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작년 피해액 2천억 훌쩍… 실제 배상은 2%뿐 [신종 보이스피싱]

수사 기법 진화·구제책 등 노력에도...범행 고도화로 범죄피해 막기 역부족
금융계 자율배상 제도 집행률 ‘저조’... 금감원 “많은 피해자 구제 노력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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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유동수화백

 

활개치는 신종 보이스피싱 사례

 

#1. 경기북부의 한 무역업체 사무실. 직원들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휴대폰을 사고판다. 직원은 휴대폰을 개통하는 128명, 유통하는 11명, 반출하는 5명으로 나뉜다. 중국에서 휴대폰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개통자에게 돈을 입금하면, 휴대폰을 개통해 유통자에게 넘기고, 이를 건네받은 중국 국적 반출자가 ‘무역 길’에 오르는 루트다.

 

업체 대표인 50대 A씨는 합법적 허가를 받고 이 사무실을 운영했다. 2023년 10월부터 2024년 7월까지 번 돈만 ‘최소’ 50억원이다.

 

이 사무실은 보이스피싱 일당이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만든 여러 단계의 유통망 중 마지막 종착지로 쓰였던 곳이다. 인천공항 인근에 은둔지를 둔 총책 A씨와 보따리상 등 해당 일당이 중국으로 반출한 ‘대포폰’만 3천451대로 확인됐다.

 

지난해 경찰에 붙잡힌 인원만 162명에 달한다. A씨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위반,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지난해 6월 구속됐고, 중국 내 총책 등 10명은 인터폴에 적색수배됐다.

 

#2. 직장 은퇴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B씨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속아 최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2023년 11월 그가 온라인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자 “현금을 받아오는 역할을 하면 1건당 15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일을 시작했다. 그에게 이 일을 제안한 건 성명불상자 C씨다.

 

C씨는 금융기관 직원인 것처럼 다른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저금리로 대출이 가능하다”며 거짓말을 했다. 또 “기존 대출이 있는데 추가로 대출을 받는 건 계약 위반이다. 직원을 보낼 테니 기존 대출금을 상환하라”고도 했다.

 

여기서 ‘보내진 직원’이 바로 B씨다. B씨는 같은 해 11월10일부터 12월15일까지 피해자 12명으로부터 총 2억3천825만원을 받았다. 수사당국에 적발된 B씨는 C씨와 공모해 재물을 편취한 혐의, 피해자를 기망해 자금을 받은 혐의 등이 인정됐다. 수원고등법원은 ‘징역 2년’이던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지난해 12월 피고인 B씨를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및 사기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20일 경기일보 취재 결과, 지난해 전국 보이스피싱 피해액 30%가량이 경기도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발생 건수는 감소세지만 건당 피해 금액은 증가, 피해자를 지원하고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 보이스피싱 피해 작년 5천건으로 ‘전국 최다’

경기일보가 경찰청에 정보공개 청구해 제공 받은 보이스피싱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5년여간 전국에선 총 12만2천73건의 보이스피싱 발생 신고가 접수됐다. 이로 인한 피해금액은 총 3조1천911억원이다.

 

이 중 ▲서울 3만3천816건 ▲경기 3만1천278건 등 경기, 서울에 접수된 피해만 전체의 53.3%에 달하며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뒤이어 ▲인천 6천936건 ▲부산 6천616건 ▲대전 3천813건 ▲대구 3천694건 등 순이다. 같은 기간 경기도에서 발생한 피해 금액은 총 8천433억 원으로 전국 피해 금액의 26.4% 수준이었다.

 

‘작년 한 해’로 한정하면 도내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은 총 5천226건으로 전국 최다였다. 전국적으로 1만8천676건의 피해가 발생했다.

 

다만 이 통계에는 경기북부권(1천347건)의 지난해 12월분까지 포함돼 있어 전국 및 경기남부권(3천879건) 통계보다 1개월치가 더 많이 집계됐다.

