뻗어 접시물 흠뻑 마시고 젊은 여인처럼 부풀은 몸 어느 새 실한 줄기에 노란 꽃술 품은 하얀꽃 피워낸다 기다리면 언젠가 버스는 온다. 나는 100년 가까이 기다렸다. *카르멘 에레나를 소환한다 감자알처럼 쪼글해진 채 무릎에 동전 덕지덕지 붙이고 잔뜩 내렸던 고개 들어 회색빛을 초록빛으로 교환하고 있는 가 없는 하늘 저 쪽 올려다본다 황영이 충남 당진 출생. <국보문학>으로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시인마을> 동인.
진열장에 갇혀 잠을 자는 솔잎 달달하게 술 담가 유리병에 오랫동안 가두었다 코로나에 갇혀있는 주름진 웃음 누렇게 변해버린 푸른 잎처럼 저렇게 내 안에 갇혀 말갛게 우러난 술 절임 같은 당신 혀끝으로 느껴오는 묘한 맛 향기로 꽉 채운 솔 香의 자존심일까 후끈 달아 오른 벽난로에 말랑말랑 익어가는 군고구마 톡 쏘는 동치미 마주 앉아 긴 겨울밤 옛 생각을 꺼내 놓는다. 조병하 충남 청양 출생. 국보문학으로 등단. 시인마을 동인.
시간이 죽는 것처럼 육신과 정신 줄 놓으면 이슬처럼 사라진다는 것 왜 몰랐을까 침묵 속에 불타는 당신의 눈길 하나가 영혼을 적시는 눈물뿐인데 사랑이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삶이 버거워 살았지만 한 줌밖에 안 되는 지푸라기 같은 것, 끝까지 참는 것이 겸손이란 것 왜 몰랐을까 당신의 그늘 한 마리 새처럼 여리고 가슴에 스미는 침묵은 당신의 따뜻한 체온으로 멍울진 가슴을 달래 주네요 장경옥 수원 출생. <국보문학> 으로 등단. 시집 <파꽃>. 제2회 <시인마을문학상> 수상.
겨울이 지나는 길목에서 살을 에이는 바람 간 데 없고 발길 머무는 시냇가 얼음 녹여주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잠에서 깨어난 보리밭 쉼 없이 기지개를 펴고 숨겨 왔던 파릇한 바람소리 햇살로 물이 든다 부지런한 몸짓으로 봄맞이하는 설레임, 언덕 저 편 아지랑이 희망 가득 새순으로 돋아난다. 정의숙 화성 출생. 한국시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인마을 동인. 한국경기시인협회 사무차장.
그리움 담은 엽서 마음 닿는 곳마다 걸어 놓았다 무채색 들판 파릇하게 설렘으로 날마다 조금씩 덧칠을 해놓으면 마침내 연분홍 화관 쓰고 아침이슬 사뿐히 밟으며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길 따라 오시는 봄의 아씨여. 추명순 충북 제천 출생. <시인마을>로 작품 활동. 시 낭송가, 시 낭송 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