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연평해전과 참척(慘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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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한 경기도중소기업CEO연합회 회장

유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이 땅에 수많은 젊은 생명들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정신을 추모하는 것이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 흘린 6.15, 6.25, 6.29로 이어지는 유월의 그 날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1950년 6월 25일의 6.25전쟁, 2002년 6월 29일의 제2차 연평해전이 바로 그들이 자유와 목숨을 바꾼 날이기 때문이다.

제1차 연평해전은 1999년 6월 15일 북한함정 10척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도발하였던 정전협정 이후 발생한 남북한 간 첫 해상 교전이었다. 우리 해군이 ‘참수리’ 고속정이 부딪혀 막는 일명 ‘밀어내기 작전’으로 대응하던 중 남북간 전투가 발생한 것이다. 양측의 교전으로 북한 측이 크게 패퇴하여 명백한 우리 군의 승리로 끝난 전투로서 금년은 제1차 연평해전 23주년을 맞았다.

1950년 6월25일 장맛비가 쏟아지는 일요일 새벽4시 북한의 남침이 시작되었다. 비극적 전쟁은 3년 1개월 2일 동안 온 국토와 국민을 나락에 빠뜨렸다. 유엔 참전 16개국과 의료지원 등 총 64개국 젊은이들의 목숨으로 간신히 자유와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올해는 제72주년이 되는 해이다.

제1차 연평해전으로 부터 3년 후인 2002년 6월29일은 한·일 월드컵 막바지에 한국과 터키의 3·4위전 경기가 벌어지던 날이었다. 온 국민이 월드컵에 눈을 돌리고 축제를 이어가던 그 날 서해에서는 제2차 연평해전이 일어난 것이다. 연평도 북방한계선 부근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 고속정에 대한 북한 해군 경비정의 기습 공격이 시작돼 30분 가량 진행된 남북간의 군사적 충돌이었다. 북한군의 선제공격을 당한 대한민국 해군 참수리 357호는 정장을 포함한 해군장병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당하는 인명피해를 겪었다. 북한군도 13명이 전사하고, 25명이 부상당했다.

결국 젊은 장병들의 피 값으로 자유는 지켜졌지만 자식과 부모를 잃은 가족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고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당했다. 건강하고 튼튼한 생떼 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와 남겨진 어린 자식 등 가족들을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청천벽력’같은 슬픔인가? 자식을 먼저 보내는 부모의 마음을 참척(慘慽)의 슬픔이라고 한다. 이 세상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가장 큰 아픔과 슬픔이다. 무엇으로 자식을 앞세운 부모를 위로할 수 있단 말인가? 고작 우리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날과 그 분들의 희생을 잊지 않는 것뿐이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참수리 고속정을 대체한 차기 고속함이 영웅들의 이름으로 진수돼 그나마 다행이다. 윤영하함, 한상국함, 조천형함, 황도현함, 서후원함, 박동혁함으로 대한민국 해군 ‘참수리’고속정 357호 용사들의 이름이 바다를 지켜주고 있다.

우리도 용사들과 같은 자식과 형제와 부모가 있지 않은가. 그들이 흘린 피로 지켜진 자유와 평화를 우리가 누리고 있음을 국민 모두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는 후회하지 않도록 국민 모두가 함께 지켜내야 한다. 정부는 6.25 제72주년 주제를 ‘지켜낸 자유, 지켜갈 평화’라고 했다. 자유를 지킬 힘이 없이는 평화도 없을 것이다. 자유는 결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쟁취하고 지켜야 하는 것임을 우리는 아픈 경험을 통해 잘 알게 되었다. 제2차 연평해전 20주년을 맞이하여 또 영웅들의 명복을 빈다. 남은 가족들이 자랑스러워하고 온 국민은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들을...’

이석한 경기도중소기업CEO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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