 

지난해 도내 피해금액은 2천26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던 2021년(2천55억원) 다음으로 규모가 컸다. 경기남부권 자료에 12월 신고분이 미취합된 점을 고려하면 2021년의 기록을 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미 전국 총 피해 금액(7천257억원)의 27% 비중인 상황이다.

 

 

꾸준한 개선안에도 신종 범죄 예방하긴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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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기사와 직접적 연관은 없습니다. 이미지투데이

 

경기도를 비롯한 전국의 보이스피싱 신고 발생 건수는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건당 피해 금액은 늘고 있다. 보이스피싱을 예방하면서 피해자들을 도울 제도적 대책이 요구되는 이유다.

 

국내에서 보이스피싱 신고가 처음으로 접수된 2006년 이후 현재까지 약 20년이 흐르는 동안 수사 기법 진화, 피해 구제책 논의 등 수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범행 고도화로 피해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미래정책연구실장은 “가상화폐 조작, 온라인 도박 등 다양한 범죄와 결합된 범죄는 제외하고 기존의 대출빙자·사칭형만 집계하니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가 줄어든 것”이라며 “신종 보이스피싱에선 오히려 1인당 피해 금액이 늘어난다는 특징이 있어 범죄가 통제된 결과로 보긴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윤 실장은 “보이스피싱 범죄가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지고 경각심이 커져 수사 기법도 계속 진화해 온 결과”라면서도 “아무리 열심히 수사해도 범죄 진화 속도를 따라가긴 힘들기 때문에 더욱 세밀한 피해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은행권 ‘자율배상제’ 뒀지만… 실제 배상 2.1% 그쳐

현행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2011년 제정된 이후 수차례 개정을 거쳐 피싱 사기 예방의 책임을 금융당국에도 확대시켰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은행 등 금융계와 지난해 1월1일부터 ‘비대면 금융사고 책임분담기준(자율배상제도)’을 시행했다. 자율배상제도에 따라 은행은 비대면 금융사고 예방을 위해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을 가동하고, 적절히 대응하지 않아 피해를 예방하지 못했다면 책임 기준에 따라 피해자에게 일정 금액을 배상해야 한다.

 

당초 금감원은 자율배상제도 시행으로 보이스피싱 피해자 구제가 가능할 거라고 했지만, 정작 시중은행들이 배상 예외 조건을 설정해둔 탓에 피해자들은 배상 신청조차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4개 시중은행(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KEB하나은행)과 3개 인터넷전문은행(토스뱅크,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을 포함한 제1금융권은 ‘본인이 알 수 없는 제3자의 지시에 의한 금융 거래’만을 배상 대상으로 인정한다.

 

금감원 역시 ‘본인이 직접 송금한 것까지 은행에 배상 책임을 요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스스로 송금하거나 이체 후 수거책에게 대면 전달하는 등의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현금편취 방법에 당했다면 배상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은행권의 자율배상 집행률은 저조한 편이다.

 

실제로 지난해 1월1일부터 11월15일까지 접수된 자율배상 관련 상담은 총 1천240건인데 그 중 실제 배상이 이뤄진 건 2.1%인 27건에 불과하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이 시행하는 제도는 업무 협약에 기반한 권고 사항이기 때문에 강제하기는 힘들다”며 “지속적 논의를 통해 최대한 많은 피해자 구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 제언 “피해 복구 어려워, 범죄 예방에 초점 맞춰야”

이미 발생한 피해를 복구하긴 어렵기에 ‘예방’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은 “금융권에서 시행하는 제도는 이행하지 않았을 때의 벌칙 조항이 없어 이상 계좌 즉시 거래 정지 등 적극적인 조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며 “돈이 (범죄조직에게) 넘어갈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소장은 “유심칩과 계좌 판매 등이 불법이라는 것을 전국민 대상으로 확실하게 교육하고 불법을 저질렀을 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도내 한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등 조직성 사기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범정부적 제도가 필요하다”며 “수상한 연락을 받으면 반드시 해당 기관이나 112로 신고하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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