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추락 참사 겪고도… 지독한 ‘환풍구 안전불감’ [현장, 그곳&]

수원·안산 등 도내 번화가 곳곳... 좁은 인도에 수미터 길이 환풍구
덮개에 카펫도… 보행 안전 위협

18일 오전 10시께 수원특례시 팔달구 인계동의 2m 폭 도로 3m 구간 전체에 환풍구가 설치돼 있어 시민들이 환풍구 위를 반드시 지나가야 한다. 사진은 한 시민이 환풍구 위를 걷고 있는 모습. 김기현기자

 

“어쩔 수 없이 환풍구를 밟고 지나 가야 하는데, 매번 불안하죠.”

 

18일 오전 10시께 수원특례시 팔달구 인계동 일대. 폭 2m에 불과한 인도 약 3m 구간 전체를 환풍구가 차지하고 있었다. 사실상 환풍구가 인도 역할을 하고 있어 길을 지나기 위해선 무조건 환풍구를 밟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환풍구 덮개 위로 카펫이 깔려 있어 시민들은 환풍구 위를 지나고 있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지나 다니는 모습이었다.

 

같은 날 오전 11시께 안산시 단원구 중앙동 일대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건물 사이 골목길 바닥에 폭 1m, 길이 6m가량의 환풍구가 설치돼 있었지만 추락 위험을 알리는 경고 문구를 비롯해 어떠한 안전장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유동 인구가 많은 이곳에서는 시민들이 환풍구를 밟고 지날 때마다 ‘철컹’ 소리와 함께 덮개가 들썩이는 등 불안정한 모습도 포착됐다.

 

고모씨(25·안산)는 “어쩔 수 없이 환풍구를 밟고 지나가야 하는 곳들도 있는데, 덮개가 불안정한 곳도 많아 불안하다”며 “안전장치도 없어 더 무섭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37명의 사상자를 낸 ‘판교 환풍구 참사’가 발생한 지 9년이 지났지만, 환풍구는 여전히 '도로 위 싱크홀'로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행정당국은 환풍구 관련 안전대책을 수립·시행키는커녕 현황조차 파악하지 않는 등 관리에 손을 놓고 있다.

 

이날 행정안전부와 경기도 등에 따르면 도는 지난 2014년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이후 한 차례 지역내 환풍구 현황 등을 파악했을 뿐 현재는 환풍구 추가 설치 여부나 현황 등을 따로 파악하지 않고 있다.

 

안전대책 역시 전무하다. 환풍구 관련 안전대책은 사고 이후 정부가 신설한 ‘건축물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이 유일하다. 그러나 이 마저도 2015년 이후에 조성된 곳에만 적용돼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환풍구는 언제든 추락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곳”이라며 “경고문을 부착하거나 펜스를 설치하는 등 안전조치가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도 관계자는 “시설물 안전관리 과정에서 환풍구도 같이 점검하고 있다”며 “추락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더 신경쓰겠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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