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문법] 외환위기보다 우려되는 22년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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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들이 ‘97년 외환위기’를 소환하고 있다. 국민은 불안하다. 외환위기 트라우마를 가진 우리 국민이 최근의 경제 상황에서 외환위기를 떠올리는 이유는 최근 무역적자의 지속과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의 급격한 유출, 가파른 환율 상승, 외환보유액의 축소, (국채 부도 위험에 대한 보험료에 해당하는) 국채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의 급증 등 부정적인 뉴스가 하루가 멀다고 미디어를 덮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많은 전문가나 정부 당국자 등은 약 4천4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을 보유하기 때문에 외환위기 가능성은 없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전문가와 정부 당국자 등은 진실을 외면하거나 현재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무엇보다 어떠한 위기도 같은 방식과 내용으로 반복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현재의 어려운 경제 상황의 출발점은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다. 그런데 97년 외환위기 당시 인플레이션은 외환위기로 인한 환율 폭등의 결과물이었을 뿐 아니라 금융위기를 겪은 한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 일부 국가에 국한된 현상이었다. 그리고 97년 외환위기는 대일 무역적자가 주도한 무역적자의 증가 속에 자본시장 개방 및 외환거래 자유화를 추진하면서 원화가 과대평가됐고, 그 결과 무역수지를 악화시킨 결과였다. 외환위기는 대규모 실업 양산, 가계소득 후퇴, 인플레이션, 자산가치 폭락 등을 수반했다.

현재의 경제 위기가 외형상으로는,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가 폭등에 따른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등으로 보이지만, 근본 원인은 패권 충돌과 ‘지경학적 파편화(geoeconomic fragmentation)’에 있다. 소련 해체와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자유주의 체제와 권위주의 체제라는 상이한 지각판이 연결돼 하나의 지각판처럼 움직였다. 그러나 중국 경제력의 부상과 미국 경제력의 상대적 위상 약화 등 경제력의 다원화로 잠재돼 있던 지각판 사이의 단층선을 표면으로 부상시켰다. 탈세계화라 표현하지만, 일반인에게는 자본, 상품과 서비스 교역, 아이디어, 기술의 국제 흐름에 균열을 의미하는 경제블록의 분할이 보다 실감날 것이다. 지난 40년간 통합이 생계 수준과 생산성 증대, 글로벌 경제 규모의 증가를 가져온 만큼 지경학적 파편화는 역으로 위축, 심지어 후퇴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반도의 지정학이 태평양과 유라시아 대륙 사이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군사 안보적인 지정학 측면과 만나는 경제적인 지경학 측면의 대표적인 경우가 무역이다. 무역은 경제 규모(GDP)와 거리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한국은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고) 외환위기 이후 무역흑자 기조가 정착됐다. 그리고 무역흑자 기조의 일등공신이 대중 무역흑자였다. 그러나 올해 전쟁 이후 러시아 무역적자가 증가하고 있고, 특히 5월부터는 대중 무역이 적자로 전환했다. 무역에서 지정학과 지경학의 파편화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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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 경제의 현재 어려움이 대내적으로는 인플레이션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무역적자 등에 기인하고 있는데 둘 다 패권 충돌에 따른 지경학적 파편화의 결과라면 이 어려움은 일시적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즉 대내적으로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으로 가계 (실질 및 가처분) 소득의 후퇴와 (주식-부동산-코인 등) 자산가치의 감소, 소비와 성장 둔화, 대외적으로 무역적자와 외국인 자금의 이탈로 성장 둔화와 환율 상승과 보유 외환의 감소, 한국 경제에 대한 해외투자자의 부정적 시선의 증가라는 악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외형상으로 이러한 어려움은 다른 나라와 유사하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차이들이 존재한다. 첫째, 환율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오래갈 수 있다는 점이다. 환율의 빠른 상승으로 유류세 인하나 국제 유가 하락 효과가 거의 없는 이유다. 악순환이 작동한다면 환율 추세를 바꾸기 어렵다는 점이다. 내국인 사이에서도 달러 사재기가 확산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 와중에 정부는 외환거래 사전신고 폐지를 추진함으로써 환율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둘째, 유동화시키기 어려운 부동산 자산 비중이 너무 높다는 점이다. 미국은 주식가치가 주택가치보다 약 1.2배 큰 반면, 한국은 거꾸로 주택가치가 주식가치보다 2.4배 이상 크다.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시 부동산시장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부동산시장 경착륙은 가계 파산, 금융회사 부실, 경기 침체, 실업 증가 등을 낳을 것이다. 무엇보다 (태평양 지각판과 유라시아 지각판 사이의 단층선인) 한국은 단층이 활성화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국가든 국제 규범 위반하고 질서 존중 안 하면 규탄하고 연대해서 제재가 필요하다”며 윤석열 정부는 단층을 앞장서 활성화시키고 있다. 위기의 악순환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97년 외환위기가 ‘심근경색형 충격’이었다면 이제 시작인 22년 위기는 ‘골병형 충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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