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성제훈 경기도농업기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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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가까이 공직에 있으면서 새로운 곳에서 새 일을 맡을 때마다 떠오르는 칠언절구가 있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다. 소동파의 인간도처유청산(人間到處有靑山)을 약간 바꾼 이 글귀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6권 부제목으로 처음 썼다고 한다.

 

인간도처유청산의 본 뜻은 사람의 뼈를 묻을 곳은 이 세상 어디나 있다는 뜻이지만 이를 원용한 인생도처유상수는 가는 곳마다 뛰어난 고수가 있다는 뜻이다. 올 초부터 필자가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경기도농업기술원이 그렇다.

 

경기도농업기술원 직원의 52%는 연구직이고 28%는 지도직이다. 이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박사학위나 기술사 등 전문 자격을 갖춘 고수들이다. 이들이 이룬 실적은 하나하나가 눈부시다.

 

일본에서 만든 품종 일색이던 벼를 밀어내고 참드림이라는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서 경기도 전역에 보급했다. 최근 5년 만에 외래품종 재배율을 64%에서 30%까지 떨어뜨리며 농업기술원에서 개발한 품종을 보급하고 있다. 더 나아가 지역별 대표 품종도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평택의 꿈마지, 고양의 가와지1호, 연천의 연진 등이 그런 품종이다.

 

장미꽃 개발 실적도 눈부시다. 1999년부터 장미 품종 개발을 시작해서 현재까지 87품종을 만들었고 이 품종 중 외국 실정에 맞는 품종을 2009부터 2023년 사이에 17품종 800만주 가까이 수출했다. 우리나라 장미 품종을 수입한 나라는 화훼 종주국이라고 주장하는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일본, 독일, 스위스 등 34개국에 달한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만든 우수한 품종이 있으면 해외 품종을 들여올 때 로열티 협상의 히든카드로 방패막이 역할을 할 수 있다.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는 2008년부터 경기 농산물 소비 확대와 부가가치 향상을 위해 다양한 전통주 연구를 진행해 왔다. 경기 쌀과 지역특산 농산물을 이용한 전통주(막걸리, 약주, 증류주 등) 개발 기술을 20여 업체에 이전했다.

 

특히 이대형 박사가 민간기업에 이전한 산양삼 막걸리는 2017년 우리술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 박사가 개발한 벌꿀을 이용한 허니와인은 우리술품평회에서 대상과 최우수상을 여러 차례 받았으며 2022년 대통령 취임식 공식 건배주로도 사용됐다. 이렇게 쌀과 농산물 소비 활성화를 위한 전통주·가공품 연구를 통해 농가 소득 0증대에 이바지하는 농촌진흥공무원이 경기도농업기술원에는 많다.

 

구슬이 아무리 많아도 그냥 꿰기만 해서는 보석이 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차고 다닐 것인가를 보고 색깔별로 구분해서 꿰거나 크기별로 정리해 꿰어야 참다운 보석이 된다.

 

다양한 구슬을 꿰듯 농업기술원 직원들이 개발한 품종이나 기술을 농장 규모에 맞게, 지역에 맞게, 소비자에 맞게 제공해야 한다. 그런 일이 바로 경기도농업기술원에 있는 ‘상수’들이 할 일이다. 상수들과 함께 구슬을 꿰며 ‘보석’을 만들 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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