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방자치=지방쌀치

image
김충범 경기도 농정해양국장

유난히 무덥고 비가 많이 내린 올해 여름도 이제 입추와 처서를 지나면서 완연히 가을을 예고하고 있다. 자연의 시계는 어김없이 쌀 수확의 시간이 가까워졌음을 알게 한다.

불과 한 세대 전 만해도 쌀이 떨어지고 보리가 수확될 때까지 보릿고개라는 단어가 일상이었으나 벼 품종과 재배기술 향상을 통해 많은 나라들이 가뭄과 전쟁 속에서 식량난에 허덕일 때도 우리나라는 쌀 걱정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해마다 쌀의 재고 증가와 과잉 생산을 걱정하는 단계에 와있다.

연이은 풍년 속에서 쌀 소비는 줄어들면서 가격은 떨어지고 재고량이 쌓여가고 있다. 도의 쌀 재고량은 7월 말 기준으로 전년도에 비해 117% 증가한 5만1천800t인데 현재 판매 속도라면 올해 말이 되어서도 재고가 남는 지역이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쌀값 또한 2021년 12월 7만3천400원이었던 경기미 20㎏ 평균 소매가격이 올해 7월 말 기준 6만2천500원으로 떨어졌다.

역사 속 이야기이지만 지금의 쌀 가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효녀 심청이는 아버지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바다로 떠났다. 쌀 한석을 요즘 무게 단위로 환산하면 134㎏ 정도 된다. 쌀 20㎏ 한 포대의 값을 5만원 정도로 계산해보면 1석은 33만5천원 정도 되고, 300석은 1억50만원이 된다. 한 사람의 목숨이 과연 이 가격일까. 조선시대 경국전에 보면 영의정은 연봉(녹봉) 100석 정도를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마저도 조선 후기로 갈수록 녹봉의 양은 작아진다고 하는데 100석이면 3천350만원이다. 영의정의 연봉이 이 수준이면 적당한가. 쌀의 가격은 얼마로 하는 것이 맞나.

쌀의 영향력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쌀의 영향력과 파괴력은 매우 크다. 여전히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쌀의 생산량과 가격에 따라 농민, 미장원, 식당, 마트 등으로 지역의 살림살이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쌀 생산과 소비에 대한 성적표는 나라의 안정과 번영에도 큰 변수가 되고 있다. 더군다나 기후 온난화가 심화되고, 특히 코로나로 인해 쌀 수출금지를 선언하는 나라가 생기고 러-우 전쟁 등으로 인해 먹거리 값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쌀은 개인과 지역 살림에 큰 위협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쌀은 지방자치에서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지방쌀치’다.

경기도는 민선 8기에 들어서서 비상경제 상황 하에 있는 농어업인과 도민의 삶의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하여 가격이 폭등한 농어업용 면세유와 비료에 대한 긴급 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추석, 김장철을 포함해 연말까지 도에서 생산된 농수산물, 특히 쌀을 구매할 때 대폭 할인된 금액에 구입할 수 있도록 234억원의 예산도 추경으로 마련했다. 이와 함께 쌀의 생산과 소비 전반에 걸쳐 임시방편식이 아닌 경기도 상황에 맞는 입체적인 대응책도 준비하고 있다. 쌀은 그만큼 중요하다. ‘지방쌀치’다.

김충범 경기도 농정해양국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