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효순·미선 20주기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대회여서 더 그랬겠다. 마침 조별 리그 3차전인 포르투갈과의 경기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사고가 난 건 딱 그때였다. 경기북부지역의 한 시골길을 걷던 여중생 2명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미군 장갑차가 두 소녀를 덮쳤기 때문이다.

▶2002년 6월13일 오전 10시30분께였다.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56번 국도 갓길에서 주한미군 부교 운반용 장갑차가 법원리 쪽에서 내려와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맞은편에선 전투용 장갑차 5대가 덕도리에서 무건리 훈련장으로 오고 있었다. 사고가 난 도로의 너비는 3.3m인데 반해, 사고를 낸 장갑차의 폭은 3.65m였다.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주한미군은 바로 수습에 나섰다. 유감을 표명했고, 분향소를 방문해 문상했다. 유가족에게 각각 조의금 명목으로 100만원씩을 전달했다. 주한미군은 보상금으로 각각 2억원 정도의 금액을 보냈다. 하지만 조의금을 보상금으로 오해한 유가족들이 항의하자, 주한미군은 장례식부터 먼저 치르자고 주장했다.

▶주한미군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그들의 입장은 ‘고의적이거나 악의적인 게 아닌 비극적인 사고’였다. 사고는 간단하게 보도됐고, 관심도 받지 못했다. 월드컵이 진행 중이어서, 국민들의 관심은 사고 다음날 치러진 한국 대 포르투갈전에 쏠려 있었다. 그 경기에서 한국이 승리하고 16강에 진출하면서 사고는 묻혔다.

▶5개월이 지났다. 그해 11월20~22일 열린 군사재판에서 사고를 낸 주한미군 2명에 대해 각각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 사건이 확대된 건 이 판결이 알려진 이후였다. 그해 11월 국민들이 촛불을 켜고 뭇매를 들었다. 주한미국대사가 대통령 사과를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두 여중생의 20주기를 맞아 사고 관련 기록관 건립이 추진된다. 장소는 효순미선평화공원 인근 부지다. 사고 30주기인 2032년 완공이 목표다. 두 여중생이 세상을 뜬 후 벌써 강산이 2차례나 바뀌었다. 제2의 효순·미선양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를 위해 그동안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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