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천 반도체 특화단지가 가지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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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호 인천시 반도체바이오과장

손자병법에서 손무(孫武)는 병법에 다섯 가지 핵심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도(度)이다. 지형의 넓이를 보고 그 지형에 알맞은 작전을 세워야 한다. 둘째는 양(量)이다. 물질적 자원의 양을 본다. 셋째는 수(數)다. 적군과 아군이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을 예측한다. 넷째는 칭(稱)이다. 적군과 아군의 병력에 따라 전력을 가늠한다. 다섯째는 승(勝)이다. 전력을 가늠해 승패의 가능성을 예측한다.

 

냉전 종식 이후 40년간 자유무역을 강제하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세계시장에 휩쓸리지 않고 나름대로 입지를 다지는 데 온 힘을 다해 왔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최근 몇 년 사이에 180도 바뀌면서 우리는 전혀 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다. 특히 코로나와 전쟁,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21세기 산업의 중심인 반도체 공급망이 붕괴되는 걸 경험한 후로 각국은 반도체산업 자체를 전시의 안보자원처럼 관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 국가들을 제재하고 자국 내에 모든 공급망 생산시설을 갖추려고 다른 나라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산업이 소리 없는 전쟁터가 된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산업전쟁의 영역이 물리적인 국가 영토로 정의된 건 적어도 우리 생에 처음 겪는 일이다.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잘 싸워야 한다.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지형에 알맞은 작전을 세워서(度), 우리가 가진 자원의 양을 세고(量),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을 예측해야 한다(數). 전력을 가늠하고(稱), 승패를 예측하는 건(勝) 그 다음에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조성을 추진하면서 시작 단계에서 이런 치밀한 계획을 갖고 움직였으면 하는 바람이 굴뚝같다.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의 지형을 본다면 모든 생산품의 수출입이 이뤄지는 관문을 먼저 주목할 것이다. 반도체 산업의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바로 공항에서 실어 나를 수 있는 입지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다. 최근 반도체 산업 경쟁력의 핵심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공정 미세화 한계의 대안으로 하이브리드본딩, 3D적층, TSV 같은 첨단 패키징이 핵심기술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가진 자원이 무엇인지 가늠해야 한다. 반도체 관련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지, 연관된 중소기업과 연구기관 등 생태계가 있는지가 핵심이 될 것이다. 우리가 당장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을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정 후에 당장 삽을 뜰 수는 있는지, 최첨단 기술을 이끌 선도 기업은 있는지, 그 저변을 이루는 관련 기업이 많은지 등이 관건일 것이다.

 

이 모든 부분을 고려해봤을 때 결국 인천을 빼놓고는 전쟁에 나설 준비를 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모든 첨단산업 물류의 핵심인 공항이 있고, 반도체 핵심기술로 부상하고 있는 첨단 패키징 분야의 가장 큰 글로벌 마켓이다. 지형상 가장 유리한 곳이다.

 

반도체 기술연구에 가장 앞서 있는 성균관대가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데 인천과 한편이 됐고 인하대 등 지역 명문대도 함께한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등 국책 연구기관 등이 뿌리기업의 연구개발(R&D)을 지원한다. 자원도 월등히 많다.

 

이런 자원을 바탕으로 세계 2위(엠코), 3위(스테츠칩팩) 첨단 패키징 글로벌 기업이 선도에 서고, 반도체 관련 1천300여개 기업이 고도의 기술전쟁에 첨병으로 나설 것이다. 더구나 특화단지를 조성할, 당장이라도 착공이 가능한 계획부지도 있다. 어느 지역보다 가장 먼저 가동을 시작할 부지다. 병력의 양에서 다른 지역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인천이 가진 자원과 병력은 한국 반도체 산업이 전쟁에 임할 때 가장 빠르고 날카롭게 즉시 전력으로 쓸 수 있는 카드다. 인천을 특화단지에 포함하는지가 한국 반도체 산업이 총알이 빗발치는 세계 전쟁에 비로소 나갈 준비가 돼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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