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비를 맞으며 숱한 인파가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더러 넋을 잃은 이도 보였다.
▶TV를 통해 목격한 군중의 행진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특별한 목적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야말로 ‘빗속의 엑소더스’였다. 도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걸까.
▶외신은 중국 허난(河南)성 북부 정저우(鄭州) 폭스콘 노동자들의 탈출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해당 도시는 황허강 남쪽 기슭에 있다. 고대 은(殷)나라 때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방적·기계공업도 발달했다. 이곳에 위치한 폭스콘에선 전 세계 아이폰의 70%가 생산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저우가 코로나19 확산으로 봉쇄됐다. 그러자 노동자들이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공장을 탈출해 귀향길에 오르고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시작됐다. 인근 주민들은 길거리에 음식을 놓아 뒀다. 이들에게 끼니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배낭을 메고 짐 가방을 끌며 길을 걷는 젊은이도 수두룩했다. 폭스콘 공장 주변이 봉쇄되면서 대중교통도 운행되지 않고 있어서다. 짐을 짊어진 채 도로를 따라가거나 밀밭을 가로질러 하염없이 걸어간다. 도중에 2m 높이의 철조망을 넘어간 사연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고 있다.
▶일부 지방정부는 이들을 차량에 실어 데려가기도 했다. 폭스콘 측도 “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해 당국과 협의해 차량을 지원하는 등 안전한 귀향을 돕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지방정부는 유전자증폭(PCR) 검사 결과 음성판정서가 있어야 한다며 통제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번지는 것을 우려해서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폭스콘을 떠나도록 허용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지금도 공장 측은 이들이 떠난 생산 라인을 메우기 위해 주변에서 수시로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 천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노동자들이 되레 푸대접 받는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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