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수 국민건강보험공단 용인서부지사 보험급여부장
2018년 1월26일, 46명이 사망한 밀양세종병원 화재사고를 기억하는가.
경찰은 사고 원인으로 “이사장 등 병원 관계자들이 과밀병상, 병원 증설 등으로 수익을 얻은 반면 건축·소방·의료 등 환자 안전과 관련된 부분은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이사장이 밀양세종병원을 사무장병원으로 운영해온 사실도 함께 공개했다.
현행 의료법 등은 의료기관이나 약국을 개설할 수 없는 비의료인·비약사가 의사나 약사, 의료법인의 명의를 빌려 의료기관과 약국을 개설·운영하는 것(일명 사무장병원·면대약국)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비의료인과 이에 협력하는 일부 의료인들은 법을 무시한 채 국민의 건강과 생명, 안전을 담보로 불법적으로 개설한 의료기관을 자신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해마다 불법 개설 의료기관에 대한 부당 진료비 환수 결정액도 꾸준히 늘어나 2023년 말 현재 3조4천여억원에 달하고 있지만 실제 징수액은 2천여억원에 그쳐 징수율은 6.7%로 저조하다.
건강보험이 후대에도 지속가능한 제도로 존속하기 위해서는 그에 소요되는 재정이 튼튼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고금리·고물가 시대에 보험재정을 확대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건강보험의 재정 수입이 국민의 소득과 재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 침체 상황에서는 보험료 부과에 대한 국민적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다.
보험재정 수입을 투명하고 적정하게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나 그에 못지않게 불법적인 의료기관 운영으로 부당하게 새어 나가는 재정을 차단하고 시의 적절하게 환수 관리하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그동안 일부 여야 국회의원은 사무장병원 등에 대한 실태를 공감하고 공단에 특별사법경찰권 부여를 위한 사법경찰직무법(약칭) 개정안 입법을 여러 차례 발의했다. 하지만 법률 개정안은 ‘수사의 효율성이나 재정 절감 효과성 설명이 더 필요하다’는 요구 등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1법안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경찰과 의사회의 분위기는 또 어떠한가? 경찰은 특별사법경찰권 부여에 신중한 입장이고 의사회는 협회 자정 차원의 자율규제 방안 마련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이쯤 되면 공단이 불법 의료기관 개설자와 그 공모자가 부당하게 타낸 진료비를 재산 은닉 전에 신속하게 환수하기 위해 필요한 특별사법경찰권한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공단은 일선 경찰청과는 달리 이미 불법개설 의료기관에 대한 수사가 가능한 전담 조직과 인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국회에서 법률 개정안이 통과가 되면 이들 수사 인력 활용을 통해 11개월 이상이 걸리던 수사기간을 3개월로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고 이로써 연간 약 2천억원에 이르는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을 수 있다.
경찰이 염려하는 공단의 수사 비전문성 문제는 사법질서의 틀 안에서 엄격한 통제 기준을 만들어 보완하면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의사회의 수사권 오남용 우려는 행정조사가 수사로 변질되지 않도록 수사 기준과 절차를 명확하게 정해주는 것으로 가라앉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끝으로 국회, 경찰과 의사회, 공단은 불법개설 의료기관 등으로부터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고 건전한 의료생태계 조성을 위해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적극적으로 타협하는 데 노력해 주길 바란다. 법률 개정 입법 절차가 늦어질수록 불법개설 의료기관 등 운영으로 인한 건강보험의 재정적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입자인 국민에게 돌아갈 게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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