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선거가 괴로운 공무원

지방선거 때마다 일부 공무원의 대필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현직 기초단체장이나 전·현직 지방의원들이 특정 정당에 유리하거나 자신의 정치 기반을 다질 목적으로 공무원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실제 모 지자체 소속 공무원이 전직 의원으로부터 정당 경선 심사에 필요한 공약 내용을 양식에 맞게 정리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자료를 편집해줬고, 선거 공보물 등 각종 자료 초안을 검수한 사실이 밝혀졌다. 서울시의회에서는 시의원이 제시하는 양식에 맞춰 300페이지 넘는 분량을 작성한 공무원이 있었고, 부산시의회에서는 공무원이 실수로 자신의 이름을 파일명으로 넣어 평가서를 전한 사례도 있다.

지난 20대 대통령선거 당시엔 한 기초의원으로부터 특정 대선 후보의 지지선언문 초안을 작성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공무원도 있다. 공무원들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준수해야 하는 걸 알지만, 선출직인 기초의원이 직급상 상급자에 해당돼 지시를 거절하기 힘들다고 한다. 선거철마다 이런 요청이 들어올 때면 너무 괴롭다고 하소연한다.

6·1지방선거에서도 일부 공무원들은 갖가지 요청에 시달렸다. 공천평가서나 출마선언문 작성뿐 아니라 출마 예정자의 보도자료를 공보관실을 통해 언론에 배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선거 준비 과정에서 정책 수립을 목적으로 민감한 시정 정보를 요구하는 정치인도 있었다. 정보공개 청구 등 공식 절차가 있지만 손쉽게 정보를 얻기 위해 공무원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현재 공직선거법상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직무, 지위와 관련해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선 안 된다. 현역 정치인이라면 이러한 지시나 요구는 공직선거법을 위반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담당 공무원 역시 직무상 벗어난 행위로 선거법에 저촉된다.

공무원 입장에선 상부 지시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요구가 들어오면 암암리에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한다. 특히 당선이 유력한 후보의 부탁이면 나중에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느낀다. 선거에 공무원을 끌어들이고 괴롭히는 구태는 없어져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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