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오! 장미여, 장미여, 장미의 계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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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학 한길 책 박물관 학예연구사

“Gather ye rosebuds while ye may, Old time is still a-flying: And this same flower that smiles today, Tomorrow will be dying,”

“할 수 있을 때 장미 꽃봉오리를 따세요, 시간은 쉼 없이 달아나고 오늘 미소 짓고 있는 이 꽃도 내일이면 시들어 버린다네.”

17세기 영국의 성직자이자 시인인 로버트 헤릭(1591~1694)의 영시 「To the Virgins, to Make Much of Time」의 첫째 연이다.

특히 첫 구절은 영화「죽은 시인의 사 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과 처음 만나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가르치면서 읽은 시(詩)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카르페 디엠’은 보통 ‘오늘을 붙잡아라’라고 번역하지만 결국 고귀한 인생의 시기는 바로 지금이라고 한창 향기가 짙은 장미에 비유하여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장미는 장미과에 속하는 다년생 덩굴식물로 북반구의 한대·아한대·온대·아열대에 분포하고 있으며 야생종이 개량되면서 현재 지구상에 약 200 여종이 꽃의 여왕으로서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러한 치명적인 매력으로 얼마나 많은 시인과 연인이 노래하고 탄성을 질러겠는가!

장미에 대한 여러 이야기 중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사랑의 신 큐피드와 얽힌 이야기도 있다.

꽃이 너무 아름다워 입술을 내밀었다가 꽃 속에 있는 벌이 놀라며 침으로 큐피드의 입술을 톡 쏘고 말았다.

이것을 지켜본 여신 비너스가 안쓰러운 생각에 벌을 잡아 침을 장미 줄기에 옮겨 버렸다. 그러나 큐피드는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그렇게 당하면서도 여전히 장미꽃을 사랑했다.

셰익스피어 역시 정형시의 일종인 14행으로 구성된 소네트(Sonnet)에서 장미를 즐겨 노래했다. 「“나는 백합의 설백(雪白)을 감탄하지도 않았고, 장미의 심홍(深紅)을 찬양하지 않았노라! 그들은 아름다우나 그대를 닮았을 때만 기쁨을 주도다.”」

사랑과 미(美)를 찬양한 위대한 셰익스피어도 도도한 장미를 자신의 시(詩)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 에서도 로미오에 대한 줄리엣의 애잔한 독백을 통해 고귀하고 영원한 가치를 장미의 이름으로 설파했다. 「“이름이 도대체 무엇인가요? 장미는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여전히 향기롭지 않나요?”」

이 밖에도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가 지은 서사시 신곡(神曲)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천국이 불꽃과 별들의 어울림으로 가득 차며 천사들의 무리가 백장미처럼 변하는 모습이 환상적으로 묘사되었다. 위에 소개된 주옥과 같은 로버트 헤릭과 셰익스피어의 고전 시집(詩集) 두 권은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의 공예 운동의 선구자인 월리엄 모리스가 세운 공방인 켐스콧 프레스에 의해 19세기 말에 출판되었다.

그가 공들여 만든 책은 당시 산업혁명을 통해 대량 생산된 여느 보급형 책과는 크게 달랐다.

켐스콧 프레스에서 간행된 책들은 최상의 종이와 잉크를 사용하고, 그가 고안한 초서체, 골든체, 트로이체를 서체로 활용했으며, 머리글자 장식, 책 테두리 및 외형은 직접 디자인하였다. 이렇게 공을 들인 명작은 월리엄 모리스 생전에 53종 66권을 500부 이내 한정본으로 출간되었다. 이러한 그의 장인정신과 발자취는 출판 장정(裝幀) 역사에 아름다운 유산으로 내려오고 있다.

성하(盛夏)를 눈앞에 둔 5월과 6월은 장미의 계절이며 만물이 생동하는 싱그러운 시절이다.

로버트 헤릭이 노래했듯이 인생은 짧고 아름다우며 보낼 시간이 많지 않으니 현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혹시 잊고 살지는 않았을까?

아무리 바쁜 세상을 사는 현대인이지만 가끔은 근교의 책 박물관을 찾아 세월이 켜켜이 쌓인 오래된 책의 향기를 맡아보며 잠시 나마 지금의 삶을 돌아보면 어떨까?

아니면 기쁨의 꽃말이 있는 붉은 장미 세 송이를 준비하여 덧없이 시간이 가기 전에, 가슴속에 간직한 그 사람에게 사랑의 고백을 해봐도 더없이 아름다운 계절이 될 것이다.

노상학 한길 책 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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