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새로운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어느 가족’은 가족의 의미를 묻는 영화다. 겉보기에 3대 가족처럼 보이는 이들은 언제 어떻게 모였는지 모르지만 한 지붕 아래 함께 산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생계와 생존을 위해 뭉쳐 가족이 됐고, 할머니 하츠에의 연금을 기반으로 각자 생활비를 근근히 벌어 쓴다. 필요한 물건을 훔쳐서 조달하기도 한다. 이들은 혼인이나 혈연, 입양 등 제도가 인정하는 가족은 아니다. 대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돼 있다. ‘사랑’이 이들의 관계를 지탱해준다. 이 영화는 2018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최근의 가족은 전통적인 개념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생물학적 가족과 살지 않는 다양한 형태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친구나 애인끼리 거주하는 비(非)친족 가구수와 가구원이 지난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비친족 가구는 1년 전보다 11.6% 증가한 47만2천660가구로 나타났다. 비친족 가구는 시설 등에 집단거주하는 가구를 제외한 일반가구 가운데 친족이 아닌 남남으로 구성된 5인 이하 가구다.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같이 살거나,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가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비친족 가구에 속한 가구원 수도 늘어 지난해 비친족 가구원은 101만5천100명으로 처음 100만명을 돌파했다.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12만6천3가구로 가장 많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성인 남녀 2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6명 이상(62.7%)은 가족 범위를 사실혼, 비혼·동거까지 확대하는 데 동의한다고 답했다. 앞으로 결혼보다는 동거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 혼인·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주거를 같이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엔 각각 87.0%, 82.0%가 동의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지원은 여전히 가족 단위에 맞춰져 있다. 소득세 인적공제의 경우 호적상 배우자만 공제 가능하며, 주택청약 특별공급 등도 신혼부부 등을 상정해 지원한다. ‘새로운 가족’ 형태에 걸맞은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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