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6·25전쟁 발발, 식량난 ‘극심’...UN 원조 받으며 다양한 식료품 공급 경인기업 급성장, 국가 재건 힘 보태... 빙그레·인천탁주 등 기술·맛 경쟁력↑
광복 80주년 특별 기획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7. 밥상에서 시작된 ‘식품산업’
기쁨도 배고픔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광복 직후 국민에게 가장 절실했던 건 하루 한 끼의 평범한 식사였다. 1945년 200원이던 백미 한 말 값은 1948년 1천900원까지 오르며 식량난이 심화됐다. 곧바로 한국전쟁까지 겹치며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자체적인 식량 생산이 부족했던 시절, UN의 민간 구호 원조를 통해 1954년까지 총 4억5천만 달러 규모의 물자가 국내로 유입됐다. 밀·옥수수·쌀·소금·메밀·캐러멜 등 다양한 식료품이 공급되며 국민의 밥상을 지탱했다. 이때 미국의 PL480(농산물 원조 프로그램)도 시행되면서 식량난 극복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에 머무는 민족이 아니었다. 국민은 쌀 대신 보리와 밀가루로 밥상을 차리고, 이웃과 끼니를 나누며 일상을 지켰다. 그렇게 지은 밥 한 끼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서로를 살리고 국가를 일으키는 출발점이 됐다. 한국 식품산업의 뿌리도 그 치열하면서도 희망 어린 밥상 위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변화 중심엔 경기도와 인천이 있었다. 식품을 모으고 만들고 실어 나르는 기능이 집중, 밥상에서 시작된 산업들이 경인지역을 주축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경기도에서는 1967년 ‘빙그레’가 설립되며 아이스크림과 유제품을 넘어 국민 간식 문화의 일부가 된 대표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투게더와 바나나맛우유를 시작으로 비비빅, 메로나 등 시대를 대표하는 제품을 연달아 선보이며 국민 일상에 깊이 스며들었다. 현재 빙그레는 아시아를 넘어 베트남, 호주, 유럽 등으로 판매 지역을 다변화하고 있다.
1969년 설립된 오뚜기 역시 1973년 안양 호계리에 공장을 세우며 마요네즈, 케첩, 카레 등 국산 조미식품 대중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식탁의 변화를 이끌었다.
인천에서는 1938년 설립된 인천탁주(전 대화주조)가 해방 직후 밀주 단속과 쌀 배급제 등 시대의 굴곡을 넘어서며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경인지역은 단순한 생산 거점을 넘어, 변화하는 소비자 수요에 발맞춰 식문화의 진화를 주도해 왔다. 조미료와 제빵에서 출발한 기술은 간편식, 기능식품, 프리미엄 주류 등으로 확장되며 고도화됐고, ‘K-푸드’라는 이름 아래 세계 무대에서도 주목받는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국내 식품시장 규모는 368조원에 달한다. 전자·석유화학과 더불어 국가 핵심 산업으로 성장한 수준이다.
이러한 식품산업 저변에는 시대의 흐름에 유연하게 대응해 온 경인지역 기업들의 경험과 혁신이 있었다. 이들은 오늘도 기술과 맛의 경계를 넓히며 세계 시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빙그레 관계자는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국민의 일상에서 함께 성장해 왔다”며 “광복 80주년을 맞아, 일상을 따뜻하게 채우는 먹거리로 앞으로도 더 넓은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식문화 진화 주도한 경기·인천, 세계 입맛 사로잡은 ‘성장 엔진’
■ 젖소가 많은 경기도…남양주에서 시작된 빙그레의 역사
일제강점기를 지나 맞이한 광복, 한국전쟁을 딛고 폐허를 탈바꿈한 민족, 우리나라 국민에게 식품은 절실한 힘이자 내일을 꿈꾸게 하는 희망이었다. 치열했던 삶의 터전에서 피어난 식품산업은 경인지역에서 굳건한 뿌리를 내렸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국민의 밥상과 함께 써 내려왔다.
지난 1967년 9월, 빙그레의 전신인 대일양행이 남양주군(현 남양주시)에 설립됐다. 창업주 홍순지 씨는 유제품 수요가 꾸준하다는 점에 주목해 1971년 대일양행을 대일유업으로 변경하며 본격적으로 유제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부족한 기술력을 보완하기 위해 1972년 미국 퍼모스트 맥킨사와 기술 제휴를 맺고, 국내에 아이스크림과 우유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아이스크림을 납품하던 대일유업은 젖소가 많았던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도농리(현 남양주시 다산동)를 눈여겨봤고, 1973년 6월 남양주 도농동에 제1공장을 준공했다.
그러나 공장 건설 도중 자금난에 부딪히며 대일유업은 한국화약그룹(현 한화)에 인수됐다. 이후 소비재 계열사로 편입된 대일유업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제품 연구에 더욱 매진했다.
