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단상] 맨발 걷기, 치유와 행복을 걷다

주광덕 남양주시장

image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봄이 돌아왔다. 마른 가지마다 연둣빛 새싹이 피어나고 얼었던 땅은 온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긴 겨울 동안 멈췄던 맨발 걷기도 다시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등산로 입구에는 수많은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숲길 벤치에는 신발과 양말을 벗어 가방에 넣는 시민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삼삼오오 무리를 이룬 이들은 맨발로 흙길을 딛고 건강한 웃음을 머금은 채 산을 오른다.

 

맨발 걷기를 처음 접한 건 2004년 초여름이었다.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낙선한 후 2개월이 지날 무렵부터 알 수 없는 정신적·심리적 고통과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심장 압박, 이로 인한 극도의 소화불량이 몸과 마음을 옥죄기 시작했다.

 

3~4시간씩 등산을 해도 상태가 전혀 호전되지 않았고 종합검진을 받아도 이렇다 할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게 소화불량과 식욕부진,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던 중 함께 일하던 직원의 권유로 맨발 산행을 시작하게 됐다.

 

그날부터 매일 퇴근하면서 맨발로 수락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흙과 모래, 잔돌, 바위와 접지하는 자극을 온전히 느끼며 걷다 보면 어떠한 생각이나 잡념에서 완전히 벗어나 무아의 경지에 이르게 되고 점차 자연과 하나 돼 간다.

 

마음이 평안해지고 내면에서 즐거움이 서서히 샘솟기 시작했다. 심장 압박으로 인한 통증의 빈도도 점차 줄어들면서 ‘이제는 숨 쉴 만하다.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좌절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맨발 걷기는 최고의 위로이자 치유의 해결책이 됐다.

 

몇 해 전부터 이어진 맨발 걷기 열풍은 하나의 건강문화로 정착했다. 신체 건강은 물론이고 정신적, 정서적 안정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많은 이들이 맨발 걷기를 즐겨하고 있다.

 

남양주시는 이러한 맨발 걷기의 효과에 주목해 2023년부터 16개 읍·면·동에 맨발 걷기 길을 조성 중이며 올해 말까지 모든 읍·면·동에 1개소 이상 설치를 완료할 계획이다. 이렇게 산과 하천, 숲과 공원이 가까운 남양주의 특성을 살려 만든 맨발 길은 시민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걷는 일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흙을 밟는 감각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한 걸음씩 맨발로 걷다 보면 불안은 작아지고 생각은 단순해진다. 흙의 감촉을 통해 자연과 다시 이어지고 그 안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은 다른 어떤 치유보다도 효과가 크다.

 

이처럼 맨발 걷기 길 조성은 시민의 일상 회복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복지이며 도시 건강을 구성하는 중요한 인프라다. 병원을 찾지 않고도 치유될 수 있는 길, 돈을 들이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이 길은 남양주가 추구하는 도시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 역시 유배라는 고난 속에서도 매일 걷기를 실천하며 스스로를 비우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봤다. 그에게 걷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깊은 철학이자 삶의 방식이었다.

 

남양주시는 이제 걷는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정약용 선생이 길을 걸으며 세상을 새롭게 바라봤듯 시민들은 길 위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사람과 이어지며, 삶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그 길에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평온한 내일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