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게 박힌 ‘손톱 밑 가시’ [규제 풀어 경제 활로 찾자 ①]

기업, 단열 안되고 내구성 부족...화성시 가설건축물 허가 재질
한계 지적하며 조례 개정 요구 “재질 확대를”… 市 “검토 중”

16일 본보 기자가 합성수지 재질의 가설건축물을 가로 14cm, 세로 12cm 크기로 부분 재취해 라이터로 불을 붙여본 결과, 3초도 지나지 않아 불이 붙으며 검은 연기가 피어 올랐다. 조주현기자
16일 본보 기자가 합성수지 재질의 가설건축물을 가로 14cm, 세로 12cm 크기로 부분 재취해 라이터로 불을 붙여본 결과, 3초도 지나지 않아 불이 붙으며 검은 연기가 피어 올랐다. 조주현기자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가 꺼내든 ‘손톱 밑 가시’. 이는 기업 활동에 제약을 거는 규제들을 과감히 완화해 경제를 활성화 시키자는 정부의 의지가 담긴 구호였다. 그 후 10년이 훌쩍 지났다. 여전히 기업들은 각종 규제에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국내 경제가 침체기를 겪으면서 기업들 사이에서는 다시금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에 기업들이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각종 규제들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화재 위험이 큰 ‘천막과 합성수지’만 허용하면 우리 직원들의 안전은 누가 책임 집니까.”

 

16일 오후 2시께 화성시 양감면의 한 UV 인쇄 조립 공장. 창고로 사용하는 천막형 가설건축물과 본건물 사이로 직원들이 분주히 완성품을 나르고 있었다. 같은 시간 김대호 대표(가명)는 공장 구석구석을 들추며 살피고 있었다.

 

건물을 돌며 혹시 모를 담배꽁초나 불꽃을 확인하는 건 김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업무다.

 

그가 매의 눈으로 공장을 살피는 건 4년 전 악몽을 겪고 싶지 않아서다. 제조업을 시작한 지 2년이 되던 해. 공장 가설건축물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나 공장이 모두 불탔다. 120평 규모의 공장을 날린 화재가 남긴 피해액만 15억원 상당. 당시 가설건축물은 조례가 명시한 재료인 천막과 합성수지였다.

 

김 대표는 “새로 얻은 공장에서는 혹시 모를 위험을 방지하고자 화재에 취약한 소재를 피하고 싶었지만, 화성시 조례는 천막과 합성수지만 가설건축물 재질로 인정하고 있다”며 “내구성도 나쁘고 화재 위험성이 크다는 것을 알지만 불법 설치를 할 수 없어 같은 재질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같은 날 인근에서 용기 제조 공장을 운영하는 이종민(가명) 대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대표는 최근 가설건축물을 교체했는데, ‘합성수지’라는 내구성이 약한 재질을 어쩔 수 없이 사용하다 보니 짧게는 2년, 길게는 4년 주기로 적지 않은 비용을 계속해서 지출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안전성이 떨어지고 환경도 저해하는 합성수지를 가선건축물 재질로 사용하라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는 답답한 규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화성시 기업인들이 시 건축 조례가 규정한 가설건축물 재질의 한계를 지적하며 조례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화성시에 따르면 지난 2001년 제정된 ‘화성시 건축 조례’는 2014년 개정을 거치며 본건축물과의 구분을 위해 가설건축물의 재질을 명시한 조항이 추가됐다. 현 조례는 가설건축물을 ‘파이프 구조에 천막·합성수지 등 이와 비슷한 재질로 주차장, 창고용에 쓰이는 건축물’로 명시하고 있다. 이 규정으로 화성시 기업인은 가설건축물 시공 시 재질의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천막은 단열 효과가 없고 내구성이 부족해 사용 주기적인 교체가 필요한 재질이다. 합성수지는 고온에 노출될 경우 쉽게 연소할 우려가 있으며, 변형이 쉽고 제조와 폐기 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합성수지가 불탈 때 나오는 연기는 유독성 가스를 포함해 화재 현장 인근까지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현장에서는 경영에 어려움을 초래하는 현 규정을 개정해 강판 등 재질을 사용할 수 있게 허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가설건축물 재질 확대에 관한 의견이 제기됨에 따라 시에서도 이를 검토하고 있다”며 “다만 강판 허용 시 재활용 자재 사용으로 도시미관을 헤치고, 본 건물의 용도로 악용될 소지가 있어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국회 본회의장. 경기일보DB
국회 본회의장. 경기일보DB

 

■ ‘규제 철폐’ 외치는 역대 정부…효과는 ‘미비’

 

‘규제왕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이 타이틀을 벗어 던지기 위해 역대 정부는 저마다 ‘전봇대 뽑기’, ‘손톱 밑 가시 뽑기’ ‘붉은 깃발 혁신’ 등의 표현을 내세우며 규제 개혁에 나섰다.

 

그러나 늘어나는 법안, 지자체 조례 등으로 기업들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규제의 벽은 여전히 높다.

 

앞서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일명 ‘전봇대 뽑기’로 불리는 규제 완화에 나섰다. 이 표현은 당선인 시절 이 전 대통령이 기업인들의 오랜 민원인 전남 목포 대불공단의 대형 트레일러 운행을 방해하는 전봇대를 언급한 뒤 이틀 만에 전봇대가 뽑힌 데서 비롯됐다.

 

박근혜 정부도 “작지만 손톱 밑에 가시를 뽑아내는 것처럼 중소기업의 활동을 제한하는 규제를 해소해 나가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며 규제 개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어 문재인 정부 또한 임기 초반인 2017년 ‘붉은 깃발’을 들고 나왔다. 낡은 관행과 기득권을 지칭하는 붉은 깃발을 없애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처럼 역대 대통령들은 기업들의 활동에 제약을 거는 규제를 없애겠다고 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규제를 없애고 나면 또 다른 규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사한 결과, 이명박 정부 집권 2년 차인 2009년 1만2천905개였던 규제는 2012년 1만4천889개로 15.3%나 증가했다.

