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소방관의 정신적 고통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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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섭 논설위원

공무원 중 가장 힘들고 위험한 직업은 단연 소방관이다. 소방관들은 남들이 살기 위해 뛰쳐나오는 불길 속으로 들어간다. 수백 도의 뜨거운 열기와 연기가 가득한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거나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서다. 화염에 휩싸인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이들도 많다. 지난 10년간 화재 현장에서 숨진 소방관이 40명에 이른다.

 

지난달 31일 경북 문경의 한 육가공공장 화재 때도 사람을 구하려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건물이 무너져 2명의 소방관이 숨졌다.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대 소속 김수광 소방장(27)과 박수훈 소방교(35)다. 김 소방장은 극한 훈련을 극복해야 하는 인명구조사 시험에 합격했다. 박 소방교는 태권도 5단의 특전사 출신이다. 아무리 강인하다 해도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직업이 소방관이다.

 

이들의 영결식은 지난 3일 경북도청에서 경북도청장으로 열렸다. 유가족들은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고, 동료 소방관들도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떨궜다. 윤인규 소방사는 조사에서 “뜨거운 화마가 삼키고 간 현장에서 결국 구조대원들의 손에 들려 나오는 반장님들의 모습을 보며 저희 모두는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느끼고 또 느꼈다”고 했다.

 

순직한 대원들의 유가족은 물론 화재를 진압하던 동료 소방관들이 받았을 정신적 충격은 가늠하기 어렵다. 순직 소방관에게는 1계급 특진과 보국훈장이 추서된다지만, 사람이 가고 없는데 무슨 큰 소용이 있겠는가.

 

소방관 10명 가운데 4명 이상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나 우울 등 심리질환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관 20명 가운데 1명은 ‘자살위험군’에 속한다. 소방청이 분당서울대병원 공공진료사업단과 함께 지난해 소방공무원 5만2천8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참혹한 상황을 직접 겪거나 목격하는 소방관들의 정신적 충격이 심각함을 보여주고 있다.

 

소방관들이 순직할 때만 반짝 관심을 보여선 안 된다. 남은 동료의 안전을 확보하고 정신적 장애 관리와 치유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그게 숭고한 희생에 대한 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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