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재고 쌓이며 다시 저가공세… “돌파구 찾아야”

'中 완제품 재고'가 올초부터 다시 반등세
국내 제조업 10곳 중 7곳 “피해 영향권”
‘배터리’, ‘섬유·의류’, ‘화장품’, ‘철강’ 타격

#1. 석유화학 제조회사인 A업체는 최근 2~3년 전부터 중국 경쟁기업들이 단가를 크게 낮추면서 재정적 어려움에 처했다. A업체 제품가격보다 중국산 제품이 30% 더 저렴한 탓에 마진율을 최소 수준으로 제품가를 내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A업체 관계자는 "원유가격이 조금만 움직여도 적자와 흑자를 오가는데, (현재 상태라면) 오래 버티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2. 이차전지의 핵심부품을 생산해 미국에 주로 수출하는 B사도 값싼 중국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B사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관세, 품질·안전성 문제 때문에 중국산 원자재 사용을 최소화하고 있지만 경쟁사들은 값싼 중국산 원자재를 들여서 가격을 내리고 당사의 시장점유율을 잠식하고 있다”면서 “가격인하를 위해 중국산 원자재를 쓰면 미국시장을 포기해야 하는데,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경기일보DB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경기일보DB

 

저가형 제품을 앞세워 '밀어내기 공세'를 벌이던 중국 영향으로 우리 기업 피해가 현실화되던 가운데 최근 중국 내 재고물량이 다시 늘면서 현 국면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6일 ‘중국산 저가 공세가 국내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 자료를 발표하며 이 같이 밝혔다.

 

상의는 중국기업들이 저가 공세에 나서는 주된 원인인 중국 내 완제품 재고율이 올해 들어 다시 높아지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중국 내수경기의 회복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완제품 재고가 늘어나면 현재와 같은 밀어내기식 저가공세가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자료 발췌
대한상공회의소 자료 발췌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의 완제품 재고율은 코로나19 기간 소비 및 부동산 경기의 역대급 침체로 인해 6.94%(2020년 10월)에서 20.11%(2022년 4월)로 급상승했다.

 

이후 중국기업들은 과잉생산된 재고를 해외에 저가로 수출하며 처분하기 시작했고, 재고율은 1.68%(2023년 11월)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중국이 경기 둔화세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최근 완제품 재고는 4.67%(2024년 6월)로 다시 쌓였다.

 

중국의 저가 공세는 이미 우리 기업 실적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대한상의가 전국 제조기업 2천228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27.6%가 중국제품의 저가 수출로 인해 “실제 매출·수주 등에 영향이 있다”고 답했다. “현재까지는 영향 없으나 향후 피해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나타낸 기업도 42.1%에 달했다.

 

이러한 피해는 국내 내수시장보다 해외 수출시장에서 더 많이 발생했다.

 

수출기업의 37.6%가 ‘실적에 영향이 있다’고 답해 같은 응답을 선택한 내수기업의 응답비중(24.7%)을 크게 앞섰다. ‘향후 피해 영향이 적거나 없을 것’이라는 응답도 내수기업(32.5%)이 수출기업(22.6%)보다 높게 집계돼 내수기업이 받은 영향이 수출기업보다 제한적이었다.

 

대한상공회의소 자료 발췌
대한상공회의소 자료 발췌

 

업종별로도 명암이 엇갈렸다. 특히 전기차 수요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배터리 기업들이 중국 저가공세로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업종별로 ‘이미 경영 실적에 영향이 있다’고 응답한 비중을 살펴보면 이차전지(61.5%) 업종의 비중이 월등히 높게 나타났으며, ▲섬유·의류(46.4%) ▲화장품(40.6%) ▲철강금속(35.2%) ▲전기장비(32.3%) 등도 전업종 평균(27.6%)보다 높은 비중을 보였다.

 

이에 반해 ▲자동차(22.3%) ▲의료정밀(21.4%) ▲제약·바이오(18.2%) ▲비금속광물(16.5%) ▲식음료(10.7%) 등은 저가공세의 피해 영향이 상대적으로 낮은 업종이었다.

 

저가공세로 인해 우리 기업들이 겪고 있는 피해는 ‘판매단가 하락’과 ‘내수시장 거래 감소’가 가장 많았다.

 

‘이미 실적에 영향 있다’와 ‘향후 피해가능성 있다’고 응답한 기업을 대상으로 피해의 유형을 조사(복수응답)한 결과, 절반이 넘는 52.4%의 기업이 ‘판매단가 하락’을 꼽았다. ‘내수시장 거래 감소’를 지목한 기업도 46.2%로 적지 않았다.

 

이 밖에도 ‘해외 수출시장 판매 감소’(23.2%), ‘중국시장으로의 수출 감소’(13.7%), ‘실적부진으로 사업 축소 및 중단’(10.1%) 등 피해가 발생했다.

 

또한 중국의 추가적인 저가·물량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복수응답)에 대해 가장 많은 기업들이 ‘고부가 제품 개발 등 품질향상’(46.9%)을 응답했다.

 

이어 ‘제품 다변화 등 시장저변 확대’(32.4%), ‘신규 수출시장 개척 및 공략’(25.1%), ‘인건비 등 비용절감’(21.0%), ‘현지생산 등 가격경쟁력 확보’(16.1%) 등을 차례로 답했다. ‘대응전략이 없다’는 기업도 14.2%로 집계됐다

 

우리 기업들은 중국의 저가공세 장기화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정책으로 ‘국내산업 보호조치 강구’(37.4%)를 가장 많이 꼽았다.

 

다음으로 ‘연구개발(R&D) 지원 확대’(25.1%), ‘신규시장 개척 지원’(15.9%), ‘무역금융 지원 확대’(12.5%), ‘FTA 활용 지원’(6.3%) 등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있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우리기업이 해외수입품에 대해 신청한 반덤핑 제소 건수가 통상 연간 5~8건인데 비해 올해는 상반기에만 6건이 신청됐다”며 “글로벌 통상 분쟁이 갈수록 확대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대응기조도 달라져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대한상의의 이번 조사는 지난 6월3일부터 7월5일까지 구조화된 설문지를 통한 전화·FAX 조사로 이뤄졌다. 전국 제조업체 2천228개사가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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