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시베리아 평원의 품속으로

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장前 관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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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탄 연기에 휩싸인 하늘과 태양. 작가 제공

 

토탄 불 연기로

자욱한

회색빛 하늘

 

‘잠자는 땅’

시베리아서

문명의 단절

느끼고

마음 평안 찾아

 

네르친스크 거쳐

우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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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장前 관세청장

 

서울을 출발한 지 10일째(7월12일)되는 날이다. 시베리아는 관광객이 없기 때문에 여관을 전업으로 하지 않는다. 숲속 길 옆 주유소에서 휴게소, 식당, 여관, 편의점 등을 한곳에서 하고 있다. 휴게소 주차장에는 화물차들이 밤을 보낸다. 오전 4시경이면 위도가 북쪽이라 훤하게 밝아지고 주차장에서 밤을 보낸 화물차들이 이른 출발을 위한 시동 거는 소리가 요란하다. 장거리 운전 화물차 기사는 휴게소에 200루블(3천원)을 주고 여관의 샤워실을 빌려 간단히 목욕한다. 화물차 기사는 휴게소 편의점에서 간단한 음식과 술 몇 병을 사 운전석에서 식사, 반주를 하면서 잠을 잔다.

 

출발하면서 근처 주유소에서 기름 20ℓ를 넣고 출발한다. 도중에 큰 주유소를 만나면 품질 좋은 디젤을 가득 넣기로 하고. 이것이 오후 내내 우리 일행을 가슴 졸이게 만드는 큰 사건이 될 줄은 몰랐다.

 

자동차 앞 유리창은 피범벅으로 그냥 두고볼 수 없다. 운전 중 초원에 사는 나방, 곤충, 벌레들이 날아와 앞 유리창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카메이트 L실장은 매일 새벽마다 세척용 물비누를 사서 출발 전 자동차 앞 유리를 깔끔하게 닦는다. 그래도 한두 시간만 달리면 앞 유리가 벌레들의 핏자국으로 빨갛게 돼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 와일드 시베리아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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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탄 불에 죽어 가는 산림. 작가 제공

 

영화 ‘와일드 아프리카’에 사자, 악어들의 약육강식 풍경이 자주 나온다. 토탄 산불로 휩싸인 시베리아는 정말로 와일드 시베리아의 야성미다.

 

새벽부터 토탄 불로 인한 연기와 매연이 자욱하다. 오늘 목적지 ‘우탄’까지 하늘을 덮고 있는 토탄 연기가 600여㎞를 갈 때까지 이어진다. 하늘은 짙은 회색으로 햇빛을 하루 종일 못 보고 있다. 유독한 연기로 인한 건강 위협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다. 어떤 곳은 지표면 토탄층 불로 나무가 죽어 가고 오래전 불이 난 지역에서는 새로운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토탄은 생성 역사가 짧은 석탄의 일종으로 열량이 낮아 화석연료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어제 오후부터 오늘까지 약 800㎞에 걸쳐 토탄 연기로 덮여 있다. 정말로 광대한 땅이다. 활활 타는 불꽃은 없어 도로에 화물차 등은 계속 다닌다.

 

어디까지 ‘시베리아’인지 검색해 보니 우랄산맥 동쪽부터 태평양 오호츠크해까지 9천㎞를 지리학상 시베리아라고 부른다고 한다. 시베리아 지역을 한 단어로 간단히 정의할 수 없는 이유다. 원주민 언어로 시베리아 뜻은 ‘잠자는 땅’이라고 한다. 노상에서 시베리아 야생 딸기, 와일드 베리, 야생 꿀을 사고 싶은데 이런 험악한 상황은 장사는커녕 생명체가 살기도 쉽지 않다.

휴게소를 조금만 벗어나면 인터넷이 끊긴다. 위성항법시스템(GPS)이 안 되니 현재 있는 곳의 위치 정보, 즉 해발고도, 위도, 경도 등 현재 위치를 알 수 없어 답답하다. 인터넷이 단절된 오지는 ‘시간이 직선으로 가지 않고 곡선으로 간다’. 문명과의 단절은 우리에게 시간의 느림, 멈춤을 느끼게 한다. 느림은 나그네의 마음을 평안하게 만든다.

