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구는 1968년 7월 선감학원에 입소했다. 당시 열 살이었다. 원아대장에는 1972년 5월31일 무단 이탈로 제적 조치됐다고 기록돼 있다. 실제는 선감학원을 탈출해 바다를 건너다 사망했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50년 만에 밝혀낸 사실이다.
지난 20일 진실화해위가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에서 여명구라는 이름이 나오자 안영호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부회장은 눈물을 쏟았다. 안씨와 여명구는 초등학교 친구였다. 백발이 돼서 친구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진 것이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 안산시 선감도에 설립됐다. ‘부랑아 교화’를 명분으로 8∼18세 아동·청소년을 강제 입소시키고 노역·폭행·학대·고문 등으로 인권을 유린한 수용소다. 이곳에선 1946년 경기도로 관할권이 이관돼 1982년 폐쇄될 때까지 지속해서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진실화해위는 최근 유해 발굴작업을 했다. 이곳엔 선감학원 관련 유해 150여구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진실화해위는 4천689건의 아동 수용기록을 확인했고, 피해 사망자 5명도 추가 확인했다. 위원회는 선감학원 사건은 “인간의 존엄과 신체 자유 등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며 정부와 경기도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
선감학원이 문을 닫은 지 40년 됐지만 피해자들은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아직도 선감학원에 있는 악몽을 꾼다는 이들은 모두 정신적·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피해자 생활·의료서비스 지원, 희생자 추모 및 기념사업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한 배·보상 특별법을 국회와 정부에 촉구하기로 했다.
선감학원 사건은 ‘아동판 삼청교육대’나 다름없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1980년대까지 잔혹행위가 있었다니 충격적이다. 늦었지만 국가폭력에 의한 대규모 아동인권유린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 다행이다. 더 세밀한 진실규명 작업과 함께 국가의 사과와 피해복구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피해자들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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