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글루미 홍콩

한 사내가 아파트로 이사를 온다. 비슷한 연배의 아낙네도 입주한다. 그녀의 남편은 해외출장이 잦다. 사내는 여인에게 눈길이 간다. 이들의 배우자들도 엇갈린 인연을 쌓는다. 둘은 서로에게 끌린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연정을 품는다. 출발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이었다. 만남이 이어지면서 마음의 상처도 아물어져 간다. 사내는 평온을 되찾고, 무협소설도 다시 쓴다. 요즘처럼 장마철이면 떠오르는 어떤 영화의 얼개다.

▶작품의 무대는 파스텔 톤의 한 도시였다. ‘화양연화(花樣年華)’가 제목이다. 여인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은유한다. 아시아 영화의 아이콘이었던 왕가위(王家衛) 감독이 연출했었다.

▶영화의 배경은 홍콩(Hong Kong)이다. 19세기 중반 한 영국인이 중국인에게 “어디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광동어 억양으로 “헝꽁”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홍콩’으로 불리게 됐다. 1842년 난징조약으로 영국 식민지가 됐지만, 1997년 반환된 뒤 중국 특별행정구로 편입됐다.

▶중국 국영기업들이 25년 만에 홍콩경제를 장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 정부의 ‘코로나 제로’ 정책 여파로 금융허브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3천440억달러(약 442조원) 규모의 홍콩경제도 중국 국영기업들 손에 넘어가고 있다.

▶“홍콩은 결코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다”는 중국 정부의 궤변성 발표도 나왔다. 이 내용은 홍콩 공립고교 학생들의 교과서에도 녹여졌다. 지난 2019년 민주화시위 이후 시진핑 주석이 가속화한 이른 바 ‘홍콩의 중국화’다.

▶오늘은 이 도시가 영국으로부터 반환된 지 25주년이 되는 날이다. 기념해야 할지, 애도해야 할지는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중국 경제전략가인 사이먼 리의 고언이 귓가를 맴돈다. “홍콩이 결정적인 기로에 섰다. 중국 국영기업들은 홍콩의 사회·경제·정치에 책임을 져야 한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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