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용마돌이의 삶을 응원하며

우동걸 국립생태원 박사

회갈색과 흑갈색 조합의 털이 온몸을 덮고 있으며 머리에 검은색 뿔 한 쌍이 솟아 있다. 이마에서부터 뿔 사이를 지나 뒷목에 이르기까지 갈기와 같은 검은 털이 줄 지어 나 있고 목에는 흰색의 반점이 있다. 흰빛 꼬리는 엉덩이 아래까지 치렁치렁하다. 우리나라에 사는 야생동물인 산양의 생김새다. 흔히 산양 하면 연상할 수 있는 것이 산양유이나 시중에 유통되는 산양유는 온몸이 흰 젖염소의 유제품으로 야생 산양과는 무관하다.

 

산양이 좋아하는 서식지는 인적이 드물고 가파른 비탈과 바위가 많은 산악지대다. 균형감각이 뛰어나고 유연한 집게형 발굽을 가지고 있어 바위 절벽과 급경사지를 쉽게 오르내린다. 다른 동물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험준한 지형에 특화돼 자신만의 고유한 생태적 지위를 구축한다. 과거 밀렵으로 개체수가 급감해 법적으론 멸종위기야생생물Ⅰ급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주로 민통선 일대, 설악산, 울진과 삼척 등지 험한 바위산에 분포한다.

 

2018년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시민에 의해 서울 중랑구 용마산에서 산양이 목격된 것이다. 기존 서식지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는 서울 도심 인근에서의 산양 출현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용마산 산양 출현을 계기로 이뤄진 조사 결과 산양은 철원과 포천 일대 한북정맥을 따라 경기 북부까지 서식 범위가 확장된 것으로 나타났다. 산양 보전 측면에 있어 개체군 회복과 서식 범위 확대의 긍정적 신호다.

 

그렇다면 산양은 어떻게 용마산까지 왔을까?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산양 서식지인 소요산, 왕방산 일대와 용마산 사이엔 고속도로(29·100호선), 국도(6·43호선) 등의 많은 도로와 시가화지가 존재한다. 특히 용마산에 닿기 직전엔 횡단 난이도 극강의 왕복 6차선 북부간선도로와 망우리고개를 넘어야 한다. 많은 난관을 뚫고 산양은 기어이 남쪽으로 내려오다 용마산에 정착한 것이다.

 

또 하나의 질문. 왜 산양은 하필 용마산에 자리를 잡았을까? 용마산은 1961년부터 1988년까지 약 27년간 서울시의 골재채취장으로 이용됐다. 폭발 굉음, 돌가루 먼지 등으로 인근 주민들을 괴롭힌 채석장은 운영 종료 이후 인공폭포가 추가된 용마폭포공원으로 거듭났다. 산양에게 있어 이곳은 바위 절벽의 존재, 안전상 사람 출입의 제한, 폭포수 물 공급 등의 괜찮은 서식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일반적으로 산양의 검은 원통형 뿔에는 주름이 있고 나이가 많을수록 주름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대략의 나이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다. 또 암컷에 비해 수컷의 뿔이 보다 벌어지고 뒤로 젖혀져 있다. 센서카메라에 촬영된 용마산 산양의 뿔은 주름이 3분의 2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두 뿔 사이는 약간 벌어져 있다. 즉, 녀석은 나이가 제법 많은 수컷 산양이다.

 

용마산 산양은 시민들에 의해 새 이름도 얻었다. 중랑구는 산양 이름 짓기 공모를 통해 ‘용마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용마돌이는 가히 산양계의 콜럼버스라 할 수 있다. 다만 다른 암컷 개체의 유입은 어려워 지속적인 용마산의 산양 서식과 번식개체군 형성은 어려운 상황이다.

 

2023년 6월, 현재까지 5년 넘게 용마돌이는 용마산에 살고 있다. 정기조사 때마다 만나는 용마돌이의 신선한 배설물이 반갑다. 오늘 밤에도 용마돌이는 바위절벽 한 편에서 되새김질을 하며 거대 도시의 야경을 굽어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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