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산업재해 후진국에서 벗어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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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 경기도 노동정책전문관

K-컬처 열풍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는 한국의 문화를 배우기 위해 열광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의 산업현장에서 매년 500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부끄럽다. 이로 인한 직간접적인 경제적 손실은 지난 2021년 기준 무려 32조2천억원으로 추정된다.

 

올해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처법)이 시행된 지 1년을 맞이한 해다. 기대효과를 논하기엔 성급한 측면도 있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여전히 산업현장의 참사는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고 사업주들이 생명경시 도덕불감증에 빠졌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안전예산 확충과 안전부서 신설, 안전교육 강화 등 나름대로 과거와 다른 기업 내 조치들이 있어 분명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및 지자체,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취지가 무색하게도 우리나라는 매년 2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숨지고 있다. 한국의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산재사고 사망자 수)은 8년째 0.4~0.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4위다. 산업재해율 역시 2018년 0.54%, 2019년 0.58%, 2020년 0.57%, 2021년 0.63%로 상승 추세다.

 

왜 추락·낙하·붕괴 등 후진국형 중대재해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걸까? 우리나라 중대재해 피해자의 80%는 바로 하청노동자들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제조업, 건설업 등 소규모 사업장에 집중돼 있다.

 

조금씩 줄어들던 산업재해는 IMF 외환위기 이후 모든 산업에 걸쳐 확산됐다. 아웃소싱, 외주화, 파견, 도급 등 간접고용이 노동시간 쥐어 짜기, 안전관리비 쥐어 짜기, 납품공기 쥐어 짜기, 더 나아가 하청에 재하청 산업구조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을과 을끼리의 출혈경쟁이 ‘산업재해의 원흉’이다.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처벌 위주의 정책은 산재 은폐를 더 교묘하게 만든다.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먼저 인건비 따먹기식 불법 재하도급 엄단이 필요하다. 모든 산재예방 노력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또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확대·강화를 통한 자율안전 기업문화를 정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업들에 각종 인센티브 제공도 뒤따라야 한다.

 

이어 중대재해의 80% 이상이 발생하고 있는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관리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는 ‘근로감독’ 권한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의 노동안전지킴이 육성 및 활동사업이 모범적 사례다. 아울러 건설현장 및 조선소 등 실질적인 채용 및 인력관리를 하고 있는 팀·반장에 대한 정기적인 유급 특별안전교육 등 관리가 필요하다.

 

더불어 사업주 오너들의 안전교육도 의무화해야 한다. 사업주들의 안전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목숨은 항상 위협 받을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산업재해 유무에 따라 각종 입·낙찰 시 절대치로 반영하는 법안 개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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