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살리자_ 평택시] 먹고 자는 것 말고 할게 없다...평택시 서부권역 ‘생활인프라 오지’

청북 주민 회화·요리 모임 꿈도 못꿔...포승읍서 극장 한번 가려면 ‘고행길’
평택지역 대형 백화점·쇼핑센터 8곳...서부엔 대형마트 1곳·멀티플렉스 0곳
대부분 쇼핑·외식·여가활동 ‘원정길’...지자체 주도 문화시설 등 대책 절실

image
평택 서부지역은 10만7천232명이 거주 중이며, 39세 이하 젊은 층이 인구의 46.92%를 차지하고 있으나 아직 영화관 조차 하나 없어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은 안중읍 현화지구 전경. 평택문화원 제공

먹고 자는 것 말고 할게 없다...베드타운 ‘강제휴식’

평택시가 급격히 발전하고 있다. 특히 평택항 등이 위치한 평택 서부권역은 고속도로 접근성이 좋고 서해선 안중역과 서부내륙고속도로가 들어설 예정이다. 또 279만2천500㎡ 부지에 아파트 2만여가구가 들어서는 화양지구 등이 조성되는 각종 개발 호재가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도시 발전에 비해 문화시설 면에선 아직 인프라가 부족, 극장 하나 제대로 없어 주민들 사이에서는 “먹고 자는 것 빼고는 할 게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평택 서부권역, 주거기능 외 문화시설 부족으로 주민 불만

#1. “평택시에서 서부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아요” 직장인 이모씨(청북읍·34)는 한숨을 내쉬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막막함부터 느낀다. 다른 지역에선 직장인들끼리 영어회화, 요리, 독서 등 소모임을 한다지만 이곳 근처엔 아무런 모임도 없다. 과거 몰타에 어학연수를 다녀온 경험을 살려 평택시 영어교육센터의 영어회화 프로그램을 수강하려 했으나 마땅치 않았다. 서부지역에선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원을 제기해 프로그램이 개설됐으나 초급과정뿐이었다. 다른 과정의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송탄과 팽성까진 차로 40~50분 소요돼 퇴근 후 참여가 어렵다. 이씨는 “이곳에서 30여년을 살았는데 그동안 들어선 것은 공장과 아파트뿐 아직 극장 하나 없다”며 “퇴근 후 영화 한 편조차 제대로 볼 수 없는 동네가 사람 사는 곳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2. 채모씨(포승읍·23·여)는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가기 위해 차량을 불렀다. 속칭 ‘콜뛰기’라 부르는 불법 사설택시다. 일반 택시는 잘 다니지도 않을 뿐더러 콜택시도 잘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면 극장까지 1시간30분가량 걸린다. 그가 사는 아파트단지 주변에 있는 것이라곤 생필품을 파는 마트와 식당 몇 곳, 학원이 전부다. 인근 상업지구는 술집·노래방이 즐비한 유흥가로 인근 산단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라 친구들과 갈 수 없다. 그나마 가까운 곳은 안중읍 현화지구와 송담지구지만 그곳엔 극장도, 친구들과 놀러 다니며 옷과 액세서리를 살 쇼핑몰도 없다. 채씨는 “취미 생활로 악기나 그림 등을 배우고 싶어도 주변에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어 결국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손뜨개질을 취미로 하고 있다”며 “다른 지역 친구들과 비교할 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적어 만나도 이야깃거리가 많지 않고, 타지에 나가면 모르는 문화가 많아 소외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image
평택 서부지역은 10만7천232명이 거주 중이며, 39세 이하 젊은 층이 인구의 46.92%를 차지하고 있으나 아직 영화관 조차 하나 없어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은 포승읍 전경. 평택문화원 제공

■ 평택 서부권역, 극장·쇼핑몰 등 전무

평택시가 인구 50만명이 넘는 대도시로 성장하고 곳곳에 신도시 개발이 이뤄지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딘 서부권역 주민들이 문화 인프라 부족 등을 호소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 7월 기준 평택시 인구는 57만3천987명이다. 이 가운데 18.68%인 10만7천232명이 안중읍·오성면·청북읍·포승읍·현덕면으로 이뤄진 서부에 거주 중이며 39세 이하 인구 비중도 46.92%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문화시설은 시청과 평택역이 위치한 남부권역이나 과거 송탄시였으며 고덕국제신도시가 위치한 북부권역에 비해 부족한 실정이다.

