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동네의 대소사를 치를 때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함께 도왔다. 초상이 나면 남정네들은 지관을 앞세워 산소 자리를 팠다. 아낙네들은 부엌에서 문상객에게 대접할 음식을 장만했다. 마당에서는 돼지를 잡고 과방에서는 제사상에 올릴 과일이며 과줄을 높이 쌓아 올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또 다른 곳에서는 남자들이 관을 짰다. 솜씨 좋은 아낙네들은 망자에게 입힐 삼베옷을 만들었다. 염을 하는 사람이 삼베옷을 곱게 입혀 입관하면 초상집 분위기는 절정에 이른다.
아버지는 염(殮)장이셨다. 먼 길 떠나는 분을 단장하고 삼베옷을 입혀 주는 것이다. 솜씨가 좋았는지 동네 어르신들은 술자리에서 농담 삼아 염을 부탁하고는 했다. 어떤 어르신은 아버지가 입혀 주는 옷을 입고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듯했다.
나는 아버지가 염하는 것을 영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아버지, 그 일은 이제 다른 사람들한테 맡기세요. 염을 하시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래요” 하고 투정을 부렸다. 그러면 “난들 하고 싶어서 하는지 아느냐. 궂은일을 할 사람이 없으니 내가 하는 것이여. 궂은일 할 사람이 없으면 그 많은 귀신 옷도 못 입고 먼 길을 떠날 텐데 그러면 쓰겠느냐”고 하신다. 어떤 때는 요령(搖鈴)을 잡고 상여 행렬을 이끄는 모습을 자주 봤다. 목격할 때마다 나는 창피해 친구들의 손을 이끌고 먼 길을 돌아다녔다.
아버지는 재 너머 하천변의 자갈밭을 일궈 수천평을 직접 경작하셨다. 장마철만 되면 농작물이 범람한 물에 모조리 쓸려 나가면 아버지는 또다시 밭을 일궜다. 나는 그러시는 아버지가 못마땅했다. 불평하는 나에게 “사람이 욕심을 내면 쓰겠느냐. 하늘이 주는 것만 거둬 먹고살면 되는 것이여. 그래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는 굶어 죽게 하지 않는 법이다”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자갈밭 한구석에는 참외며 수박, 오이를 심었다. 큰물이 지나가면 아버지는 넘어진 줄기를 다시 세워줬다. 물을 길어다 진흙투성이인 잎을 닦아 주고 넘어진 줄기는 기둥을 세워 묶어 주면 힘을 내서 제법 잘 자라 줬다. “실한 놈 몇 지게만 건지면 그만이여”라고 하셨다.
아버지가 먼 길 떠나실 때 문상객이 줄을 이었다. 그때 비로소 나는 아버지가 바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길게 늘어선 만장대를 보고서 그래도 아버지가 잘 살다가 가셨다고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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