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러시아 소금봉기

수많은 군중이 궁궐 앞으로 모여 들었다. 수천명이었다. 이들은 소금을 살 때마다 가혹하게 부과되는 세금이 부당하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분노는 갈수록 치열해졌다. 시위대는 성문을 열고 진입했다. 친위대에게 진압 지시가 떨어졌다.

▶명령은 통하지 않았다. 모든 병사가 거부했다. 일부 병사는 아예 총을 버리고 대열에 끼었다. 일부 하급 관리까지 가세했다. 시위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었다. 석양이 뉘엿뉘엿 질 때 인파는 수만명으로 늘었다. 군중의 함성은 더욱 높아지고, 거세졌다. 구호도 “소금세 반대”에서 “탐관오리 축출”로 바뀌었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황제는 결국 이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 자체가 그렇게 흘러갔다. 각료급 책임자 2명을 처형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황제의 스승도 몰아 냈다. 하지만, 시위대의 분노는 풀리지 않았다. 시장도 무참하게 살해됐다. 시신도 찢겨졌다. 성난 군중은 지주들도 공격했다. 관료와 병사들은 그동안 급료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지급을 촉구했다.

▶황제가 마침내 두손을 들었다. 그 악명 높은 소금세가 취소됐다. 관료와 병사들의 밀린 급여도 일괄 지급키로 결정했다. 급여를 올려 주겠다는 약속도 나왔다. 귀족과 성직자, 관료, 상인 대표 등으로 구성되는 신분제 의회 구성도 제시됐다. 궁여지책이었다. 1천800여명의 목숨과 주택 2만여채 소실 등을 대가로 받은 전리품이었다. 그러는 사이 시위는 들불처럼 확산됐다. 약속은 과연 지켜졌을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 갔다. 황제는 되레 기득권 강화에 나섰다. 주동자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소금세보다 더 농민 삶을 옥죄는 악법을 만들었다. 그 이전에는 빚이 없는 농민은 땅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법이 제정되면서 불가능해졌다. 농노제가 강화됐다. 농민들의 삶은 이전보다 더 피폐해졌다. 나라 곳곳에서 크고 작은 봉기들이 잇따랐다.

▶정국은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었다. 역사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250여년 후 러시아혁명으로 이어졌다. 1648년 오늘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얘기다. 무릇 정치가 민심을 거스르면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기 마련이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해 그랬다. 오늘 치러지는 지방선거가 중요한 까닭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