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환의 노래 중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라는 게 있다. 30년 전쯤 노래다. ‘앞치마를 질끈 동여매고 부엌으로 가서 놀자. (중략) 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자. 접시 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라는 가사가 나온다. 이때만 해도 설거지하는 남편이 드물었는데, 부엌일을 함께하자는 말을 ‘접시를 깨자’고 표현한 것이다.
공직사회에 ‘접시깨기’ 행정이란 게 있다. 새로운 일에 손을 댔다가 실패해 문책을 당하느니,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라는 공직자들의 보신주의를 지적하는 말이다. 일하다 실수하는 것은 용납할 수 있으니 접시 깨는 시행착오를 두려워 말고 적극적으로 일하라는 주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신년 업무보고에서 “설거지를 하다 보면 손도 베이고 그릇도 깨고 하는데 그릇 깨고 손 베일 것이 두려워 아예 설거지를 안 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2020년 1월 취임사에서 “일하다 접시를 깨는 일은 인정할 수 있어도, 일하지 않아 접시에 먼지가 끼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고 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지난 7월 취임하면서 “일하다가 접시 깨는 행정은 용인하겠지만, 일하지 않고 접시에 먼지 끼게 하는 것은 참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일하다 접시를 깨더라도 도지사가 책임지겠다”며 적극 행정을 주문했다.
경기도 감사관실은 김 지사가 강조하는 ‘접시깨기’ 행정을 적용해 감사한다는 방침이다. 일하지 않아 접시에 먼지가 끼게 하는 식의 소극 행정은 문책한다. 반면 경제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위기 극복과 민생경제 회복 등 공공 이익을 위해 적극적 업무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수는 면책 적용한다.
접시깨기 행정 주문이 이어지는 것은 공직자들의 복지부동(伏地不動) 행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서 접시를 깨뜨리자는 도지사의 적극 행정 주문이나 소극 행정 문책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정권마다 접시깨기 행정 주문이 많았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열심히 일하다 접시를 깨면 피부에 와 닿게 적극 보호해줘야 한다. 시늉만 해선 안 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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