■ 위기를 기회로…빙그레 투게더·바나나맛우유의 탄생
당시 빙과류 시장은 설탕물을 얼린 제품이 주류였지만, 대일유업은 유제품을 넣은 아이스크림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택했다. 이때 탄생한 ‘투게더’와 단지 모양 용기로 선보인 ‘바나나맛 우유’는 지금까지도 빙그레의 대표 제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1979년 6월에는 남양주 도농동에 제2공장을 증설했고, 1981년에는 프랑스 소디마사와 기술 제휴를 맺어 국내 최초의 떠먹는 요거트 ‘요플레’를 선보였다. 더 나은 품질의 유제품 생산을 위해 해외 기술을 적극 도입한 대일유업은 1982년 사명을 지금의 ‘빙그레’로 변경했다.
이후 1986년 경기도 광주에 공장을 준공하고, 1987년 남양주 식품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성장을 위한 투자를 이어갔다. 1988년 서울올림픽 아이스크림 공식 공급 업체로 선정되고, 1999년에는 ‘바나나맛 우유’가 ‘20세기 한국을 빛낸 상품’에 이름을 올리는 등 국내 유업계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빙그레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제품 개발을 지속해왔다. 1992년에는 고급 과일로 여겨졌던 멜론을 아이스크림화한 ‘메로나’를 출시해 큰 인기를 끌었고, 현재까지도 대표 제품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 빙그레, 경인지역 경제 개척 이후 세계 시장 선도하다
빙그레는 단순한 유가공 기업을 넘어 지역 경제를 선도하는 개척자로 성장했다. 농촌 재건과 국민 건강에 기여하겠다는 목표 아래 남양주에 터를 잡고, 2012년에는 남양주시와 일자리 창출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2019년에는 남양주 일자리박람회에 참가해 구직자들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하며 지역 발전에 힘을 보탰다.
이 같은 노력은 세계 시장으로도 이어졌다. 빙그레는 2016년 미국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2017년부터 ‘메로나’를 OEM 방식으로 생산해 코스트코 전 매장에 입점했다. 미국 법인의 매출은 2023년 598억 원에서 2024년 804억 원으로 35% 증가했고, 미국 내 한국 아이스크림 시장 점유율 약 70%로 독보적 1위를 기록 중이다.
또 중국에서는 바나나맛 우유의 현지화 전략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했으며 베트남, 호주, 유럽 등으로도 판매 지역을 넓혀가고 있다.
빙그레 관계자는 “빙그레의 역사는 대한민국과 경기도의 경제 발전사와 맞닿아 있다”며 “앞으로도 브랜드 정체성을 지키며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말했다.
■ 87년, 인천탁주가 빚어온 술 한잔의 역사
은은하고 구수한 단맛, 톡 쏘는 청량감을 지닌 막걸리를 마시면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씻겨 내려간다. 막걸리는 ‘막 걸러낸 술’, ‘대충 거른 술’이라는 뜻처럼, 친근하고 정감있게 서민들과 오랜 시간 함께했다. 인천탁주는 인천 대표 막걸리 ‘소성주’와 함께 87년 동안 인천시민의 삶과 동고동락했다.
인천탁주의 뿌리는 1938년 인천 중구 전동 자유공원 인근에서 시작된 ‘대화주조’다. 현재 정규성 대표의 할아버지가 일본인으로부터 양조장을 인수한 후, 욕조처럼 큰 통에 연탄을 때고 손수 저어가며 인천시민의 입맛에 맞는 막걸리를 빚었다. 사업 초기 막걸리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전쟁 이후 서민들의 배를 채워주던 음식이기도 했다.
정 대표는 “대화주조가 있던 동네는 인천항과 가까워 그 당시 그나마 잘 살던 동네”라며 “그런 동네에서도 먹을 게 없어 막걸리 찌꺼기를 밥으로 먹기 위해 공장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 불황을 넘은 품질의 힘··· 인천의 문화가 된 ‘소성주’의 탄생
1974년, 대화주조는 정부의 주세법 개정에 따라 인천지역 11개 양조장을 통합해 ‘인천탁주’로 새출발했다. 기존 중구 전동에 있던 공장도 부평구 청천동으로 이전했다. 이 시기까지도 막걸리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많았지만, 산업화가 본격화하면서 소주와 맥주에 밀려 점차 입지가 좁아졌다.
정 대표는 “부평지역 위쪽에는 논이랑 밭이 많았는데, 밭에서도 농부들이 막걸리 말고 맥주나 마시자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양조장을 운영하는 사람끼리 ‘10년 이상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처럼 막걸리의 인기가 주춤했지만, 인천탁주는 사람들의 입맛을 다시 사로잡기 위한 고민을 거듭했다.
