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불교 철학은 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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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진세 칼럼니스트·에세이스트

불교 철학은 현대 과학으로 정확하게 ‘진리’로 증명된다. 그것도 최첨단 과학인 양자물리학과 정확히 일치한다. 철학은 과학으로 증명되지 못하면 미신일 뿐이다. 2천500여년 전의 불교 철학과 현대 과학의 원리는 묘하게도 상호 연관 지어져 있다. 이는 과학자들이 지금도 활발히 연구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한 많은 진실을 세상에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양자물리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립자(원자)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우주 만물의 최소 구성단위인 원자는 ‘원자핵’의 주위를 ‘전자’가 돌고 있는 형상이다. 우주의 태양계 모형과 닮았다. 돌고 있는 전자의 움직임은 규칙적이지 않다. 원자핵과 전자의 중간은 모두 비어있다. 전자의 궤도는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고, 궤도는 조건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 학설은 ‘양자 도약’으로 유명하다. 불교의 무유정법(無有定法)과 닮았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소립자(원자)는 관찰자가 관찰하면 ‘입자’로 존재하고 관찰하지 않으면 ‘파장’으로 존재한다. 빛도 입자와 파장으로 동시에 존재하는 소립자로 구성된다. 이런 사실은 현대 과학자들이 양자역학에서 언급되는 물질과 파동의 이중성에 대해 ‘이중 슬릿 실험’으로 밝혀진 바 있다.

 

이중 슬릿 실험은 영국의 과학자인 토머스 영이 광자(빛을 이루는 단위 입자)를 가지고 처음 수행했다. 여기서 간섭무늬가 발견됐고 이는 빛이 파동이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실험적 근거가 됐다. 이후 클린턴 데이비슨과 레스터 저머가 전자를 가지고 한 실험에서도 간섭무늬가 나타나면서 파동-입자 이중성을 정립하는 계기가 됐다.

 

미립자인 소립자로 가득 채워진 우주가 에너지가 진동하는 끈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고 하는 학설도 있다. 소립자는 끈을 통해 세상과 소통을 하다가 비슷한 주파수(에너지)를 가진 소립자가 서로 모여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낸다. 소립자는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을 반복한다. 이렇듯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불교의 ‘윤회사상’과 유사하지 않은가?

 

불교의 핵심은 공사상(空思想)이다. 우주는 불교의 공 사상처럼 텅 비어 있지만 소립자로 가득 차 있다. 소립자끼리 서로 작용해 사물을 만든다. 독립된 실체는 어디에도 있을 수 없다. 인간 세상도 생로병사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우주는 존재할 수 없다.

 

세상의 삼라만상도 불교의 철학처럼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물이 수증기로 변하고 수증기는 구름이 되고 구름은 비가 돼 온 대지에 비를 뿌려준다. 낮과 밤은 주기적으로 변하며 계절도 변하지 않으면 지구는 존재할 수 없다.

 

변할 것이냐 마느냐는 이제 선택이 아니고 필수다. 우주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또 우주는 무한 팽창하고 있다. 시대에 맞게 상황에 맞게 변하는 종(種)만이 살아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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