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쉼터 대부분 경로당에 집중, 자의반 타의반 역사·지하철 내몰려 코로나로 인한 관계 단절 단면 지적...전문가 “이동서비스 지원 등 필요”
때 이른 폭염에 더위를 피해 지하철 등으로 ‘피서’를 떠나는 노인들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이 같은 현상은 코로나19로 인한 관계 단절의 한 단면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22일 낮 수원역. 30도에 육박하는 바깥 온도와 달리 역사 안은 20도를 밑돌 정도로 시원한 상태였다. 자신의 열차시간을 기다리는 시민들 사이로 노인 3명이 역사 안 의자에 앉아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이들 중 한 명인 이명국 할아버지(83)는 “역사나 열차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누구 하나 눈치 주는 사람 없어 여름이면 자주 찾는다”며 “그간 코로나19로 경로당도 못 가 아는 사람도 없어 눈치 볼 바엔 올 여름도 지하철에서 보낼 것”이라고 속삭였다.
이날 오후 용인특례시 수지구의 죽전역. 이날 용인엔 폭염주의보가 발효됐고, 낮 최고 기온이 31도를 웃돌았지만 열차 안은 쉴 새 없이 가동되는 에어컨으로 시원한 상태였다. 청량리행 열차엔 각자 목적지로 향하는 시민들 사이로 김명자 할머니(78)는 별다른 이유 없이 수서역까지 향하고 있었다. 김 할머니는 “전기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는데 경로당에 가도 눈치만 주는 것 같아 여름엔 자주 지하철을 타고 왔다 갔다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20일 용인·안성 등에서 처음 발효된 폭염주의보는 이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지난해 가평에서 발효된 도내 첫 폭염주의보가 7월1일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올해 첫 폭염주의보는 이보다 10일이나 앞선 것이다.
경기도는 지난 5월30일부터 오는 9월30일까지 ‘폭염 특별 대책기간’을 운영하며 도내에 무더위 쉼터 7천511곳을 지정해 냉방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무더위 쉼터의 85.5%가 경로당으로 지정돼 있는 상황에서 기존에 노인 커뮤니티와 단절된 노인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지하철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결국 코로나19로 다른 노인들과 관계를 맺지 못한 노인들이 복지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건데, 관계 형성을 위한 프로그램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며 “이 같은 노력과 함께 이동이 불편한 75세 이상 노인들도 여름을 잘 보낼 수 있도록 이동서비스 지원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무더위 쉼터로 향하지 않고 지하철 등으로 향하는 노인들이 있다는 문제를 인지하고 있으며 안타까운 부분이 충분히 있다”며 “시설 자체가 부족하다기 보단 스스로 꺼리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어르신들의 무더위 쉼터에 대한 문의 등이 들어오면 최대한 잘 안내해 쉼터로 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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