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6세기 인노시마섬 무라카미 해적... 임진왜란때 고하야선으로 척후선 담당 항로안내·어업활동 등 지역경제 견인 日 유산 인정... 매년 수군축제 개최... 불꽃놀이·해상경주 등 콘텐츠 선보여 한해 6만~7만명 발길… 관광객 ‘호응'
“노는 이렇게 젓고, 앞·뒤사람 호흡이 중요 하고, 북에 맟춰 노를 힘껏 저어야 빠르다”. 지난 19일 오후 일본 히로시마현에서 남동부쪽으로 100여㎞ 떨어진 오노미치 시(市) 인노시마 섬 오하마 해수욕장. 다소 더운 날씨 속에 해안가 인근에서 오노미치시립 인북소학교(초등학교) 6학년 남여 학생 40여명이 강사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며 동작과 배 설명 등을 듣고 있었다. 20여분 동안 진행된 강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학생들은 체육복으로 갈아 입고 ‘코하야’(小早)라고 불리는 소형 목조선이 있는 해안가로 이동했다.
앞서 오노미치시 인노시마 섬 지소 측은 양쪽 외부갑판에 동그라미 안에 ‘상(上)’자가 선명하게 새겨진 코하야선 3척을 기증기를 동원해 해변으로 옮겨 학생들의 탑승을 도왔다. 학생들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북과 선장 역할을 하는 어른 2명과 함께 남여 14명씩 모두 16명이 한 팀으로 왕복 1㎞를 반환하는 경주를 펼쳤다. 노 하나가 자신의 키보다 1.5배 정도 더 큰데도 학생들은 북소리에 맞춰 열심히 노를 저으며 물살을 갈랐다. 경주에 참여한 코우키군(12)은 “노가 너무 크고 물결을 거슬러 나아가는데 힘이 많이 들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또 참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수미코 와타나베 교장은 “인노시마 섬 조상이었던 무라카미(村上) 해적선 체험활동에 참여했다”면서 “소학교 6학년 교과과정에 학생들이 무라카미 해적선 및 해적 알기가 편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학생들의 코하야선 체험은 인구 2만여명으로 면적이 안산시 대부도와 비슷한 인노시마 섬과 시민, 교육계 등이 3위일체가 돼 열렸다. 그들의 조상인 해적선 및 역사 등을 초등학교 때부터 교과서로 배우고 체험까지 하면서 역사를 알고 전통을 계승하며 지역사랑을 단단히 하도록 하는 역사의 끈이 되는 현장이 됐다.
■ 인노시마섬, 일본 ‘최대’ 해적 브랜드로 홍보
학생들이 이날 승선해 경주를 펼쳤던 고하야선은 무라카미 해적의 소형 목조선으로 재현해 놓은 것이다. 길이 11m에 높이 0.75m, 너비 1.58m 등에 좌우 노 7개와 북과 키 등을 갖춘 전령선이었다. 대략 14~16세기 활약했다. 크기가 작고 속도가 빨라 임진왜란 때도 참여해 척후선 역할을 담당했다.
인노시마섬은 해당 지명을 딴 인노시마 무라카미 해적의 총본거지다. 구루시마 및 노시마 무라카미 등과 함께 무라카미성을 통솔한 3개 가문으로 구성돼 일본 최대 해적으로 평가 받는다. 동그라미 안에 적힌 ‘상(上)’자를 깃발로 쓰며 일본 세토 내해(혼슈 서부~규슈·시코쿠에 에워싸인 내해) 게이요제도 제해권을 장악하고 250여년 동안 이 지역 패권자가 됐다. 이들은 158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해적금지령을 내린 이후 모리 등 특정 가문에 편입해 수군체제로 전환됐다. 이 중 구루시마 무라카미 해적은 임진왜란에도 참여해 깊은 패배를 맛봤다.
인노시마섬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인노시마 무라카미 해적이 일본 최대 해적임을 브랜드로 국내외에 알리며 섬을 해적 성지로 각인시켰다. 무라카미 해적 당시 초소였던 아오키 등 초소 흔적 7곳을 도보 답사길로 꼼꼼하게 조성했다. 무라카미 해적을 수군(水軍)으로 부르며 1983년 수군성(城)을 재현해 박물관으로 건립한 뒤 2016년 무라카미 해적 고문서와 갑옷, 시조 초상 등 3점을 일본 유산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 거북선과 겨뤄 전멸한 안택선을 12분의 1(실제 26m) 크기 모형으로 전시했다. 수군성 인근 무라카미 해적 가문과 가신 등이 묻힌 묘지도 정비해 방문객의 순례코스로 만들었다.