 

박근혜 정부도 재임 시절 1천500여건의 규제를 완화했지만, 새 규제 또한 1천200여건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15년 한국경제연구원, 한국규제학회 주최로 열린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 추진 점검 및 향후 과제’ 세미나에서도 기업들은 박근혜 정부의 규제 개혁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9월 기업의 새로운 시도와 자유로운 도전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 규제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샌드박스에 선정된 기업이 정작 후속 법제화 지연 등으로 사업화에 실패하면서 규제 완화 한계점에 부딪혔다.

 

특히 2020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문재인 정부의 규제개혁 성과와 관련해 국내 기업들의 체감도를 조사한 결과, 2년 연속으로 ‘만족도’ 지수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尹 정부, ‘킬러규제’ 혁파…규제 철폐는 ‘아직’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기업의 해외시장 도전을 ‘국가대표’에 빗댄 뒤 “지금까지는 모래주머니 달고 메달 따오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며 지난 2년간 규제 개선 관련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규제개혁이 곧 성장’이라는 방점 하에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한 규제시스템 혁신’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설정했다.

 

대통령·총리 주재 ‘규제혁신전략회의’, 민·관·연 합동 ‘규제혁신추진단’, 민간전문가 주도의 ‘규제심판제도’ 등 정부 신설 기구를 활성화 했다.

 

이어 대내외 경제 여건 악화, 잠재성장률 하락 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난 3월 ‘2024년 규제정비 계획’을 발표, 6대 핵심 분야(투자·일자리, 민생, 복지, 신산업, 지역발전, 탄소중립)에 대한 규제혁신 발굴·개선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국민·기업이 단기간에 체감할 수 있도록 국조실·부처 합동으로 3대(킬러규제 지속 혁파, 한시적 규제 유예완화,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의 규제) 기획과제에도 집중한다.

 

지난 5월13일부터 연말까지는 ‘2024 지방 규제 일제 정비’기간으로 설정하고,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지방 규제 약 4만건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해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규제 왕국’이란 오명을 벗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규제정보포털의 ‘2023년 규제개혁백서’에 따르면 현재 규제일몰제가 적용된 규제는 총 375건으로, 이 중 제도의 취지대로 폐지된 규제는 3건, 개선된 것은 106건이다. 아직 71%에 달하는 266건의 규제가 남아있다.

 

규제일몰제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국민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규제에 존속기한을 설정하는 제도이다.

 

규제가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규제를 만들기 전 충분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규제가 기업에게 끼칠 영향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사회적 문화 정립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윤지웅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회에서 선한 의도로 만든 입법이나 규제도 예기치 못한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며 “규제 완화도 중요하지만 규제가 기업인들에게 끼칠 영향을 사전에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 정립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클립아트코리아
클립아트코리아

 

■ 경기도 얽힌 규제로 ‘골머리’…기업들, 규제 극복 ‘집중’

 

경기도 역시 이중·삼중으로 얽힌 규제를 개선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기도에 위치한 기업 또한 성장보다 규제를 극복할 해법을 찾는 데 집중하는 실정이다.

 

경기도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이후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 증가를 맞이하며 규제가 심화됐다. 기업의 활동 제약이 지역 경제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1990년대부터 규제 개혁을 본격화했다.

 

1999년 임창렬 전 경기도지사는 수도권정비계획, 개발제한구역 등 지역균형발전을 가로막는 규제 개혁을 위해 ‘경기도 규제대책위원회’를 열어 중앙정부와의 협의 및 개선을 도모했다.

 

민선 4·5기 임기 내내 ‘수도권 규제 철폐’를 외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새 정부 출범 후 전국 최초로 규제 해소 전담 기구인 ‘경쟁력강화추진기획단’을 조직, 수도권의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겠다며 앞장섰다.

 

특히 2007년에는 경기도 규제개혁 과제 120건을 발굴해 정부에 개선을 건의하고 ‘규제완화가 국가경쟁력’이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도에 적용되는 56개 규제를 지도에 그려냈다.

 

당시 경기도가 조사한 ‘수도권기업규제피해사례집’에 따르면 수도권 규제로 인해 경기도에 발생한 투자 지연은 53개 기업, 총 51조3천436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경기도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도가 지난 2월 발표한 ‘2023 경기도 규제지도’에 따르면 경기도는 수도권 규제(전 지역, 1만199㎢), 팔당특별대책지역(2천96㎢), 개발제한구역(1천131㎢), 상수원보호구역(190㎢), 수변구역(143㎢), 군사시설보호구역(2천251㎢) 등의 중첩 규제를 받고 있다.

 

도 전체가 수도권정비계획법의 규제를 받고 있어 도에서는 4년제 대학의 신설이나 증설이 금지되며 연수시설 설치도 제한을 받는다. 도 전체 면적의 2천251㎢를 차지하는 군사시설 보호구역에서는 건축물의 신축과 증축, 토지 지형 변경 등을 원칙적으로 할 수 없다.

 

불합리한 수도권 규제개선의 추진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11일 도청에서는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규제개선 시·군 간담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경기도는 각종 규제로 인해 기업들이 겪고 있는 애로사항을 청취, 적극 해소하겠다는 입장이다.

 

도 관계자는 “규제로 발생하는 기업들의 어려움을 중앙부처에 직접 방문해 전달하고 있다”며 “규제샌드박스 연계와 소통 강화를 통해 산업 현장의 어려움을 덜고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집중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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