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수박’ 논쟁

수박은 참외와 함께 여름철 대표 과일이다. 그냥 먹어도 달고 시원해 좋고, 얼음을 곁들여 수박 화채로 먹어도 맛있다. 예전엔 여름 철렵이나 피서(避暑)에 수박은 필수였다. 계곡물에 둥둥 띄워 놓았다가, 물속에 발을 담근 채 수박 한쪽을 베어 물면 더위가 싹 가셨다.

수박은 아프리카가 원산으로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재배됐다고 한다. 한국엔 조선시대 〈연산군일기〉(1507)에 수박 재배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수박은 여름 과일이지만, 요즘은 시설원예를 통해 연중 재배한다. 한방과 민간에서는 구창·방광염·보혈·강장 등에 쓴다. 꽃말은 ‘큰 마음’이다.

정치권에서 ‘수박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 친명계(친이재명계)가 비명계를 대상으로 문자폭탄 등 과격한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한 것이 발단이다. 갈등이 격화하면서 수박이 등장했다. 겉은 초록이지만 속이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과 같다는 뜻이다. 주로 친명계 지지자들이 이낙연 전 대표 측의 인사들을 공격할 때 쓰고 있다.

수박 논쟁은 친정세균계 3선인 이원욱 의원이 최근 페이스북에 수박 사진과 함께 “수박 맛있네요”라고 올린 데서 시작됐다. 친명계가 비명계를 대상으로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의 멸칭으로 ‘수박’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를 비꼰 것이다. 친문·친이낙연계, 친정세균계 의원들은 “정치 훌리건을 방치하고 있다”며 친명계를 비난했고, ‘수박’ 단어를 놓고 주말 내내 계파 간 설전이 이어졌다.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각 계파가 당권 투쟁을 본격화한 모습이다. 이에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수박이라는 단어를 쓰는 분들은 가만히 안 두겠다”고 했다.

수박이 정치권에서 혐오 언어로 변질됐다. 극심한 계파 갈등을 보이는 민주당은 수박을 끌어들여 편을 가르고, 조롱·비하하는 행태를 당장 멈춰야 한다. 치솟는 물가와 유가, 화물연대 파업, 의혹 많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등 시급한 현안이 얼마나 많은데 권력 다툼이나 하고 있다니, 한심스럽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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