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 사법제도’를 제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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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군 지우학문화연구소 대표

2016년 인공지능(AI)과 인간 사이에 바둑 대결이 펼쳐졌다. 그 유명한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다. 결과는 1-4로 인간의 패배! 그나마 이세돌이 거둔 1승은 공식 대국에서 인간이 AI를 상대로 거둔 유일한 승리로 역사에 기록됐다. 이제 AI는 최소한 바둑 세계에서만큼은 인간이 절대 이길 수 없는 신(神)과 같은 존재가 됐다. 심지어 지금은 전문 프로 바둑기사가 되려면 AI에게 바둑을 배워야 한단다. 그런데 AI의 유용함이 바둑 세계에만 통할까?

 

현재 우리나라의 사법 시스템에는 많은 문제점이 노출돼 있다. 국가를 구성하는 수많은 시스템 중에서 견제와 균형이라는 기본적인 원리가 유독 사법 시스템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사법 시스템은 소수 사법 엘리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고 국민으로부터 점점 신뢰를 잃어 가고 있다.

 

국민의 기본 법감정을 무시한 판결이 줄을 잇는데 이는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이 국민의 상식과 따로 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무려 50억원의 거금을 근무 경력 6년 미만의 대리급 직원에게 퇴직금으로, 그것도 다른 목적(?)은 절대 없다는 것을 믿으라고 판결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혹자는 그만큼 법이 엄격해야 하며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의 상식에 따르면 법이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이 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을 꾸짖은 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교회와 성서에서만 되새길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적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법 판결의 질뿐만 아니라 양에서도 문제가 많다. 현재 우리나라 민사재판은 본안 사건 접수 후 첫 기일이 열리려면 최소한 4개월 이상이 걸리고 1심 판결까지는 무려 1년이 걸린다고 한다. 민사소송법은 1심 재판을 5개월 안에 마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법과 현실은 완전히 따로국밥이다. 그나마 2심 이상에서는 기한에 의미가 없을 정도다. 이건 이유가 너무 명백하다. 판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판사 정원을 늘리려면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의대 정원 확대 사태에서 본 것과 본질에서는 똑같다.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해보면 어떨까? 현재 1심 판결의 대부분 과정을 AI에게 맡기는 것이다. 아마 지금까지 쌓인 수많은 사법 관련 빅데이터를 분석하면 거의 모든 소송 건은 기존 판례만으로도 충분히 판단할 근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 데이터가 부족하면 전 세계 판례를 다 참고할 수도 있다. 그런 다음 AI가 판단한 내용을 근거로 판사가 최종 판단을 하게끔 한다면 현재 판사 업무량의 최대 90% 이상이 줄어들지 않을까. 또 소송을 제기하는 측에서도 AI의 판단을 미리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어 쓸데없는 소송 남발을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AI 사법제도에 더 신뢰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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