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대학을 갓 졸업한 22살의 최윤정씨는 망설임 없이 노인종합복지관 근무를 선택했다. 서울에 노인종합복지관이 딱 두 곳 있던 시절이었다. 30년이 지난 2023년 9월25일, 그는 노인복지에 공헌한 공로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게 된다.
고양특례시 대화노인종합복지관 최윤정 관장(52)은 우리나라 최고의 노인복지 현장 전문가다. 2018년 5월 관장에 취임한 후 ‘선배시민’, ‘자기돌봄’ 개념을 복지관 운영에 적극 도입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에는 노인들이 디지털 문맹에서 벗어나 비대면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돕는 디지털 체험관을 선도적으로 오픈했다.
2014년 문을 연 대화복지관은 평생교육 프로그램과 심리상담센터, 건강상담 운영뿐 아니라 노인맞춤돌봄서비스, 노인일자리및사회활동지원 등 국가사업도 맡아 하고 있다. 일산서구 전체를 관할하지만 일산 분구 전 설립된 일산노인종합복지관이 있어 이름이 ‘대화’가 됐다.
그가 취임한 후 선배시민대학, 선배시민봉사단, 디지털체험존 운영 등 한발 앞선 사업을 펼치며 2019년에 경기도지사상을, 2020년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30년 전 노인종합복지관 근무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조부모님이 저를 키워주셨는데 그래서인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면 친근하고 그냥 좋았어요.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노인복지관 근무를 선택한 것도 노인분들에 대한 애정이 깊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2, 3세대들이 노인과 접촉이 잦을수록 노인에 대해 긍정적이지만 접촉이 적을수록 인식이 부정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세대 간 교류와 소통이 그만큼 중요하죠. 우리 복지관은 세대통합 프로그램 개발에 특히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그가 노인복지 분야 최고의 현장 전문가로 평가받는 건 단순히 복지관에서 오래 근무해서가 아니다. 복지관 운영에 회원들의 니즈를 반영하되 직원들과 회원들에게 노인복지의 방향을 제시하고 이끄는 열정과 기획력, 실행력이 탁월하다는 평이다.
“코로나로 바뀐 노인들의 일상생활에 디지털을 접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2021년 8월 경기북부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디지털체험존 ‘D+세권’을 오픈했죠. 키오스크와 스마트폰 사용법을 회원들이 다른 회원들에게 가르칩니다.”
대화복지관 1만명 회원 중 복지관과 카카오플러스친구를 맺은 회원이 1천400명을 넘었다. 또한 코로나 시기에 온라인 학습 플랫폼을 자체 개발해 지금까지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온·오프라인 병행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 관장이 노인복지의 새로운 개념으로 줄곧 강조해온 ‘선배시민’, ‘자기돌봄’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저는 노인을 어르신으로 부르지 않고 선배님이라 부릅니다. 노인이 지혜와 경험을 가진 ‘노(know)인’, ‘선배시민’으로 변화해야 노인을 폄하하는 부정적 인식이 바뀌고 노인의 고립과 소외, 빈곤 문제까지 해결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는 노인 편을 일방적으로 들지 않는다. 노인이 스스로 변해야 하고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는 점을 회원들에게 끊임없이 강조한다. 노인 공공근로사업도 노인의 자기 돌봄으로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노인일자리 사업 중에 휴식시간이라 쉬고 있는 노인을 발견하고 세금 낭비라며 복지관에 제보전화를 하는 시민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노인들이 공공근로를 통해 집 밖으로 나오고 몸을 움직이면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강해지고 결국 노인복지에 투여되는 사회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노인복지에 대한 그의 신념은 명확했다.
“노인복지란 초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층에 대한 사후적 관리 비용을 줄이고 지역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예방 활동입니다. 그리고 선배시민과 후배시민이 접촉, 공감, 이해하는 지역사회를 만드는데 함께하며 돕는 것이 노인종합복지관의 본연의 역할입니다.”
그는 복지관이 담당하는 노인 관련 사업이 계속 늘어나면서 예산, 인원 등 규모는 커졌지만 행정업무와 관리요소가 대폭 늘면서 노인복지의 핵심에 집중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복지관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소망했다.
노인복지 현장 전문가의 훈장 수훈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국민훈장을 받게 된 사연을 물었다.
“2009년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고 15년쯤 지났으니 대통령상에 한번 도전해 보자는 마음으로 신청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보건복지부에서 현장실사를 나온 거예요. 저는 대통령상이라 실사까지 하는구나 생각했는데 표창이 아닌 훈장으로 격을 올릴 거라고 해 깜짝 놀랐죠. 너무나 영광스러웠습니다.”
노인이 늙은이가 아닌 선배시민이자 노(know)인으로 공동체 속에 행복하게 스며들 수 있도록 계속 현장에서 함께 하겠다는 최윤정 관장. 국민훈장은 30년 초지일관에 대한 국가의 인정이자 존경의 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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