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서럽다. 아플 때 일하면 두배 세배 더 서럽다. 아프면 쉬는 게 맞지만 쉴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장에선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는 아파도 출근하거나, 참고 일해야 하는 한국 일터의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격리’ 차원이지만, 아프면 집에서 쉬어야 한다는 상식이 직장에 적용됐다. 재택근무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특수고용노동자나 비정규직, 일용직, 소기업 노동자 등 사회보장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에겐 먼 나라 얘기다. 고용 형태가 불안정하고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코로나19에 확진된 경우 무급휴가를 쓰고, 퇴사를 강요받기도 한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3월 직장인 2천명을 조사한 결과, 코로나19 확진 뒤 격리기간에 급여를 받지 못하고 무급휴가를 썼다는 응답이 비정규직의 경우 42.1%에 달했다. 정규직 16.2%에 비하면 두배가 넘는 비율이다. 5인 미만 사업장도 40.3%나 됐다. 무급휴가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노동약자층에서 코로나19 확진은 소득 감소로 이어졌다. 응답자 가운데 비정규직의 10.1%는 코로나19 확진 뒤 퇴사를 권고받거나 강요받았다고 한다.
현행 노동관계법에서 병가는 법적의무가 아니다. 개별기업이 취업 규칙이나 사규를 통해 도입하고 있다. 2020년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병가제도를 운영하는 사업장은 21.4%였다. 1천명 이상 사업장은 96.7%가 운영하지만, 상시 노동자가 5인 미만인 사업장은 12.9%에 그쳤다.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적·제도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 노동자가 아플 때 쉴 수 있는 ‘법정병가’와 질병으로 인해 일을 쉬더라도 국가가 소득을 보전해주는 ‘상병수당’ 제도가 뒷받침돼야 맘 편히 쉴 수 있다. OECD 회원국 중 두 제도가 모두 없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뿐이다. 정부가 7월부터 상병수당 제도를 시범운영 한다는데, 법정병가 논의는 없다. 노동약자들이 아프면 쉴 권리를 차기정부가 반드시 실현하길 바란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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