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반지하 주택

2020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영화 ‘기생충’에 나온 주인공 가족의 집은 반지하였다. 반지하에 사는 일가족이 폭우로 물을 퍼내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그려졌다. 당시 외신은 한국의 ‘반지하(Banjiha)’를 집중 조명했다. 반지하 거주자들을 인터뷰하고, 실상을 보여줬다. 영국 BBC는 ‘서울의 반지하에 사는 진짜 사람들’이라는 르포 기사를 보도했다. “영화 ‘기생충’은 허구의 작품이지만 ‘반지하’는 그렇지 않다. 서울에는 수천명의 사람이 여기에 산다”고 했다.

최근 반지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 8일 수도권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많은 피해가 있었고, 서울에서 반지하가 물에 잠겨 빠져나오지 못한 일가족이 사망했다. 외신들은 ‘반지하(banjiha)’라는 고유명사를 사용해 예방 대책의 부재가 키운 인재라고 지적했다.

수도권 주택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1970년대부터 들어선 반지하는 아직까지 도시 저소득층 주거를 대변한다. 반지하 공간은 환기가 안 되고 습기 제거를 못해 건강을 위협한다. 실제 거주자들에게 호흡기와 피부 계통 질환이 많다. 침수 시에는 물이, 화재 시에는 연기가 빠지지 않아 안전사고에도 위험하다. 이에 정부가 거주지로서 반지하를 지양하겠다는 대책을 여러 차례 내놨다.

반지하 가구수는 감소 추세다. 통계청의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총 32만7천가구가 반지하를 포함한 지하에 거주한다. 2005년 58만7천가구, 2010년 51만8천가구, 2015년 36만4천가구에서 감소했지만 아직도 많다. 남아 있는 반지하는 노후화도 심각하다.

이번 침수로 일가족이 사망하자 경기도와 서울시가 반지하 주택을 없애 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나온 정책으로 새삼스럽지 않다. 문제는 반지하 거주자들이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현재 반지하와 비슷한 수준으로 저렴하면서도 살 만한 주거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수도권 도심에서 대안을 찾기 쉽지 않다. “반지하에 살면 안 좋은 건 알지만, 갈 곳이 없다”는 거주자들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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