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 덮친 지역 동물 온몸 화상 구조·치료 등 제도적 장치 전무 모금 등 민간 자발성에 전적 의존 수의사·봉사단체 협업 체계 필요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 ‘살아서 다행이다’ 싶었죠. 그런데 털을 젖혀보니 온몸이 화상이었어요.”
경북 안동 산불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펼친 윤국진 SKY동물메디컬센터 용인죽전점 원장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지난달 24일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산불이 휩쓸고 간 자리는 처참했다. 살아남은 개들은 털 아래로 피부가 검게 그을려 있었으며 목줄에 묶인 채 견사를 빠져 나오지 못한 개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버려 있었다.
화마가 덮친 곳, 생사에 기로에 놓인 개들을 살린 건 경기도수의사회였다. 동물보호단체연합인 ‘루시의 친구들’은 화재 현장에서 개를 구출해냈고, 경기도수의사회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경기도수의사회는 지체하지 않고 즉시 대응에 나섰다. 지난 2일과 4일 이틀에 걸쳐 각각 서정주·전학진 경기도수의사회 부회장이 산불 피해 지역을 찾아 상황을 점검하고, 구조된 동물의 치료와 관리 상황을 확인했다.
이와 동시에 경기도내 병원들에 치료 가능 여부를 타진하고 현장에 투입돼 현장 치료가 가능한 수의사 10명을 급히 구성해 초기 치료 체계를 마련했다.
현장에 파견된 경기지역 각 수의사들은 산불로 전기와 수도가 끊긴 열악한 환경에서도 가능한 응급 처치를 이어갔다. 당시 상태가 위독했던 30여마리의 개들은 도내 대형동물병원인 수원24시본동물의료센터, 죽전SKY동물메디컬센터, 분당리더스24시동물병원 등 10여군데에 각 2∼6마리씩 분산 이송됐다. 현재 꾸준한 보살핌과 치료를 받으며 상태가 호전됐다.
경기도수의사회는 ‘하나의 생명이라도 살리자’는 신념 하나로 봉사를 이어갔다. 이러한 마음에 응답하듯 전국적으로는 40여개의 병원과 100여명의 수의사가 산불 피해를 입은 개들의 회복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윤 원장은 “처참한 상태의 강아지들을 처음 병원에 데려왔을 땐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결과 소중한 생명들을 지킬 수 있었다”며 “화상의 피해는 여전히 몸 구석구석에 남아 있지만 지금은 밥도 잘 먹고 산책도 할 만큼 회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모든 구조와 치료는 제도적 장치 없이 민간의 자발성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난 상황에서 동물은 공적 구조 대상에서 배제돼 있으며, 치료비 대부분은 시민과 단체들의 모금에 의존하고 있다.
이번 산불 피해를 계기로 국가적 차원의 반려동물 피해 대응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학진 경기도수의사회 부회장은 “사람에겐 재난 대응 시스템이 있지만 동물은 구조도, 보호도 민간의 선의에 의존하고 있다”며 “이번 산불처럼 대규모 재난이 닥쳤을 때 민간 수의사와 봉사단체가 신속히 협업하고 치료 장비와 인력 지원도 받을 수 있는 국가 차원의 통합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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