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흔들리는 영국

한때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지구촌 곳곳에 식민지가 있어 국기가 24시간 내내 걸려 있어서였다. 남미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대륙에 이 나라의 영토가 있었다. 영국 얘기다.

▶그랬던 나라가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다. 두 자릿수 물가상승률을 기록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외신은 이 나라의 7월 소비자 물가지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1% 뛰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여파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이 겹친 결과로 풀이된다.

▶영국은 주요 7개국(G7) 중 물가가 가장 빨리 오르고 있다. 미국(8.5%), 이탈리아(7.9%), 캐나다(7.6%), 독일(7.5%), 프랑스(6.8%) 등 G7 국가 가운데 가장 가파르다. 내년 성장률도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등 전망도 어둡다. 그동안 전기·가스 등 에너지 요금이 물가를 끌어올렸지만, 지난달에는 빵, 시리얼, 우유 등 밥상물가가 무려 12.7%나 뛰었다.

▶가스와 석유 등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이 세계적인 화두가 됐다. 경기는 침체하면서 물가는 오른다는 스태그플레이션도 우려되는 시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겹쳐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가 요인이라는 분석에도 무게가 실린다.

▶에너지 요금이 또 상향 조정되면서 물가지표가 더 뛸 것으로 보인다. 브렉시트 이후 해외 인력이 빠져나가면서 일손이 부족해지고 공급망에도 구멍이 뚫렸다. 섬나라여서 식품부터 많은 재화를 수입하는데 브렉시트로 수입절차가 복잡해지거나 관세가 붙고, 파운드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수입물가가 올라갔다. 애던 포즌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장은 영국 물가상승률이 높은 이유의 80%는 브렉시트와 관련됐다고 지적했다.

▶정치권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노동당은 내년 4월까지 에너지 요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놨다. 관련 비용은 290억파운드(46조원)로 추정됐다. 영국 정부는 기존의 에너지요금 지원 등만 되풀이한다. 다음 달 5일 신임 보수당 대표와 총리를 선출한 후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유력 후보인 리즈 트러스 외교부 장관은 감세 방안까지 제시했다. 브렉시트의 저주일까. 결코 남의 나라의 얘기가 아닌 것 같아 씁쓸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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