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는 소 잔등도 가른다’는 속담이 있다. 소 한 마리의 등 위에서도 비를 맞는 부분과 안 맞는 부분이 있을 정도로 비가 국지적으로 내린다는 의미다. 이렇게 국지성이 강한 여름 소나기는 같은 지역에서도 강수량 차이가 크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소나기를 ‘쇠나기’라 표기했다. ‘쇠’는 ‘몹시’ 혹은 ‘심히’를 의미하는 우리말이다. 여기에 ‘나기’는 한자 ‘날(出)’이 더해져 소나기는 ‘심히 내리는 것’, 즉 급하고 세게 내리는 비 ‘급우(急雨)’라는 의미다.
갑자기 구름이 발달해 굵은 빗방울이 한 시간 내로 짧고 강하게 내리는 소나기는 한여름에 대기의 기온을 조절하는 에어컨 역할을 한다. 고온 다습한 지상의 공기는 소나기 발생의 스위치 역할을 한다. 뜨거운 지상의 공기가 5~12㎞ 상공까지 짧은 시간에 상승해 열을 전달하고, 상공에서 차가운 공기로 급냉각되며 소나기가 만들어진다. 소나기는 빗방울이 커 빠르게 하강하는데 대기 상층에서 급냉각된 상태가 유지돼 내리기 때문에 지상의 기온을 10도가량 뚝 떨어트린다. 그러나 소나기는 국지적으로 짧고 강하게 내려 땅이나 나무가 흡수하지 못해 가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주로 소나기는 물 공급보다는 지상과 대기 상층의 열교환을 통해서 자연 에어컨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대기의 에어컨 역할을 하던 소나기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 지상의 기온이 강하게 오르면서 대기 상하층의 기온 차가 더욱 커져 소나기 강도가 매우 강해지고 있다. 또한 산과 같은 높은 경사가 있는 지형에서는 공기가 강제 상승해 평지보다 강하고 불안정한 소나기가 내린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은 지형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갑작스럽고 강한 소나기가 내릴 수 있다.
근래 들어 보면, 지난해에는 5월부터 천둥·번개·우박과 함께 요란한 소나기가 자주 내렸다. 평년보다 짧은 장마가 끝난 이후에도 소나기가 자주 내렸다. 이때의 소나기는 지상의 높은 기온도 한몫했지만, 우리나라 상층에 차가운 공기가 통과하면서 대기 상하층의 기온 차로 대기가 불안정해져 소나기가 많이 내렸다. 소나기 발생 스위치가 지상이 아닌 대기 상층에 있었던 것이다.
지상 기온이 높을 때 소나기가 발생해야 하는데, 오히려 상층의 기온이 내려가 오작동하는 에어컨이 돼 버린 것이다. 너무 잦은 소나기로 인해 일조량 부족이 우려될 정도였고, 5월은 계절의 여왕 타이틀을 내놔야 했다. 한여름에 맑은 날을 자주 볼 수 없었고, 열대지방 스콜처럼 오후에 반복적으로 소나기가 내렸다. 가끔은 돌풍과 우박을 동반하면서 도심에서는 시설물 피해가, 교외 지역에서는 농작물, 레저 시설물에 피해가 났다. 이처럼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여름철 강수 특성이 국지적으로 강하게 발달한 소나기가 잦아지는 추세로 변하고 있다.
박광석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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