오노미치시 인노시마섬 지소 고시마 준지 씨는 “주민들은 우리 섬에서 활약했던 무라카미 해적을 존경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당시 곳곳에 흩어진 흔적 등을 찾아 복원하거나 재현해 널리 알리는 건 후손의 의무다. 일본 최대 해적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홍보하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 480년 된 고하야 해적선, 수군축제 핵심 콘텐츠
무라카미 해적 흔적 외에 변변한 관광상품이 없는 인노시마섬은 해적을 기억하는 축제를 1980년부터 해마다 개최해 오고 있다.
‘무라카미 수군축제’다. 최근 3년 동안은 코로나19로 중단된 가운데 내년 축제계획안을 벌써 확정해 놓을 정도로 인노시마섬이 이 축제에 쏟는 정성은 대단하다.
한 해 동안 수군축제로 콘텐츠를 달리해 세번 개최한다. 6월에는 인노시마섬 내 무라카미 후손들을 초청해 무사 복장을 하고 해적 댄스 파티를 벌이는데 축제 시작 전 무라카미 해적 묘지 앞에서 축제를 신고한다.
8월 하순에는 두 차례에 걸쳐 불꽃놀이와 해적선인 고하야선을 등장시키는 축제를 연다. 수군축제 최대 하이라이트는 고하야선을 이용해 약 1㎞ 해상을 돌아 순위를 매기는 경주다. 당시 해적선이 해적행위를 수행할 때 빠른 속도를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며 약탈했던 것을 연상시키듯 스피드를 겨룬다.
인노시마섬은 이를 위해 14~16세기 해적선으로 활동했던 전통 선박인 고하야선을 재현했다. 고지마 씨는 “코로나19 이전에는 약 40개팀이 성인팀과 청소년팀 등으로 참여해 수군 축제를 이끌었다”며 “치열한 경주에 관광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힐링한다”고 설명했다. 한해 무라카미 해적의 수군 축제를 찾는 관광객은 6만~7만명 정도다. 인노시마섬 인구의 3~ 4배 규모다. 단지 해적을 매개로 한 수군 축제로 어업 외에는 뾰족한 수입원이 없는 인노시마섬의 전체 지역경제를 이끌며 파생효과를 낳고 있다.
고시마 씨는 “타 지역도 해적활동이 있다. 하지만 인노시마 무라카미 해적은 게이요 제도 내 항로 안내와 통행세 부과, 어업활동 등으로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등 타 해적과는 차별성이 분명하다. 인노시마섬은 이를 존중하며 일본 최대 해적을 브랜드로 섬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고 말했다.
인노시마섬 지소 고시마 준지 대담 “역사 계승 수군축제관광활성화 이끌 것”
“우리도 고민입니다”
일본 히로시마현 오노미치시 인노시마 섬 지소에 근무 중인 코시마 준지 씨는 본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고대(전통) 선박을 활용한 관광상품화 활성화 방안을 얘기해 달라”는 질문에 이처럼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그는 인노시마섬 지소에서 관광 등 섬경제 활성화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고시마 씨는 “코로나19로 3년 동안 수군축제를 열지 못했다. 찾는 이들이 없어 지역경제가 타격을 받았다”면서 “2만여명이 거주하는 작은 어촌마을이어서 마땅한 관광품이 없다 보니 섬 전체가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됐다”고 말했다. 이어 “해마다 6~8월 진행되던 수군축제의 핵심 프로그램인 고대 선박 무라카미(村上) 해적선을 재현해 이를 바탕으로 해상경주를 펼치는데 이를 진행할 수 없어 외부 관괭객이 찾아오지 않아 그렇다”면서 “ 내년이 30회째인데 지금부터 안을 확정해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노시마섬에는 무라카미 성(姓) 보유자가 전체 인구 40% 고 본청인 오노미치시 지역에는 최고 30%를 차지해 이들 가운데 무라카미 해적 후손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현재 정체된 축제 분위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관광협회에 건의 중이거나 실시 중인 프로그램은 ‘무라카미 해적에 대한 기억’ 전시회로 해적흔적 추가 발굴을 통해 체험활동 프로그램도 강화하고 있다”면서 “인노시마섬만이 보유한 일본 최대 해적인 무라카미 해적 브랜드를 인터넷 등을 통해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노시마섬 무라카미 해적의 일부 유물은 일본 유산으로 지정됐을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며 “고대 선박인 고하야선 체험에 좀 더 집중해 이를 매개체로 어린이들까지 역사와 전통 등을 잇게 하는 수군 축제로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인노시마섬=김요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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