수많은 시도 끝에 1990년 업계 최초로 100% 쌀로 만든 막걸리 ‘소성주’를 출시했다. 마침 한류 열풍이 불며 전통주인 막걸리에 관한 관심도 함께 되살아났다. 정 대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1996년부터 인천탁주를 이끌고 있다. 그는 선대가 강조해 온 ‘품질 좋은 술’을 계승하기 위해 최신 컴퓨터 제어 시스템을 갖춘 자동 생산 시설 도입 등 현대화와 자동화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인천에서 ‘소성주’는 곧 ‘막걸리’를 뜻하는 단어로 통할 정도다. 인천시민의 꾸준한 사랑 덕에 인천을 대표하는 술로 자리매김한 인천탁주는 지역과의 동반 성장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50번째 회원으로 등록된 것을 비롯해, 지역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정 대표는 “인천시민들 덕분에 소성주가 사랑받을 수 있었고, 남들이 갖기 쉽지 않은 행운을 받은 만큼 지역 주민들에게 감사 표시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가 한국막걸리협회장을 맡고 있던 지난 2021년에는 막걸리 빚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전통과 현대를 접목해 소성주를 문화 콘텐츠로 발전시키는 것, 그것이 인천탁주의 다음 목표다. 정 대표는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품질”이라며 “인천 대표 술을 만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겠다”고 다짐했다.
■ 농업 넘은 산업으로…식품업, 국민경제 주역이 되다
이러한 식품산업은 더 이상 ‘먹거리’에 그치지 않고 농업과 제조업, 유통·서비스업을 아우르는 융합 산업으로 성장하며 국가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1950년대 전쟁 직후에는 국민 기아 해소와 연관 산업 재건이라는 절실한 과제가 있었다. 1954년 통계청 통계연감에 따르면 당시 전국의 식료품공업 종사자는 1만867명, 사업체는 515개에 불과했지만,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에 힘입어 기반이 빠르게 구축됐다.
1980~1990년대에는 냉장 유통 기술 발달과 대형 유통망 확장에 따라 가공식품과 즉석식품 수요가 폭증했고, 브랜드 중심의 대규모 식품기업도 성장 가도를 달렸다.
경인지역은 인구 밀집, 항만 물류, 산업 입지 등의 이점을 바탕으로 식품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떠올랐다. 대규모 소비시장과 제조 기반이 결합하며 자연스럽게 식품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된 것이다.
통계청 ‘식품및식품첨가물생산실적’에 따르면 경인지역 식품산업은 지난 수십 년간 압도적인 성장세 속에서도 꾸준히 전국 식품산업의 핵심 동력으로 활약해 왔다.
1999년 경기도의 식품 제조업 매출은 약 6조4천516억원으로 전국 1위를 차지했으며, 인천은 약 1조4천450억원으로 6위였다. 이후 성장세는 더욱 뚜렷해져, 2010년 경기도 식품 매출은 약 8조3천331억원, 인천은 약 3조3천862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그리고 2023년 기준 경기도는 약 21조원으로 1999년 대비 3배 이상, 인천은 약 5조5천억원 규모로 4배 가까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처럼 매출 규모가 수십조 원 단위로 급증하는 동안에도 경인지역은 전체 식품산업 매출(2023년 기준 약 75조5천억원) 중 약 35%라는 압도적인 비중을 꾸준히 유지해왔다. 이는 경인지역이 대한민국 식품산업 전체의 성장을 실질적으로 견인하는 심장부이자, 양적·질적 발전을 이끄는 성장 엔진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에 발맞춰 경기도와 인천시는 산업 기반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기도는 ‘2021~2025 식품산업 기본계획’을 수립해 전통주, 쌀 가공, 김치, 농가 가공사업 등 4대 분야를 육성 중이다. 특히 국산 농산물 사용 비중을 올해까지 59.1%로 확대하고, 농가의 농외소득도 2천500만원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인천은 지난 2023년 전국 최초로 ‘식품산업육성지원센터’를 개소해 관내 6만5천개 식품업체를 대상으로 HACCP 교육, 판로 개척, 마케팅 지원 등을 추진 중이다. 또 113개 업체의 상품정보를 담은 소개서를 제작·배포해 실질적 수출 연결에 나서고 있다.
■ K-푸드 수출로 본 식품산업의 미래
한국 식품산업의 세계화 흐름도 뚜렷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K-푸드 수출은 전년 대비 8.7% 증가한 81억9천만달러를 기록해 역대 최고 실적을 냈다. 라면이 연간 10억달러 수출을 돌파했고, 냉동 김밥·즉석밥·떡볶이 등 쌀 가공식품은 전년 동기 대비 41.9%나 증가했다. 미국과 유럽, 아세안 국가를 중심으로 한국 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한류’와 ‘한식’의 결합이 실제 수출 성과로 이어지는 중이다.
하상도 중앙대학교 식품공학부 교수는 “식품산업은 광복 이후 인천항을 통한 원료 유입, 수도권 인구의 소비력, 서울 인근 제조업체들의 경기도 이전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며 경인지역을 중심으로 뿌리를 내렸다”며 “앞으로는 K-컬처를 발판으로 글로벌 진출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별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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