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냉장고 파먹기

많이 채운다. 있는데도 또 채운다. 어떤걸 갖고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채운다. 언젠가 사용할거라며 계속 채운다. 냉장고 안의 식재료들이 그렇다.

냉장고 없는 집이 없다. 크기도 상당히 커졌다. 두대 있는 집도 많고 냉장고와 김치냉장고를 함께 가진 집도 많다. 정리를 잘 해놓은 집도 있지만, 상당수는 냉동실 문을 열면 쏟아질 듯 온갖 식재료가 그득하다. 깊숙하게 들어있는 냉동식품 중에는 몇년씩 된 것도 있다.

요즘 냉장고 속의 식재료들이 슬슬 나오고 있다. ‘냉파’ 열풍(?) 때문이다. 냉파는 ‘냉장고 파먹기’의 줄임말이다. 물가 상승에 큰 영향을 받는 식비를 줄이기 위해 냉장고 안의 재료들을 활용해 음식을 해먹는 것을 의미한다. 냉파는 식비도 줄이고, 냉장고 정리(또는 청소)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릴 때 모임이나 외식을 자제하면서 냉파가 유행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뜸하더니만, 최근 다시 부활했다. 물가가 겁나게 오른 탓에 장보기가 부담스런 주부들이 식비를 아끼기 위해 냉장고 속 재료들로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일종의 ‘짠테크’다.

블로그나 SNS에는 냉파를 실천하는 사례가 많이 올라온다. ‘식비절약·무지출 일주일째 냉파 집밥’ 같은 식으로 글과 요리 사진을 게재하는 이들이 있다. 냉장고 속 재료로 음식을 하는 ‘냉파 콘테스트’도 있다. 처치하고 싶은 재료와 냉파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넣으면 온갖 정보가 넘친다. 쉬운 예로 얼린 잡채는 굴소스와 찬밥만 더하면 잡채볶음밥이 되고, 얼린 사골국과 냉동만두는 만두국으로 먹을 수 있다.

냉장고 파먹기로 장보러 가는 횟수나 인터넷 구매가 줄고, 불필요한 쇼핑을 자제하게 됐다고 한다. 무(無)지출로 며칠 버티는 날도 생겨 흐뭇하다는 소감도 있다. 냉장고 파먹기는 생활비를 아끼고, 음식물쓰레기가 줄어 환경보호에도 일조한다. 꽉 차있던 냉장고에 여유가 생기니 냉장 효율이 좋아져 전기료도 절약된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에 냉장고는 가벼워지지만 서민들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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