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화무십일홍’을 무색케 하는 배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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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웅 수원특례시 화서1동장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듯 성한 힘이나 세력도 얼마 못 가 쇠함을 이르는 말이다. 잘나갈 때 겸손을 잊지 말라는 교훈이다. 겸손은 어짊, 예의, 배려와 함께 선비정신의 바탕을 이루는 덕목이다.

 

겸손과 배려를 엿볼 수 있는 꽃으로 배롱나무꽃을 꼽는다. 배롱나무는 날과 기온이 좋은 봄·가을을 여느 꽃들에 배려하고 한여름에 꽃피운다. 키도 5m 정도로 작아 주위 환경과 나무에 위압감 없는 겸손도 갖췄다.

 

배롱꽃은 여름의 시작과 끝을 알려주는 전령사다. 주변 경관과도 잘 어울려 서원과 사찰의 기와지붕과 녹음 속 배롱나무는 수채화의 정점을 이룬다. 심은 지 얼마 안 된 나무는 고깔과 폭죽 모양 꽃을, 수령이 오래된 나무는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양산 모양의 꽃을 피워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배롱꽃은 이즈음 제철이다. 극한 폭염으로 가마솥처럼 설설 끓는 한여름. 배롱나무는 강렬한 태양을 무시하듯 붉고 화사한 꽃망울을 터뜨린다. 가히 여름꽃의 황제다. 여름꽃이 많지 않지만 배롱꽃이 중국에서 자미화(紫薇花)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미는 북두칠성 가운데 ‘황제’를 의미한다.

 

배롱나무는 여러 가지 별칭이 있다. 첫째, ‘양반나무’다. 봄꽃이 지고 여름에 꽃을 피움이 양반처럼 게을러서 불린다. 둘째, ‘간지럼나무’다. 수피가 얇아 줄기를 건들면 간지럼을 타기 때문이다. 셋째, ‘약용나무’다. 꽃이 지혈과 혈액순환에 좋고 대하증, 설사, 장염에 효능이 있어서다. 넷째, ‘쌀밥나무’다. 배롱나무꽃이 지면 벼가 익는다고 해서 불렸다. 다섯째, ‘백일홍나무’다. 꽃이 백일을 피기 때문이다. 꽃이 백일을 핀다기보다 여러 개의 꽃이 피고 지기를 백일 동안 계속해 붙여졌다. 여섯째, ‘청렴나무’다. 줄기에 껍질이 없고 매끈하지만, 속은 꽉 차 있어 일편단심으로 여겼다.

 

배롱나무는 예부터 충절과 청렴의 상징으로 궁궐, 서원에 많이 심었다. 연유는 배롱나무의 두 가지 특성에서다. 하나는 유난히 매끄러운 수피. 껍질의 겉과 속이 같아 표리일체의 선비정신과 통해서다. 다른 하나는 무더운 여름 내내 변치 않고 꽃피는 모습이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닮아서다. 배롱나무를 보며 관직에 올라도 입신과 재산 축적에 욕심 내지 말고, 부정부패 없는 청렴한 삶을 살아가기 위함이다.

 

청백리의 표상인 다산 정약용도 배롱나무를 좋아했다. 그는 선비의 지조와 충절의 의지를 배롱꽃에 담아 시 ‘자미화’를 남겼다.

 

‘마루 앞에 한 그루 백일홍이 피었는데(堂前一樹紫薇花)/쓸쓸할 사 그윽한 빛 시골집과 흡사하다(寂寞幽光似野家)/번갈아서 피고 지며 백일을 끌어가는데(半悴半榮延百日)/백 가닥의 가지마다 백 개 가지 또 뻗었네(百條仍有百杈枒).’

 

공직자에게 청렴은 중요한 가치다. 청렴이란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음을 뜻한다. 작은 꽃씨 하나가 예쁜 꽃밭을 만들 듯 청렴의 씨앗이 청렴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공직자는 청렴하게 살기 위해 언제나 마음과 몸으로 실천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배롱나무의 의미는 오늘날 공직자도 되새겨야 할 귀한 교훈이다.

 

배롱꽃은 화려함, 빠름과는 거리가 먼 꽃으로 인식되고 있다. 묵묵히 뜨거운 여름을 기다려 백일 동안 느긋하고 연이어 꽃을 피운다. 소박하게 핀 배롱나무꽃을 보며 느림과 인내, 겸손을 되새겨보자.

 

부산 양정동에는 천연기념물 168호로 지정된 가장 유명한 수령 800년의 배롱나무가 있다. 경남 함안, 전남 순천, 전북 익산, 충남 서천, 대구 달성군 육신사길, 수원특례시 화서1동은 배롱나무 가로수길로 유명하다.

 

배롱나무는 여름 뙤약볕 백일간 꽃을 피워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 때마침 수원 화서1동에서는 오는 8월19일 배롱나무 축제가 열린다. 배롱나무꽃 빨강 수박화채로 더위를 식혀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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