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우리나라를 선진국그룹으로 변경했다. 1964년 UNCTAD 설립 이후 최초 사례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약 1조8천억달러로 세계 10위다. 아프리카 55개국 GDP를 합한 것과 같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이면서 인구 5천만명 이상인 3050클럽에도 가입했다. 일본, 독일, 미국,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에 이어 일곱 번째다.
화려한 경제 규모 뒤에는 어두운 그늘도 많다. 2022년 합계 출산율 세계 꼴찌. 유리천장지수 11년째 꼴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행복 순위와 산업재해 사고사망자 비율도 나란히 뒤에서 네 번째와 다섯 번째를 차지했다.
노동부는 2022년 산업재해 사고사망자가 874명, 1만명당 0.43명이라고 밝혔다. OECD 38개국 중 34위 수준의 최하위권이다. 안전만큼은 후진국이라 해도 딱히 할 말이 없다. 최근 사업주 대상 교육에서 영상을 보여주며 사고의 원인에 대해 질문했다. 대부분이 근로자의 부주의, 즉 불안전한 행동을 선택했다. 일부는 정부가 근로자에게는 관대하고 사업주에게만 엄격하다며 날선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심리학 이론 중 ‘동조(同調)’ 현상이 있다. 집단의 압력에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 상품의 유행, 밴드왜건 효과, 왕따가 되기 싫어 왕따를 하는 것 역시 동조 현상의 일부다.
미국 심리학자 솔로몬 애시는 한 실험으로 ‘동조’를 증명했다. 7명의 실험자에게 하나의 선이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고 길이가 다른 선분 세 개가 그려진 다른 카드를 제시한다. 두 번째 카드에서 첫 번째 카드의 선분 길이와 같은 것을 선택하게 했다. 이 중 6명에게는 고의로 오답을 말하게 한다. 나머지 1명은 혼란스럽다. 누가 봐도 답은 명확한데 6명 모두 오답을 얘기하자 이 1명 역시 결국 오답을 말하게 된다. 혼자 있는 상황의 정답률은 99%지만 집단 상황에서는 63%로 하락했다.
안전관리도 마찬가지다. 안전한 행동은 주변 사람의 행동에 강하게 영향을 받고 개인적 판단보다 다수의 의견과 행동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더욱 동조 현상이 뚜렷하다.
안전은 일종의 문화다. 동료들이 불안전하게 작업하는데 나만 안전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우리 사업장의 모습은 어떤지 떠올려 보자. 시설·설비가 안전하지 않고 공정의 압박에 시달리는 불안전한 상태에서 불안전한 행동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사업주들이 지목한 ‘근로자 부주의’는 틀렸다. 안전관리에 있어 ‘기계는 고장날 수 있고 인간은 실수할 수 있다’가 전제돼야 한다. 갑작스러운 기계의 오작동과 작업자의 실수에 대비해 사업주는 안전장치를 설치하고 근로자는 보호구 착용과 안전수칙을 준수해야 한다. 이런 모습의 동조가 조직에 스며들면 안전은 비로소 문화로 정착된다.
내년 1월27일부터 5인 이상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 사업주는 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하고 이행해야 한다. 하나의 문화로서 안전이 절실한 시점이다.
만년 꼴찌였던 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레이스가 강팀이 된 것처럼, 월드컵 4강 신화의 히딩크호처럼, 국민소득 67달러에 불과했던 나라가 경제대국이 된 것처럼 꼴찌에게는 희망과 저력이 있다. 이제 안전에 있어서도 꼴찌의 반란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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