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우영우’ 신드롬

형이 이상했다. 호텔이 낯설어서였다. 잠이 오지 않는지 밤새 전화번호부만 들척거렸다. 이튿날 아침 커피숍에서 음료수를 주문받는 여직원의 명찰을 보고 그녀의 전화번호를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지난 1989년 개봉됐던 영화 ‘레인맨’의 명장면이다. 자폐증 환자를 형으로 둔 동생의 이야기가 얼개다. 동생은 아버지와의 불화로 형과 가출했다. 아버지는 재산을 형에게만 물려주고 사망했다. 방황이 시작됐다. 관객들은 자폐증을 앓는 형의 천재성에 눈을 뜬다. 베리 레빈슨 감독이 연출했다. 형은 더스틴 호프만, 동생은 톰 크루즈가 각각 연기했다. 더스틴 호프만의 명품 연기가 빛났던 작품이었다.

▶요즘 자폐증을 앓는 여성 변호사가 주인공인 국내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기고 있다. 극중 주인공의 이름을 담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얘기다. “아, 괜찮습니다. 저는 그냥 보통 변호사가 아니니까요”. 드라마 초반 대사부터 남다르다. 장애를 밝히고 다름을 인정한다. 장애를 가진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을 예전 작품보다 진일보한 모습으로 다루고 있다.

▶자폐성 장애인이 주인공인 콘텐츠는 이 드라마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5년 개봉한 영화 ‘말아톤’은 자폐증을 가진 청년이 마라톤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렸다. 몇년 전 방영됐던 드라마 ‘굿닥터’는 비슷한 장애를 앓는 젊은이가 대학병원 소아외과에서 천재 의사로 활약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밖에도 영화 ‘증인’(2019년 개봉)과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2020년 방영) 등에도 자폐성 장애를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예전 작품들과는 다르다. 장애인이 보호가 필요한 인물이 아니라 사회에서 제 몫을 해내는 독립적 인물로 묘사됐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평범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렸다. 자폐증을 가진 사람도 우리와 같다는 걸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드라마는 자폐성 장애 주인공의 시선도 충실히 따라간다.

▶주변 인물들도 유사한 소재를 다룬 콘텐츠들과는 차별화됐다. 종전까지는 주인공을 시샘했지만, 이 작품에선 주인공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장애를 대하는 시선의 폭도 넓어졌다. 근사한 드라마 한편이 폭염에 찌들은 서민들의 무거운 어깨를 토닥거려 주고 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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