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법석이다. 미국 내 의전서열 4위 정치인의 방문을 놓고 말이다. 해당 인사의 동선을 따라 항공모함도 이동했다. 외신들도 분주하다. 이 인사의 첫 도착지는 싱가포르다. 총리가 버선발로 마중 나왔다.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미국 하원의장의 아시아 순방 얘기다. 그녀는 캘리포니아를 지역구로 둔 다선 의원이다. 미국 내 대통령과 부통령, 주지사(해당 주에서) 다음으로 의전서열이 높다. 연방 대법원장보다도 한 단계 위다. 우리 나이로 여든 세살이다.
▶첫 도착지인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부터 위상이 입증됐다. 국가원수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의장대 사열을 받으며 트랩을 내렸다.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인 리셴룽 총리가 펠로시 의장을 직접 맞았다. 매우 이례적이다.
▶리셴룽 총리는 펠로시 의장에게 “아시아의 평화와 안보 등에 미중(美中)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외교부도 “미국과 싱가포르 양국 간의 훌륭하고 오랜 동반자 관계를 재확인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외교적인 수사(修辭)이지만, 싱가포르 방문을 전적으로 반긴다는 뉘앙스가 담겼다.
▶리셴룽총리도 거들었다.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등을 통해 미국의 경제적 참여를 심화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겠다”. 미국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원하는 내용을 자진해 발표한 셈이다. 펠로시 의장의 다음 행선지는 말레이시아, 한국, 일본 등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맹방(盟邦)이라고 추켜세우는 한국과 일본 방문이 맨 마지막에 잡혀 있다.
무슨 의미일까.
▶이들 나라 순방이 중요한 게 아니다. 대만을 방문해서다. 중국이 눈에 띌 정도로 유난스럽게 호들갑을 떨고 있는 점이 이를 시사한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을 통해 “펠로시 의장이 대만에 간다면 중국 내정에 대한 난폭한 간섭이다. 중미관계를 심각하게 파괴해 매우 심각한 사태와 후과(後果)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만을 자국 영토로 간주하는 중국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저지하기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다. 양국 사이의 긴장 고조는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자체가 지닌 정치적 폭발성 때문이다. 바야흐로 미국과 중국이 치킨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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