 

세상과의 단절이 주는 아름다운 고독이다. 시베리아 평원을 가로질러 흘러가는 강들이 자주 나타난다. 이곳의 모든 강은 겨울철 얼음으로 뒤덮인 북극해로 흘러가기 때문에 인간의 경제활동에 도움이 안 된다. 이 강물이 남쪽의 몽골 지방으로 흐른다면 몽골은 매우 살기 좋은 비옥한 나라가 될 것이다.

 

간혹 강가에 낚시꾼이 보인다. 아버지와 아들이 손잡고 낚시하러 가는 평화스러운 모습을 본다. 낚시는 여름철 짧은 기간의 취미생활일 것이다. 단조로운 풍경이 주는 여유로움이다. 나의 귀여운 어린 손자들이 청소년이 되고, 함께 낚시하러 다니는 조손간에 다정한 관계와 평안한 노후의 시간을 보내는 그림을 상상해 본다.

 

■ 자동차 디젤 기름 찾아 삼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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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길가에 설치된 원시적 주유기 옆에서 일행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작가 제공

 

아침 출발할 때 중간에 점심을 먹으며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울 생각으로 출발했다. 수백 ㎞를 지나왔는데도 중간에 휴게소와 주유소가 없다. 점심으로 서울에서 가져온 과자 몇 개를 나눠 먹는다. 계기판에 주행거리가 50㎞ 남았다는 경고등이 켜진다. 모든 일행의 마음이 초조해진다. 시베리아 숲속에 고립된다는 게 무섭다.

 

기름이 거의 없어질 즈음 간신히 작은 주유소를 찾았다. 시골길을 돌고 돌아 2차 세계대전 때나 썼을 법한 초미니 주유소를 발견했다. 주유기 하나가 들판에 덜렁 서 있다. 전화를 하니 주유소 주인이 나타나 정말 어렵게 기름을 넣었다.

 

아내는 점심을 못 먹어 배고픈 것보다 기름이 없어 차가 멈추는 것이 더 무섭다고 말한다. 매일매일 긴급 상황이 한 가지씩 생긴다. 조용하게 지나가는 날이 없다. 그래도 인터넷이 연결되는 지역의 초미니 주유소를 찾은 것이다. 구글 맵 서비스가 없다면 오지의 여행은 참 힘들 것이다.

 

‘우탄’에 못 미쳐 ‘네르친스크’ 도시를 통과한다. 1689년 청나라와 러시아가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한 도시다. 17세기 중반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과 서쪽의 강대국, G2 국가는 청나라와 러시아다. 당시 아무르강에서 조선, 청나라 연합군과 러시아 군대 간에 두 차례 전쟁(나선정벌·1654, 1658년 조선 효종 때 청나라 요청으로 파병돼 러시아군과 벌인 싸움)을 치렀는데 전쟁을 중단하고 국경을 획정하기 위한 국제조약이다.

 

중국은 종주국으로, 주변 국가는 조공국 위치를 2천년 이상 유지해 왔기 때문에 대등한 국제조약을 맺은 적이 없는 나라다. 중국은 항상 ‘갑’의 위치에서 이민족과 불평등한 협상을 해왔다. 네르친스크 조약은 중국이 타국과 대등한 자격으로 맺은 최초의 국제조약으로 유명하다. 당시 조약문서는 ‘라틴어’로 썼다고 한다. 청나라는 선교차 와 있던 라틴어를 아는 예수회 신부를 데려갔고 러시아 측에도 라틴어를 아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해가 늦게 지기 때문에 오전 9시 반에 도로 옆 위치한 여관 겸 휴게소에 도착했다. 토탄 연기를 뚫고 600㎞를 달려온 셈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니 오후 11시다. 서울서 가져온 고추장, 김치, 장아찌 등으로 식사를 맛있게 했다. 샤워 중에 여관의 전기가 나가고 물이 끊겨 생수를 가지고 이를 닦는 돌발 사태도 경험한다. 시베리아의 야생문화에 적응하는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다. 불편한 침대지만 피곤함이 숙면을 가져온다. 하루 종일 ‘낭만적 여행’이 아닌 ‘전투적 여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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