시에 따르면 평택 내 백화점·쇼핑센터 등 매장 면적이 3천㎡ 이상인 대규모 점포는 8곳이지만 서부엔 대형마트 1곳뿐이다. 평택 내 멀티플렉스 상영관 5곳도 모두 남부(3곳), 북부(2곳)에 있다. 인접한 안성·오산과 인접한 남부·북부와 달리 서부는 충남 아산·당진과 인접해 있는 데다 해당 지역 도심까지도 거리가 먼 편이라 영화 한 편 보기 어려운 형편이다.

문화예술회관 등 공공시설이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차이가 난다. 남부·북부문예회관에선 평택예총이 ‘평택시민예술대학’을 운영해 음악·미술·문학 등 예술 강좌를 제공한다. 반면 서부문예회관에선 아무런 강좌도 열리지 않는다. 더욱이 문화 강좌 대부분이 서부노인복지관에서 노년층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어 지역 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즐길 거리가 마땅치 않자 주민 상당수는 지역 내에서 여가활동을 포기했다. 문화생활을 즐기려면 어차피 서부를 벗어나야 하므로 평택 대신 인근 대도시에서 여가를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지원씨(안중읍·43)는 “기본적인 물품을 살 곳은 있지만 차로 30분 이내 거리에 사치·기호품 등을 살 수 있는 백화점 등 쇼핑시설이나 여가를 즐길 시설은 없다”며 “가족끼리 외식을 하거나 영화를 보려면 지역을 벗어나야 하니까 서울이나 수원, 천안으로 간다”고 말했다.

image
평택 서부지역은 10만7천232명이 거주 중이며, 39세 이하 젊은 층이 인구의 46.92%를 차지하고 있으나 아직 영화관 조차 하나 없어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은 평택시 청북신도시 전경. 평택문화원 제공

지자체 적극 개입 공공문화시설 조성 필요

서부지역 문화시설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는 여러 사안을 추진 중이다. 우선 2027년까지 공연장, 공연지원시설, 편의시설 등을 갖춘 서부문예회관을 신축할 계획이다. 또 안중시외버스터미널 부지 8천773㎡에 민·관합동사업 방식으로 영화관 등을 포함한 복합문화시설을 추진 중으로 현재 롯데시네마 등이 입점의향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공연 문제를 해소하고자 지난 3년간 서부에서 문화지대 기반 활성화 사업을 통해 서부에서 찾아가는 전시와 버스킹 공연 등을 180회 진행했다.

김보경 시 문화예술과 팀장은 “그간 제대로 즐길 문화시설 하나 없다는 불만이 많이 제기돼 왔기에 이를 해소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를 추진 중”이라며 “또 권역별 공연장 접근성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평택 중앙부인 고덕에 대규모 예술공연장인 평택 평화예술의 전당이 완공되면 문화생활 격차 문제가 점차 개선되리라 본다”고 설명했다.

다만 장기적 관점에서 추진하는 정책이 대부분이므로 공연·행사 등을 자주 개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종철 서평택발전위원회 사무국장은 “장기적으로 평택호관광단지 및 평택항 2종배후단지 개발이 이뤄지면 여러 문화·레저시설이 들어서겠지만 너무 한참 뒤의 이야기”라며 “서부문예회관이 낙후됐다곤 하나 올해 준공한 안중체육관, 소리터 등이 있으니 현재로선 시와 평택시문화재단에서 서부지역 젊은층이 향유할 수 있는 여러 공연·행사를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자체가 정책적으로 적극 개입해 문화시설 조성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범현 성결대 도시디자인정보공학과 교수는 “공공문화인프라 확충 시 재원 확보가 어렵다면 중앙정부와 매칭 사업을 통해 생활밀착형 사회기반시설(SOC)을 추진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며 “극장 등 민간영역의 시설은 정책적으로 사업타당성을 낼 여건을 마련해 사업자가 뛰어들 수 있도록 터전을 조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산단 근로자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 특성상 자칫 상업구역이 유흥시설 일변도로 조성되지 않도록 지구단위 계획 수립 시 특정 시설에 대해 불허하는 조건을 달거나 계획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청소년 유해시설 등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평택=최해영·안노연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