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죽이는 민자협약 때문에 죽어나갈 지경입니다. 지역 상권을 보호해야 할 안양시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손놓고 있습니다."
‘임대 문의’. 안양1번가 지하상가 쇼핑몰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문구가 적힌 딱지와 현수막 등이 쉽게 눈에 띈다.
코로나19 장기화 여파에다 안양1번가 지하상가 민자협약에 따라 임대료·관리비가 크게 오르면서 빈 상가가 늘어서다.
안양1번가 지하상가 위기감은 상인들의 입에서부터 나오기도 한다.
안양1번가 지하상가 상인 2명 이상이 모이면 다른 상권으로의 이른바 ‘탈출각’을 재고 있다는 말이 농담 삼아 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의류점을 운영 중인 A씨는 “고객도 없는 데다, 임대료와 관리비가 소비자 물가지수 변동분을 반영토록 돼 있어 매년 크게 올라 이곳을 떠나는 상인들이 늘고 있다. 상인들 사이에서 ‘언제 탈출하냐’며 서로 물어보곤 한다”고 토로했다.
현재 안양1번가 지하상가는 소비자물가 지수변동분을 반영해 임대료·관리비를 조정토록 실시협약이 체결됐다.
이 때문에 상인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못한다는 볼멘 소리가 니온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평균 5%로 이대로라면 5% 이상의 임대료와 관리비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안양1번가 지하상가 상인회 측은 “정부는 공유재단에 대한 소상공인 임대료 인하 정책을 펼치는 상황에서 시는 민자협약이라는 이유로 높은 임대료 인상률을 소상공인들에게 부담을 떠 안기고 있다”고 하소연 했다. 이어 "부당하게 맺어진 협약을 파기하고, 안양시가 지하상가를 인수해 ‘소상공인 보호’, ‘지역 상권 보호’ 등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 민자 실시협약 때문에…위기 놓은 안양1번가 지하상가
안양1번가 지하상가가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
안양시와 지하상가 운영사업자간 맺은 민자협약으로 인한 높은 임대료 여파로 공실률이 30% 이상을 웃돌며 활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에 상인들은 ‘시가 안양1번가 지하상가를 인수해 직접 운영해달라'고 요구하는 반면, 시는 ‘민자협약’이라는 핑계를 대며 손을 놓고만 있는 상황이다.
13일 안양시와 장명희 안양시의원(더불어민주당) 등에 따르면 시는 2004년 안양1번가 지하상가에 대한 민자사업시행자를 모집, 사업시행자로 A건설을 선정했다.
지난 1995년 안양역 지하도상가가 재난위험시설물 D등급을 판정받자 이를 재탄생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이에 A건설은 신규 법인인 ‘안양역쇼핑몰’을 설립, 총 434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지하상가를 재조성한 뒤 2006년 3월 상가 409곳이 조성된 지금의 안양1번가 지하상가가 재탄생하게 됐다.
시는 안양역쇼핑몰과 실시협약을 맺은 뒤 시설은 시에 귀속하고, 시설관리 운영권은 2029년 3월28일까지 안양역쇼핑몰이 갖게 됐다.
이처럼 민자 실시협약으로 그 폐해가 고스란히 상인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양1번가 지하상가 재탄생에 따른 높은 비용을 맞추려다 보니 처음부터 지하상가 임대료와 관리비가 높게 책정됐다는 것이다.
안양1번가 지하상가 공실률은 ▲2018년 16.6% ▲2019년 17.9% ▲2020년 24.8% ▲2021년 30.6% ▲2022년 31.9% 등 매년 늘고 있다.
또 안양1번가 지하상가의 임대료는 2020년 3.3㎡당 57만4천179원에서 2022년 60만1천957원으로 인상됐고, 관리비 또한 21만2천210원에서 22만2천473원으로 올랐다.
반면, 안양도시공사가 관리·운영 중인 중앙지하상가의 임대료는 2020년 3.3㎡당 51만9천610원에서 2022년 50만5천300원으로 내렸다.
이처럼 안양1번가 지하상가 상인들의 시름은 깊어지는 상황이지만, 지역 소상공인을 보호해야할 시는 이를 살릴 뾰족한 대책이 없다.
시는 안양역쇼핑몰㈜과 임대료·관리비 인상율 협의를 위한 간담회를 진행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또 임대료 감면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말 그대로 추진 중인 상황이다.
특히 시는 지하상가 매입에도 난색을 표하는데, 지하상가 인수는 민간사업자에게 중도해지 지급금을 지급해야 하고 이에 대한 부담으로 매입이 어렵다는 이유다.
시 관계자는 “안양역쇼핑몰과 공실률 최소화 방안, 임대료 감면 등을 위해 협의에 나서고 있다”며 “유관 기관 및 각 부서와 협의해 공실 최소화에 노력하곘다”고 밝혔다.
■ 지역 정치권, “안양시가 안양1번가 지하상가 실시협약 재조정해야”
안양1번가 지하상가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지역 정치권은 시가 지하상가 실시협약 재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상권을 살릴 수 있는 대단위 프로젝트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양시민의 자랑인 지하상가의 활성화가 만안중심 상권 활성화와 직결된 데다, 원도심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이라는 이유에서다.
장명희 시의원은 “건설사들이 민자사업에 뛰어들어 완공 후 지분을 넘기고, 이들은 영업이익보다 고금리 이자수익에 더 열중해 그 피해가 지자체나 시민들에게 전가됐던 이른바 ‘민자 먹튀’가 안양에서도 일어났다”며 “지금이라도 시가 상인들에게 과도하게 임대료와 관리비가 부과되도록 설계돼 있는 실시협약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20년 전 시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정책 결정으로 민간투자회사가 이익을 내기 위해 오히려 상인들이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며 “시는 시민의 편에서 실시협약을 재조정하기 위해 적극적인 협의를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강득구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안양 만안) 역시 시의 무책임한 정책으로 시민의 자랑이던 지하상가가 위기에 놓였다며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를 살리기 위해 지하상가는 물론 이 일대 상권 활성화를 위한 종합적인 프로젝트를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의원은 “시는 지하상가를 살리기 위해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지하상가를 비롯한 안양1번가, 중앙시장, 남부시장, 댕리단길 등을 아우르는 만안 원도심 상권 활성화에 시가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대단위 프로젝트를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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