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도의회 ‘여야 동수’ 민생정치 공진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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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길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회 의원

라이벌은 라틴어로 ‘리발리스(Rivalis)’다. 그 뜻은 ‘다른 사람과 같은 하천을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공생관계다. 그런 의미에서 경기도의회 여야 의석수 동석은 황금분할에 가깝다. 이는 도민들이 부여한 민의(民意)다. 따라서 여야 모두에 협력과 건전한 길항관계, 이를테면 공진화 관계로 도민을 위해 봉사하라는 의미가 있음을 시사한다.

 

그 후 여야 두 진영 중 도민들의 의사에 반하는 의정활동을 한다면 다음에는 신상필벌로 의석수를 조정해줄 것이다. 시대정신에 맞지 않은 의정활동으로 도민 의사에 반하는 진영은 퇴출의 쓴잔을, 도민의 의사에 부합하는 정당은 웃는 자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도민들은 여야 정치권에 그리스 속담 ‘악마와 다리 건너기’를 요구한다. 다리 이쪽은 절망과 불행의 땅이고 다리를 건너가면 희망과 행복의 땅이다. 그런데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악마와 손을 잡아야 하고 우리 편만 건너려고 하면 다리가 무너지게 돼 있다는 내용이다. 이는 여야가 협력과 협치를 통한 건전한 공진화 관계를 지향해야 함을 시사한다.

 

민주주의가 원래 시끄러운 것이지만 관리되지 않은 갈등은 위험하다. ‘한국 정치가 산업화 민주화 다음에 선진화가 아니라 퇴진화로 가고 있다’는 유명 언론인의 말은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 분야 갈등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국 중 3위인 데 반해 갈등관리 능력은 27위로 바닥권이다.

 

경기도는 국내 광역단체 중 규모가 가장 크다. 그만큼 도민들의 요구와 이해 조정 폭이 넓고도 깊다 보니 정교한 ‘예술의 정치’가 요구된다. 지금까지 진영의 입맛에 맞게 처리하는 ‘편향동화’가 없었는가? 도의원으로서 최후의 거소(居所)인 언어의 진실성과 공공성을 해체한 일은 없었는가? 이 같은 질문에 여야 진영을 떠나 곪아 가는 상처를 건드리는 논쟁은 아프지만 건설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일컬어 개발도상국의 전범(典範)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1961년 고려대생 377명의 설문에 의하면 응답자의 86%는 ‘서구 민주주의는 한국에 적용될 수 없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설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민주주의지수 2021’에 따르면 한국은 167개국 중 16위에 올랐다. 5년 만에 ‘완전한 민주국가(Full democracy)’ 대열에 합류한 한국은 지난해 7단계 상승하면서 2년 연속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아주 자랑스러운 뉴스다.

 

현대사회의 특성상 인공과 가공의 세상과 떨어져 사는 아마존 원주민들처럼 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류문명의 발달과 함께 사회는 다양한 계층과 각양각색 스펙트럼의 구성원들로 이해관계가 상충돼 있다. 이렇다 보니 대화와 소통, 이해 조정, 합리적인 제도 등이 뒷받침돼야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서양 속담에 ‘탱고를 추기 위해선 둘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야가 타협과 조정은 안 하고 명분과 취지가 좋으니까 군말 없이 따르라는 건 ‘정의의 독점 행위’이고 독선일 뿐이다. 신념과 투쟁은 넘치는데 책임과 해결은 결핍된 의회문화는 정상이 아니다.

 

11대 의회는 의석수가 말해주듯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생산적인 의회문화를 정립하라는 도민들의 명령이다. 새해에는 ‘구동존이(求同存異:차이점을 인정하면서 같은 점을 추구한다)’의 의회문화 조성 및 정착을 위한 의원 개개인의 우직한 항심(恒心)을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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